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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질문을 바꿔야 주인이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6-12-30 19:37
조회 : 1,313  


질문을 바꿔야 주인이다

김순희(감이당 대중지성 수요반)

질문이 있기까지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라는 글쓰기의 주제를 앞에 놓고 오랜 시간 생각을 궁글려 보아도, 결국 나는 지난 시절 오랫동안 붙들려 있었던 질문 앞에 다시 설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질문’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있었다기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습관적으로 살았던 그 전제 앞에 마주섰다고 해야 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삶이 뭐지?’ ‘나는 누구지?’ 따위의 어렴풋한 의문이 있었다. 사회가 나에게 내어준 길들은 그 의문의 끝자리에 선명하고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말 잘 듣고 순했던(?) 나는 그 길을 잘 걸어가기만 하면 언젠가 답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디에 답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답은 어딘가에 있는 것이므로 나에게 남은 일은 열심히 그 답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른들이 하라고 하는 일을 ‘잘’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하는 것도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성실하게 시키는 일들을 해 나갔다. 당연히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라기보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나이 때쯤이면 읽어야 한다는 책들도 꼬박꼬박 읽었다…라기보다 읽으려 애썼다. 뉴스를 보며 어른들이 비분강개하면 왜 그런지 물었고, 엄마가 외는 반야심경이나 천수경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책은 ‘사상의 압축’이기에 가장 빠르고 선명하게 그 길을 보여줄 것이므로 독서는 언제나 나의 의무였다. 그 의무 앞에서 게으름을 피우면 어김없이 스스로를 반성시켰다. 그래봤자 문학 쪽에 한껏 기울어진 너무도 편협한 독서였지만 나는 늘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다루었다. 그렇게 비교적 충실하게 이른바 ‘사회화’를 해 갔고 교사가 되었다. 사회가 나에게 가르쳐 준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친 채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들과 교감하려 나름 애썼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학교 현장의 부조리에 반기를 들고 회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절부터 나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진작부터 세상은 화나는 일 투성이였지만 애써 꾹꾹 눌러왔는데 그때부터는 아예 노골적으로 화를 내고 다녔다. 왜 사람들은 ‘옳은’ 일을 하지 않고 ‘옳지 않은’ 저 일을 하면서도 저렇게 뻔뻔한가? 그 자리에서 나는 늘 도덕적이었고, 나와 다른 그들은 늘 부도덕한 인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에 피곤함으로 거의 널브러져서 TV를 틀었는데 다큐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지역 방송국에서 제작된 기획물로 당시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하던 홈스쿨링을 하는 어느 청소년의 이야기였다. 제도권 교육에 의의를 제기하는 ‘의식 있는’ 부모 밑에서 제 발로 학교에서 걸어 나간 그 아이는 매우 밝았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서 부모님이랑 공부하는 것까지는 해결되는데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점심시간에 맞추어 학교를 찾아간 아이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친구들과 손을 잡는 장면은 다분히 연출적인 것이었지만 상황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래 저럴 수도 있지, 제도가 어찌 모든 경우를 해결할 수 있겠나, 다양한 아이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기를 수 있는 거지. 자퇴를 고민하며 상담을 신청하는 학생을 만났을 때, 너에게는 학교가 안 맞을지도 모르니 그 길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얘기한 ‘쿨한’ 교사였던 나는 그때까지도 별 갈등 없이 화면의 흐름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서서히 전개되는 이야기의 방식이 나의 화를 돋우는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점점 학교는 학생을 죄수로 취급하는 감옥에 비유되었고 교사는 그 죄수들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교도관들이었다. 아니, 이건 너무한 거 아냐? 학교가 다양한 아이들의 요구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입시라는 명목으로 주입을 강요하며, 규율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있다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그 안에서 제도의 한계에 부딪쳐가면서도 아이들과 소통하려 애쓰는 교사들이 엄연히 있는데 저런 식으로 힘을 뺄 수 있는 거야? 급기야 화면은 교문에 난 세로줄의 기둥을 감옥의 창살인 냥 비추고 그 안의 ‘학생’과 바깥에 선 ‘학생 아닌’ 아이가 안타깝게 손을 잡고 헤어지려는 가운데, 저 멀리서 매를 쥔 교사가 벽을 치며 빨리 들어오라고 외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의 화는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 분노에 휩쓸려 컴퓨터를 켜고 그 프로그램을 만든 PD의 이름과 연락처를 찾아 번호를 눌렀다. 나의 이름과 소속을 알린 다음, 프로그램의 제작의도와 문제제기까지는 알겠지만 그런 식의 묘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아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차분하고 냉정한 목소리의 그 PD는 대화 중에 약간 흥분하기도 했지만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긴 했다. ‘너네 언론들도 얼마나 잘못을 많이 하느냐? 그러나 그 안에서 언론의 본령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듯, 우리도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가 공공의 적이 되어 가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결국 그런 식의 하소연과 호소밖에 아무 것도 되지 못한 그 허무한 대화. 그 때도 나는 내가 옳고 그런 나를 공격하는 너는, 옳지 않은 저 많은 무리 중의 하나였다.

