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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공동체와 타자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6-12-30 19:31
조회 : 1,310  


공동체와 타자

박성희(감이당 대중지성 일요반)


나는 나름 대인관계는 잘 한다고 자부하고 살았다. 부모님께 크게 반항해본 적도 없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누군가와 크게 싸워본 적도 없고, 화를 내본 적도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둥글둥글한 사람이 내 스스로에 대한 평가였다. 딱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몇 년간의 청년백수 기간을 거쳐 직장에 들어가서 알게 된 것은 내안에 엄청난 화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착한 사람’인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만히 보니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것일까? 분명 가족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며 언제나 내 존재를 그대로 받아주었고, 학교에서도 특별히 이상한 선생님들이 없었고, 친구들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함께 하면 즐거웠다. 그렇게 대체로 화낼 일도, 사람으로 어려운 일도 없어 난 사람들과 잘 지내는, 대인관계를 잘 하는 사람인줄 알고 지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 내 친구들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사랑해줬고, 불편할까 늘 염려해 주었다. 그런데 직장에서 업무로 만나는 고객들과 직장 사람들 중에는 ‘아~ 사람이 싫다. 싫어’하게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싫은 사람이 계속 함께 근무해야 하는 직장동료일 경우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싫은 사람에 대한 나의 대처 방식

난 누구를 특별히 싫어해본 사람이 아닌데, 싫은 사람이 생기니 너무 괴로웠다. 학교 단계까지는 나랑 잘 안 맞는 사람은 좀 멀리 지내면 되었는데, 직장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업무로 계속 엮여야 해서 피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직장에서는 내 입맛대로 사람들을 사귈 수가 없었다. 직장에 있는 내내 그 사람을 관찰하고, 왜 저렇게 행동할까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흉보며 그렇게 집요하게 내 몸과 마음을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 내 하루 24시간 그 사람이 내 몸과 머릿속에 있었다. 머리로는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그러면 내 손해인데...’ 그러면서 신경 쓰지 말자 했다가도 싫은 사람을 보면 또 싫은 모습이 보이고 그러면 미움의 블랙홀에 곧장 빠져들었다. 이런 싫은 사람은 간혹 내 삶에 나타났고, 여기서 내가 배운 것은 싫은 사람은 끝까지 싫다는 것과, 미움의 감정은 정말 강렬하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내가 떠나던지 그 사람이 떠나야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사람들이 있고(그것은 딱 보면 안다!), 그런 사람들과 지내기에도 내 시간은 부족해서, 굳이 나랑 잘 안 맞는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하지는 않았으나, 문제는 싫은 사람들에 대한 내 마음이 내 몸까지 아프게 하며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제껏 해온 싫은 사람에 대한 대처방식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나는 싫은 사람과 직접 대화를 시도해보거나, 싸워보지는 않았다. 그냥 나랑 안 통하는 사람으로 느껴지면 다른 사람들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과 위로를 받았지 정작 그 사람에게 왜 그렇게 하는지, 그것으로 내가 어떤 감정이 드는 지 이야기해보지는 않았다. 정작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사람에게는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 교재 중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청백서)의 ‘푸닥거리’ 부분을 읽으며, 낯설지만 해보고 싶었다. 

빠듯한 스케줄에 지쳐 가면서도 공간 청소는 수련의 기본이었고, 네 명의 신체가 한 공간에서 살기 위해서는 작은 일 하나라도 회의가 필요했다. (...) 우리는 점점 예민해져 갔다. 서로 부딪치는 지점도 너무나 사소해서 그때그때 푸닥거리(감이당에서 공부하는 학인들끼리 묵은 감정을 쌓아두지 않고 서로를 직면하자는 의미로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 일종의 살풀이 의식)로 풀기에도 서로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 감정의 바닥을 공유한다는 점이 처음에는 신선하고 재미있기까지 했지만, 그게 점점 서로의 약점이자 무기가 되어 갔다. 서로를 깊이 알면 알수록 더 날카롭게 물어뜯는 송곳니가 생겼다고나 할까. 우리는 더 이상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싸우지 않기 위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것. (...) 누군가의 행동거지가 내 마음에 심히 거슬려도 공존을 위한 노력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 “왜, 왜, 도대체 왜 우리는 같이 사는 걸까?” 결국 특단의 조치로 아침마다 『자비경』과 「보왕삼매론」을 낭송하고, 절 수행을 하면서 서로의 공부가 잘되기를 빌어 주는 멤버십을 다지기로 했다.  (...) 뿐만 아니라 밤에는 남산 정복에 돌입했다.
-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류시성․ 송혜경 외 13인의 청년백수, 북드라망, 194~197쪽


“도대체 왜 우리는 같이 사는 걸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청년백수들은 푸닥거리를 하고, 아침에는 낭송을 밤에는 남산 정복을 하며 관계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갔다. 다행히 이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 갈수록 일상에서의 사소한 트러블이 점점 감정의 골을 남기지 않고 흘러갔고, ‘쟤는 왜 그럴까’하는 되새김질을 멈추면서 ‘그럴 수도 있지 뭐’, ‘내가 하면 되지 뭐’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후로 멤버들 각각의 개성과 장점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 왔다고 한다.

