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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쿵푸’로 만드는 우정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7-01-16 17:34
조회 : 1,558  

 ‘쿵푸’로 만드는 우정 

유승연(감이당 대중지성 토요반)

20년 우정이 끝이 나는가!

‘만인의 연인’으로 통하는 A언니는 20년 된 나의 단짝이다. 직장 동기인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일 뿐만 아니라 서로의 가정사까지 꿰뚫고 있을 만큼 친한 사이다. 까칠하고 주장이 강한 나와는 달리 A언니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쉽게 공감했고 잘 맞춰 주었다. 게다가 싹싹하고 밥도 잘 사서 인기가 많았다. 직원뿐만 아니라 경찰관, 기자, 인근학교 교직원까지 친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나 또한 A언니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올해 6월, A언니가 내 옆 팀장으로 배치됐다.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같이 근무하면서 둘 사이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직원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신규직원과 경력직원이 한명씩 발령이 나자 서로 경력직원을 받겠다고 한바탕 다투었다. 직접 대면하고 의논하면 될 것을 주변사람과 팀원들의 말을 먼저 듣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 서로에게 오해가 쌓였다. 결국은 서운하다는 등, 그럴 줄 몰랐다는 등 심하게 말다툼까지 했다. 누가 봐도 공인된 절친끼리 대놓고 싸우고 나니 창피했다. ‘어떻게 저 언니가 나한테 그럴 수 있지?’라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결국은 나도 똑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과연 친한 사이였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차라리 모르는 남이 더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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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 다툼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처음으로 A언니와 옆에서 일하면서 그녀의 행동이 조금씩 거슬려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분주하고 붕 떠있는 모습,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고 남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보라고 조언도 해봤지만, 그때마다 ‘자신이 없다’며 편한 방법만을 찾곤 했다. 

A언니를 워낙 좋아한 나는 이전에도 다툰 다음에는 늘 내가 먼저 연락하곤 했었다. 이번에도 며칠 후 먼저 사과했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지만, 이미 내 마음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20년간 그토록 친하게 지내며 쌓아왔던 우정이 사사로운 욕심 앞에서 한 순간에 소멸될 수도 있다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과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친하다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궁금한 생각도 들었다.
 
특히 이번 4학기 동안 ‘사람과 연결되어 배우고 다르게 되는 삶’을 공부하면서, 내 주변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친한 게 우정인가?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게 우정인가? 노년이 될수록 공부와 우정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공부를 계속할수록 그동안 친했던 관계들이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우정의 윤리를 배워야 할까?


우정은 원래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
  
현대인들은 우정을 잘 믿지 않거나 쉽게 변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우정이라고 하면 남자들은 직장동료나 고향친구, 동창들과의 술자리나 어울려서 노는 것을 떠올린다. 여자들의 경우는 함께 밥 먹고 수다 떨고 쇼핑하며 시간을 보내면 우정을 나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은 상품과 시간을 소비하면서 그 순간을 지날 뿐이다. 게다가 이런 감정들은 금방 깨지거나 변할 수도 있다. 

근대 이전만 해도 우정이 훨씬 더 보편적인 감정이었다(...) 그럼, 우리 시대는 어떤가? 보시다시피 우정은 삶의 지평에서 증발해 버렸다. 대신 그 자리를 연애와 성이 온통 차지해 버렸다.
(고미숙, 몸과 인문학, 81쪽, 북드라망)

근대 이전에는 우정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관계의 양식이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우정이 사라진 자리를 사랑과 연애가 채웠다. 사람들은 오직 사랑만을 의미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랑은 ‘성’을 뜻한다. 사랑을 하고 있는 남녀는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생로병사가 있듯이 남녀 간의 사랑도 결국엔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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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남녀의 다음 단계는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가족은 가문 공동체이며 마을 공동체였다. 그 곳에서 함께 일하고 놀며 핏줄 이상의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가족의 모델은 다정한 엄마와 정규직인 아빠, 똑똑한 아이가 있는 ‘스위트 홈’이다. 여기에는 공동체가 설 자리가 없다. 오직 내 가족만이 우선시 되며, 내 가족이 아니면 모두 남이라는 지독한 가족주의 회로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해본 사람은 스위트홈이 얼마나 부질없는 망상인지 잘 안다. 요즘은 이처럼 응집력이 컸던 가족주의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미 1인 가구가 4인 가구의 숫자를 넘어섰고 일본에서는 혈연, 지연, 학연이 사라진 무연사회까지 등장했다.