이후에도 나는 그 연장선에서 좌충우돌하며 ‘소명’과 ‘열정’을 붙잡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만성후두염과 성대결절에 시달리고 늘 ‘어디 아파요?’라는 말을 들으며 인문계 고등학교 입시과목 교사로서의 일정만 감당하기에도 벅차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둘째를 낳고 3년을 내리 연장해버린 출산휴가는 정말이지 축복과도 같은 휴식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힘들어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서서히 작은 변화가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의 코드가 바뀌면서 생각의 코드도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의 생각은 그저 세상의 많은 가치 중 하나에 불과하고, 따라서 내가 보는 관점도 다양체를 보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물론 이런 말들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글로 배운 것이었지 내 것이 아니었다. ‘맞는 말이야’하면서 넘어 갔던 말. 그 말들이 나의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 온 순간, 나는 거의 진저리나는 부끄러움에 직면해야 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그렇게 나만 늘 옳았던 것일까? 내가 읽은 책들이 자양분이 된 줄 알았더니 내 오만을 키우는 독이 되었구나! 뻔뻔한 건 나였지 그들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오만 위에서 서슴없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큰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안티오이디푸스』의 저 유명한 푸코의 서문. 『안티오이디푸스』가 대면하는 세 부류의 적, 그들은 모두 나였다. 금욕주의자, 욕망의 서툰 기술자, 우리의 머리와 일상 행동 속에 있는 파시즘!(『안티오이디푸스』, 질 들뢰즈·펠릭스 과타리(김재인 역), 민음사, 7쪽) 내가 옳고 선하니 너도 나와 같아야 한다는 동일화의 논리로 타인에게 휘두른 파시즘, 내 욕망마저 하나를 강요하고 짓눌러버린 나를 향한 파시즘.(채운 샘 강의) 

그리고 나는 다른 장으로 건너왔다. 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백수가 되었으며, 대구를 떠나 경기도로 왔다. 결심을 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 두어야 할 이유가 훨씬 많았다. 내가 철썩 같이 믿었던 ‘소명’과 ‘열정’은 결국 내가 갇힌 덫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마땅하고도 당연한 지표처럼 붙들고 있었던 위풍당당했던 표상. 더구나 거기에 도덕적 정당성을 철갑처럼 두르고 혼자서 엄청 비장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갑옷 입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였는지 모른다. 그가 사로잡혔던, 타인이 보기에 우스꽝스럽기만 했던 기사도 정신. 거인이 아니라 풍차라고 말하는 산초를 향해 외려 ‘악의 씨를 뽑아버리는 선한 싸움’이라고 외치는 돈키호테의 세계. 자신이 존재하는 그곳을 절대적인 공간으로 여기고 그 세계를 대하는 자신의 방식이 당연히 옳으며 그 바탕에 불변하는 진리가 있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내가 어찌 그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으랴! 30대를 통과하며 조금 말랑해진 나는 그제서야 내가 가진 표상을 마주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옳은가?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인가? 그 와르르한 흔들림 속에서 나의 질문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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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나
  