나에게 직장 사무실도 이들처럼 공생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하루에 최소 9시간을 함께 보내며, 같이 밥을 먹고, 일을 한다. 그러면서 ‘타자’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까지 내 느낌상(?) 나와 맞지 않는 타자에 대해 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안다고 생각했다. 직접 대화를 시도해보지도 않고, 나의 불편한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근거로 그를 안다고 생각했을까? 어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나만의 결론으로 일방적으로 그를 미워하고 화를 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그건 말 뿐이었고, 내 삶의 구체적인 실천은 없었다. 타자와 공생하기 위해, 해보기도 전에 이미 두려운(더 사이가 나빠질까) 저 ‘푸닥거리’와 몸으로 해보는 낭송과 남산 정복을 내 현장에서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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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들의 푸닥거리 현장


싫은 사람이 싫은 이유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면 그건 다 상대방에게 그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일을 잘 안한다든가, 일을 잘 못한다든가, 사람이 답답하다든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격이 이상한 사람들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난 사람들이 막연히 싫어하는 그 사람을 낱낱이 분석하여 그 이유들을 세밀하게 이야기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었다. ‘내’가 아니라 늘 ‘상대방’에 이유가 있었기에 늘 상대방만 보았다. 그의 행동과 말들을 끊임없이 관찰했다.

그런데 저번 학기와 이번 학기에 공동체를 주제로 공부하면서 그 미움과 한계 모를 잦은 화에 대한 이유를 조금 알게 되었다. 우선 그 화의 이면에는 ‘왜 나처럼 안 해?’하는 마음이 있었다. 왜 저렇게 일을 대충하지, 왜 여기 저기 다 물어보면서 잘 알아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하지? 왜 이렇게 성의 없이 보고서를 올리지? 상대가 나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땐 일방적으로 짜증과 화를 냈다. 이 이면에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맞다는, 내가 기준이고 정답이라는’ 가정(전제)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기서 상대는 나와 ‘다른’ 타자가 아니라, 나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이었다. ‘미달한다’고 생각되면 무시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껏 진실로, 제대로 ‘타자’를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타자를 만났지만 직면하지 못한 채, 그냥 막연히 화를 내며 나도 괴롭고, 상대도 힘들게 한 방식의 피상적인 만남만 있었다. 타자를 그 존재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신체가 나였다.

밖에선 마른 몸이 부러움을 사지만 연구실에서 나는 살을 찌우라는 말을 정말 수도 없이 들었다. 한의학 논리에 따르면, 마른 몸은 정(精)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정이 부족하면 나와 다른 것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와 다른 타인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니 늘 빽빽 소리를 질러 대고,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온몸이 뒤틀리는 갑갑함을 느꼈다. 
아아, 돌이켜 보면 ‘백수다’는 위로는커녕 뼈아픈 시간이었다. 하지만 싫어하는 것들은 죽어라 피해 가며 27년을 살아온 몸이, 어떻게 하면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고 살 수 있는지 몸을 통해 구체적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사람들 틈에서 내가 느껴온 소외감이나 이질감의 원인이 그들이 아닌 나에게, 구체적으로는 나의 신체에 있을 수 있다는 시야를 가지게 된 것이다.
-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류시성․ 송혜경 외 13인의 청년백수, 북드라망, 109~110쪽


이제까지 내가 잘 지낸 나의 주변의 사람들은 사실 ‘타자’라기 보다는 ‘나의 확장’에 가까웠다.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성장 과정에 비슷한 가치관과 생각들을 하는, 그래서 내가 특별히 부딪힐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다거나 첨예하게 대립될 일이 없이, 그냥 각자의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 이해받으며, 각자의 공부를 하면 되는, 느슨한 관계 속에서 늘 함께 하면 좋은 사이로, 공동체의 타자성은 거의 없었다. 불편함이 간혹 있어도 그냥 참고 넘어갈 정도였다. 그래서 이 공동체에서는 ‘상대’를 집요하게 볼 일도, ‘나’를 괴롭게 볼 일도 없었다.  


다시 돌아보게 된 나의 욕망

친한 직장 동료에게 내가 타자와의 관계가 힘든 이유가 뭘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단박에 “언니 욕심 때문이지.”라고 답했다. 난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는 물욕이 별 없는 사람이라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직원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어떤 부분에서는 욕심이 많은 것 같았다. 늘 ‘더 나은 나’가 되고 싶고, 모든 사람과 관계도 원만히 하고 싶고, 인간성도 업무능력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러면서 직장에서는 모두 공평하게 일을 해야 하고, 사람들과 싸우기는 싫고, 틀리기 싫고, 틀린 것은 직면하기 싫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바로 보기가 힘들어 피해버린다.
내가 나와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 ‘더 나은 나’의 ‘나은’의 기준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고정된 채 있었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하고, 사람들과 접속하기 어렵게 하는 그것은 내안의 뿌리박힌 ‘위계’였다.