회로를 틀면 된다. 핏줄과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내가 지금 맺고 있는 네트워크 전체로 시야를 확장하는 것이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245쪽, 북드라망)

애초에 허물없이 우정을 나누던 관계는 이처럼 연애나 결혼으로 소원해진다. 작은 충돌 하나만으로도 감정이 상하게 되고, 때론 적이 되기도 한다. 사실 우정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가정일 지도 모른다. 생리적 호르몬이 유효하지 않는 시기가 오면 부부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우정이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혈연의 관계에서 타자들과 만나야 하는 시기다. 가족 삼각형에서 벗어나 친구를 만나고, 선배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혹은 라이벌을 만나서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대가족으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우정을 되살릴 방법은 그렇게 만난 타자들과 공부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다. 


공부의 리듬이 같은 친구를 만나
  
우리 가족도 전형적인 가족 삼각형이었다. 나 또한 오직 남편과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주말에 내가 공부를 하니까 남편과 아들도 운동이나 공부를 한다. 남편과는 친구처럼 되었고 아들은 자립했다. 아들의 제안으로 매달 한번 가족세미나도 연다. 서로 관심 있는 주제나 책으로 집에서 발표와 토론을 하고 저녁을 먹는다. 그 순간은 가족이라기보다 진지한 학인으로 만난다. ‘생명 주권의 차원에서 보면 부모와 자식도 우정의 관계로 거듭나야 한다. 천륜으로 맺어졌으나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벗’이다.(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201, 북드라망) 20년을 같이 살면서도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세미나를 하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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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면서 삶이 단순해지니 그동안 친했던 친구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술자리, 수다, 쇼핑 등을 함께 하지 않으니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의 달라진 신체에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고 있다. 요즘 단짝이 된 B는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대화가 잘 통한다. 감이당을 오가며 읽은 책 이야기도 하고, 상사나 동료들 뒷담화도 하면서 웃다보면 한주간의 스트레스가 싹 풀린다. 식상과다에 병화인 B가 일 때문에 열을 받아 있을 때면 관성이 많고 임수인 내가 그 열을 식혀주기도 한다. 그녀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도 나지만 뭉클하고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든다.  
  
같은 사무실의 C는 책을 좋아한다. 요즘은 내 책상위에 있는 감이당 교재를 다 가져다 읽고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책 이야기를 하면서 커피 한잔 나누는 것이 새로운 기쁨이 되었다. 내가 ‘월든’을 읽고 옷과 책 정리를 했다고 하니 C도 그 책을 읽고 10년 동안 모아두었던 ‘산’잡지를 다 버리니 속이 후련하더란다. 공부의 기운은 파동처럼 흘러 5층 교환실에도 전해졌다. 며칠전, 그간 얼굴만 알고 있던 교환실 D언니에게 메신저가 왔다. MBC 다큐 ‘공부중독’ 프로그램을 한번 보라면서, ‘참 공감이 간다‘는 것이다. 

공부를 해보면 안다. 앎은 그 어떤 보상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그러니 그런 길 위에서 남보다 더 나은 과정도 더 빠른 과정도 있을 수 없다. 자신의 길을 ‘자기 속도’로 걷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또 공부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150쪽, 북드라망)

감이당 수업을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돌아오는 차안에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2차 토론에 들어간다. 참으로 충만하고 자유로운 순간이다. 새롭게 친구가 된 B와 C, D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어떤 보상과 상관없이 행복감을 준다. 가족에게 느끼는 기쁨이나, 맛있는 음식과 여행이 주는 만족감, 직장에서 상사에게 칭찬받을 때의 성취감과는 다른 충만한 감정이다. 나는 그동안 많은 친구를 만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 위로받는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만약, 공부를 전제로 하는 관계라면 훨씬 서로의 삶을 고양시키고 충만하게 해줄 것이다.
  
작년 겨울 잠시 근무했던 부서에 친한 여직원이 있었다. 그녀의 취미는 쇼핑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쇼핑방식이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옷을 입어보고는 매장에서 구입하지 않고 제품 코드를 핸드폰으로 찍어와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이었다. 쇼핑의 달인답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매장보다 몇십만원 싼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했고, 그때마다 ‘앉아서 돈 벌었다’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녀가 운이 좋은 것 같고 공짜로 돈을 벌어들인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몇 번 백화점에 따라가서 번번이 몇십만 원짜리 옷을 사들였다. 몇 년치 옷값을 두달 동안 전부 써버린 셈이다. 살까말까 고민하면 ‘그렇게 고생하는데 이거 하나 못 사냐’며 옆에서 부추기면 나도 모르게 지름신이 발동하여 카드를 긁곤 했다.