다른 맥락에서 다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생각한다. 늘 이 질문 앞에 서면 어떻게 대답해야 나를 가장 잘 말할 수 있는지 고민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너무 복잡한 존재다. 사회적 포지션이야 뭐 간단하지만 그건 명백히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하면 그것은 나일까? 우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객관적으로 말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살아온 역사를 다 말할 순 없고 특별한 사건들에 대한 나를 나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나는 이미 나의 관점을 적용하여 해석해 버린 채 말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해석은 내가 놓인 현재의 지점에 따라 달라진다. 유년의 일을 20대에 해석하는 것과 지금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 어떨 때는 사건 자체가 헷갈린다. 게다가 해석에는 줄곧 나를 미화해 보려는 (나만 아는) 시도도 있다. 앞부분만 해도 나는 불쑥불쑥 올라오는 그 마음을 눈치 채고 다시 냉정하게 되돌아보며 고쳐 쓰기를 반복해야 했다. 또 사건에는 평가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 평가의 기준은 결국 내가 세운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말하는 것이 나일까? 그것 또한 사건 속의 나를 말하는 맥락과 마찬가지다. 한때 옳다고 믿었던 것들은 시간이 흘러 직접 경험해보니 그렇지 않기도 하다. 또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어떨 때는 이것이 옳고 어떨 때는 저것이 옳다. 지나간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나는 이미 옳고 그름의 잣대 속에 갇힌 나의 표상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니체와 푸코의 철학을 만나며 나는 내 질문이 처음부터 한 방향으로만 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뿐만 아니라 이것은 옳은가의 질문도 자명하고 확실한 답이 있다는 전제하에 던지는 물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진리를 밝히려 했던 서구철학의 오랜 전통이 있었고 그들에 이르러 다른 방식의 질문이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자명한 확실성이란 말이 성립되는지,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를 알 수 없는데 그런 세계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러므로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고 어떤 나인가를 묻고, 진리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떤 진리인가를 묻는다. 계속해서 내가 변하고 있는데 어느 지점의 나를 나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죽어서 이미 삶이 끝났다면 타인이 나를 향해 ‘이런 삶을 산 사람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애초에 나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답을 구하려 했던 것이다. 오지선다형도 5번에는 정답 없음이 있는데 나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전혀 생각조차 못해본 것이다.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주체, 그런 나는 없다. 

그것은 이상한 주체이다. 고정된 정체성이 없고, 기관 없는 몸 위를 방황하며, 늘 욕망 기계들 곁에 있고, 생산물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몫에 의해 정의되며, 도처에서 생성 내지 아바타라는 덤을 얻고, 자신이 소비하는 상태들에서 태어나고 또 각 상태마다 다시 태어나니까. 
『안티오이디푸스』, 질 들뢰즈·펠릭스 과타리(김재인 역), 민음사, 45쪽