“너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강의를 할 수 있냐? 아니면 글을 쓸 수 있냐? 너희가 제일 잘하는 일이 뭐냐? 청소? 그럼 청소로 이 공간과 100% 만나는 거다. 다른 사람은 강의를 해서 이 공간과 100% 만나고, 어떤 사람은 글을 써서 그렇게 한다. 청소하는 인간은 청소로써 세계와 만나고, 강의하는 인간은 강의하는 것으로 세계를 만난다. 이 안에 위계 같은 건 없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이 공간과 만나면 된다.”(고미숙 선생님 말씀)
 세계엔 위계적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접속하는 질적 차이들만 있다. 우리 시대엔 이것이 거꾸로다. 위계들만 설정하고 더 나은 것과 못한 것을 구별하려고만 한다. 청소는 그런 위계를 넘어서는 가장 훌륭한 활동이다. 청소하는 인간은 청소로서 세계와 온전히 만난다. 그리고 이건 비단 연구실에서만 통용되는 윤리도 아니다. (...) 곧 청소를 잘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집을 내줘도 된다는 보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청소가 그야말로 글로벌한 윤리가 된 셈이다. (...) 그래서 알게 됐다. 우리 청년들에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IQ도 스펙도 아닌 기본기라는 것을.
-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류시성․ 송혜경 외 13인의 청년백수, 북드라망, 36~37쪽

직장에서는 누군가는 매일 사무실의 공통 컵을 씻고, 정리를 하고, 누군가는 우편작업처럼 단순작업을 좀 더 하고, 누군가는 보고서 쓰는 일을, 또 누군가는 검토하는 일을 좀 더 한다. 이제껏 나는 이 안에 위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고서 쓰는 것이 우편작업보다는 더 우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가만히 보니 매사에 위계를 따지고 있었다. 회사 내의 급수뿐만 아니라, 정신/몸, 결과/과정, 낮/밤, 공부/청소, 국․영․수/체육․미술, 에세이/필사 등 전자를 더 우월한 것으로 생각했고, 후자는 대체로 무시했다. 그러다 보니, 지각해도, 방청소는 잘 안 해도 결과만 좋으면, 즉 시험만 잘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늘 지각하고 주변 청소를 안 하면서도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잘 지내지 못하는 타자와의 관계는 ‘상대만 바뀌면’ 해결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나처럼 지각하고, 청소안하고, 정리안하는 모습으로 바뀐다면, 나의 장점과 더불어 단점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바뀐다면...이라고 생각해 보니 끔찍하다. ‘너만 바뀌면’ 된다는 이 이면에는 상대가 장점만 가지는, 완벽한 인간으로 바뀌는 것을 전제한 것이었다. 나는 절대 나의 단점을 절대 고치지 못하면서 상대는 바뀌기를 바라는 이 모순된 생각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나에게 뿌리박힌 매사의 그 위계들 속에서 난 우월한 것들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열등한 것들은 무시했다. 우월한 것들만 잘 해내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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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기본 윤리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닌 ‘함께 산다’는 것이다. ‘함께’하려면 서로 기본적인 약속이 필요하다. 감이당 공동체에서의 약속(윤리)은 딱 두 가지이다. 

우리의 공간은 누군가가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공간이 아닌,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적인 공간이다. 함께 공간을 사용하려면 이에 맞는 윤리가 필요하다. 우리의 윤리는 ‘공간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다.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리정돈, 시간 약속 지키기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가 우리들의 공부거리이다.
-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류시성․ 송혜경 외 13인의 청년백수, 북드라망, 122쪽


그런데 나는 이 2가지 윤리를 아직 신체에 익히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기한 내에 하는 것’, ‘약속 지키기’가 꽤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일이기에 내가 기한을 놓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고, 나도 늘 임박해서 벼락치기 식으로 하니 과부하가 걸리고 힘들었다.
그래서 ‘제 때에 하기’와 ‘지각하지 않기’. ‘청소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맘처럼 잘 되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하루아침에 ‘짠!’하고 변해야 할 것 같은데, 조금 변할 듯 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일쑤라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공자는 왠지 공부만 하라고 하거나 먼저 공부부터 하라고 말했을 거 같은데, 청년의 경우에는 콕 집어서 인륜을 몸에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그 개념들을 소화할 수 있는 그릇으로 몸을 만든 후에야 공부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 백수들은 이런 걸 공부한다. (...) 약속 지키기, 청소하기, 공동주거, 낭송, 필사, 여행, 운동, 기타 활동들. 몸부림칠 수 있는 모든 걸 다 동원하자! 안 되는 일에 매달리고 시도해 보자!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는 신체로 훈련하자! 그리하여 굳어진 몸의 회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 보자!
-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 류시성․ 송혜경 외 13인의 청년백수, 북드라망, 299쪽


이번 에세이도 때를 놓친, 공동체의 윤리를 지키지 못한 글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번 학기에 교재 12권 중에서 내게 가장 잘 읽힌 ‘청년백수 자립에 관한 한 보고서’만 인용하였다. 책도 이렇게 내게 낯선 것들. 타자성이 강한 책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공동체의 윤리를 지켜나가며, 나도 모르던 나의 욕망들을 지켜보면서 공부해 나간다면 나도 점점 소통의 길이 열리는, 타자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신체로 바뀌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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