사람보다 더 흥미롭고 심오한 텍스트가 있는가. 사람에 대한 탐구, 그것이 곧 우정이고 배움이다. 우정과 지성이 함께 하는 이유다. 책에는 인생과 우주에 대한 담론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건 내가 마주치는 사람을 통해서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155쪽, 북드라망)

사람들은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질적으로 떨어지고 무질서로 변하는 ‘엔트로피 법칙’처럼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산만하게 흩어지고 나쁜 환경에 더 쉽게 빠져들 수 있다. 그러기에 내가 어떤 네트워크에 몸을 담고 있는가는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앎에 대한 욕망이 있다면, 앎을 통해 내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공부의 리듬 안에 있는 신체들과 가까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정으로 순환되는 공부의 네트워크
  
에세이를 쓰는 동안 나는 A언니를 주의깊게 관찰해 보았다. 20년의 우정을 결국은 포기할 수 없었나보다. 인성과다인 A언니는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주위의 시선을 중요시하며 우유부단한 편이라 항상 주변을 의식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대신 친절하고 편안하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등 장점도 많다. 나는 추진력이 강한 편이어서 가끔은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고 내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나와는 기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차이를 인정해야 비로소 교감이 가능하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213쪽, 북드라망)

곰샘은 ‘우정은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게 아니라 상대를 보는 내 시선이 바뀌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상대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되,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지만 가차없이 단절할 수도 있는 게 우정’이라고 했다. 나 또한 그렇게 벗어난 시각에서 보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A언니에 대해서도 그동안 가깝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차이를 인정하다보면, 좀 더 성숙한 관계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안에 배움의 도를 단단하게 갖출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틀린 게 아니고 나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감응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겨야 한다. 나는 관성과다이다. 관성은 내가 책임지는 현장인 만큼 리더십이 원천인데, 그 리더십은 방심하는 순간 계몽적 권위가 될 수 있다. 가끔 팀원들이나 동료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고 지배하려는 습성이 튀어나오는 것을 볼 때, 나야말로 인성으로 순환되는 공부가 꼭 필요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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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코드이다. A언니에게 속상하고 서운했던 점도 바로 이 마음의 코드가 안 맞는데서 오는 상실감이었던 것 같다. 나와 직접 소통하면 될 것을, 팀원과 타 부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고 실제인 듯 말하고 다녔던 점이 내게는 상처가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과의 마음은 연결된다’고 곰샘은 말한다. 

결국 핵심은 마음 둘 곳이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길, 그것이 곧 우정이고 로고스다. 우정이 사람을 연결하는 끈이라면 로고스는 마음을 잇는 파동이다. 사람과 마음을 연결하려면 반드시 진리탐구라는 지평선이 필요하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278쪽, 북드라망)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누는 것, 삶에 있어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좋은 친구는 상대에게 서로의 삶을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명나라 말 양명좌파였던 이탁오는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친구가 아니다’라며 배움과 우정의 일치를 설파했다. 서로의 삶이 더 고양되도록 자극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은 우정이 주는 귀한 선물이다. 계몽적이고 모범적 성향인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부를 권하며 자극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때마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그런 나로 인해 동기부여도 되고 많이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나도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 배우고 싶고 일깨워주길 바라는데, 계속해서 내가 이끌어주어야 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될 때는 권태와 한계를 동시에 느낀다. 나 또한 관계를 통해 앎과 깨달음으로 인한 신체적 역량이 증가되는 기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삶,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경제적인 여유와 높은 지위 등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건 이미 공부를 통해 알고 있다. 소통이 되고 함께 대화를 나눌만한 좋은 벗이야말로 풍요로운 삶의 필수 조건이라 생각한다. 우정으로 지혜를 나누는 것보다 더 창조적이고 신체적 역량을 증가시켜주는 것은 없다. 좋은 친구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보자. 공부를 통해 나와 상대의 삶을 고양시켜 줄 수 있는 우정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보자. 지금이야말로 내 존재를 친구들과 함께 ‘쿵푸’하는 삶을 기획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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