푸코는 ‘우리를 더 멀리 가도록 자극한다’지만 자극을 받기에는 너무나 난해한 책, 『안티오이디푸스』. 들뢰즈와 과타리(이하 들/과)가 본 주체는 욕망 기계이다. ‘무엇’을 접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기계. 그리고 그 ‘무엇’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다. 입이 먹을 때는 먹는 입이고 말할 때는 말하는 입이 되듯, 욕망에 따라 접속하여 만들어지는 생산물로만 우리는 규정된다. 따라서 고정된 정체성을 지니지 않는다. 욕망 기계는 언제든 무엇과도 접속하고 절단하며 다시 흐른다. 그리고 사회는 그 욕망 기계들이 이리저리 흘러 다니며 접속하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배치로서 ‘기관 없는 몸’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이 사회다. 또 역으로 나의 욕망에는 내가 속한 사회의 거대한 욕망이 투여되어 있기도 하다. 내가 만드는 결과물이기도 하면서 또 나를 만들어 낸 기관으로서의 사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욕망이다. 심리학에서 익숙히 들어왔던 결핍과 치유로서의 욕망이 아니라 생성으로서의 욕망. 절단과 접속과 흐름의 배치 속에서 만들어지는 욕망. 들/과는 사회장(社會場)이 ‘욕망에 의해 주파되어 있다’고 하면서 ‘사회적 재생산의 가장 탄압적이고 가장 치명적인 형식들조차도’(같은 책, 64쪽) 욕망에 의해 생산된 것이라고 했다. 이 책 자체가 그들이 놓여 있던 사회적 기반, 즉 프랑스 68혁명과 베트남 전쟁이라는 시대적 욕망의 성찰 위에서 탄생되었다. 나치의 파시즘도 집단의 환상이 되었든 무엇이든 사회적 욕망이 만들어 낸 것이고, 박근혜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탄핵한 것도 우리의 욕망이 만든 것이라는 말이다. 좀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회는 욕망하는 주체들이 흐르는 ‘기관 없는 몸’이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나, 욕망의 모습으로 나에게 투여되는 사회. 나는 사회적 욕망이 투여된 상태 그대로 사유하고 행위하는 아바타일수도 있다. 그런데 욕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마음으로 꿈꾸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으로서만 규정된다. ‘자신이 소비하는 상태들에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날 때만 욕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소비한다는 것은 그렇게 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고정된 정체성으로서의 주체는 없지만 머무르는 상태로서의 주체는 말할 수 있다. 현재의 나를 설명하려면 나의 욕망을 말하면 되고 그 욕망은 내가 소비하는 것, 즉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상태가 곧 나다. 감이당에서 많이 들었던 ‘꼬라지’가 이 말임을 이제야 알았다.

이제 남은 길은 무엇인가? 나라는 고정된 정체성은 애시당초 없는 것이었고, 다만 현재를 사는 그 모습으로서의 내가 있을 뿐이다. 그 모습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투여된 사회적 욕망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욕망 기계로서의 나는 끝없이 절단되며 접속하고 흐르는 가운데서 다시 태어남을 거듭한다. 그러면 내가 무엇과 접속하느냐에 따라, 어떤 배치로 나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른 나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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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나
 
여기에 이르면 이제 나의 질문은 하나다. 무엇과 접속하고 어떻게 나를 배치할 것인가? 지금 내가 안주하고 있는 그곳이 어디인지, 어떤 욕망이 나의 사유와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지, 그 바탕에 어떤 사회적 욕망이 투여되어 있는지,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그 곳으로부터 왜 떠나야 하며 어떤 다른 길을 만들 수 있는지 등의 것으로 파고 들어가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뭉뚱그린 흐릿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료한 것. 그래서 나에게 확 다가오는 질문 말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시작한다. 내게 투여된 사회적 표상이 무엇인지 의식조차 못한 채 아바타로 살고 있는 나. 절단하고 접속하고 흐른다지만 흐름으로 가는 길에 올라타야 흐를 수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욕망하고 동일한 배치로 나를 구성한다면 나는 흐름에 올라탈 수 없다. 이 동일성으로서의 욕망과 배치, 그것은 나에게 습관이다. 습관적 사고, 습관적 반응, 습관적 행동. 이것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 습관은 너무나 오래 길들여져 굳어진 채로 내게 들러붙어 있어서 내가 그것을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 회로조차 이미 막혀버린 것이다. 질문을 하기까지의 나는 그런 동일성의 배치 속에 갇혀 있었다. 주체니 도덕이니 진리니 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도 그런 습관적 장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으니 다른 질문으로 옮겨가기까지 그토록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대로 두어도 나는 욕망 기계이니 어딘가로 흐르긴 흐르겠지만 같은 선분이 이어진 원형의 회로 안에서 맴돌고 있을 수도 있다.
 
들/과라는 스승은 나에게 욕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사한다. 그것은 지금껏 내가 머물렀던 습관적 인식의 회로에서 보면 너무나 낯선 장이다. 결핍이 아닌 욕망이라니! 내가 사는 방식 그 자체로서의 욕망이라니! 내 습관적 인식 안에서 욕망은 늘 치유되어야 할 상처로서의 그것이었고, 모호한 상태로 정체를 숨긴 채 감추어진 것이었는데 말이다. 이 새로운 접속에서 사유하는 욕망은 그래서 복잡할 것이 없다. 너무나 선명하다.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모습. 내 욕망은 단지 그것일 뿐이다. 남보다 잘 살기 위해 경쟁하는 삶보다, 스스로 충만한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렇게 살고 있어야 한다. ‘언젠가는, 이 다음에는’과 같은 조건을 붙이며 다른 것들의 뒤로 유보한다면 내 욕망은 그 다른 것들일 뿐이다. 또한 들/과는 내 욕망에 틀림없이 투여되어 있을 사회의 모습이 나를 어떤 방식의 아바타로 존재하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본주의라는 이 무시무시한 사회체가 내 일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내 사유를 움직이고 있는가? 자식을 키우며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 정체모를 불안 속에, 백수로 살고 있는 현재에 느닷없이 출몰하는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 그 아바타가 있을지 모른다.
 
들/과는 이제 도주와 탈주를 말한다. 동일한 양식의 코드가 작동하는 영토 속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도주이며 탈주이다. 도주하여 다시 새로운 영토를 만들고 거기서부터 다시 도주하는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 욕망기계로서의 개인의 삶이다. 사회체가 작동하는 방식도 궁극적으로는 같다. 영토화와 탈영토화, 재영토화가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것, 그것이 우리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라는 것이다. 프로이드가 관심 갖지 않았던 분열자를 그들이 주목한 것은 그런 역동적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분열자에 관해 말하자면, 끊임없이 이동하고 헤매고 비틀거리는 그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보아, 그는 자신의 기관 없는 몸 위에서 사회체의 해체를 무한히 추구하여 늘 탈영토화 속으로 더 멀리 가는 자이다.
『안티오이디푸스』, 질 들뢰즈·펠릭스 과타리(김재인 역), 민음사, 72쪽 


아니, 분열자가 가장 잘 벗어난 자들이라고? 그들은 미친 사람들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여 주는 분열의 매커니즘이다. 그들은 끝없는 분열 속에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지만 우리가 보려는 것은 그들이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바로 그 방식이다. 우리는 그들의 방식을 통해 ‘더 멀리’ 갈 수 있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새로운 자리로 옮겨가며 끝없이 나를 재배치하는 것. 결국 나를 만드는 것은 계속되는 떠남 속에만 있다. 이런 사유 또한 공부라는 배치 속에 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공부라는 장으로 옮겨왔다. 공부를 통해 이어지는 이 만남 속에서 나는 나라는 욕망기계가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내가 고착되어 있었던 사유의 패턴과 행동의 양식을 미세하게나마 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 것이다. 공부로 만나는 앎의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보게 하고, 공부가 주는 통찰이 질문을 바꾸게 한다. 내가 안주하고 있는 자리의 욕망을 사유하게 하고 그 안주의 편안함을 불편으로 느끼게 한다. 다른 질문이 나를 새로운 영토로 안내한다. 텍스트를 읽고 사유하고 쓰는 이 지난한 과정을 통과할 때, 공부로 만나는 다른 질문 속에서 분열자처럼 헤매고 비틀거릴 때, 나는 나를 향해 운명의 주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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