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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글을 쓴다는 것은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06-04 13:16
조회 : 408  


글을 쓴다는 것은


박은영(감이당 장자스쿨)


  3월말이 되자 해인네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 글을 모았다. A학인이 최종원고를 내기 전에 글을 봐달라며 왔다. 나와 B는 같이 글을 읽어 내려갔다. 전체적인 흐름은 몇 번의 수정이 있어서 그럭저럭 매끄러웠다. 하지만 문장이 몇 군데 걸리는 곳이 있었다.


  이 문장은 주어가 너무 길어요. 문장의 순서를 바꿔서 주어를 짧게 하면 읽는데 더 명료할 것 같아요.”

  나도 아는데 앞 문장을 받으려고 일부러 그런 거야. 문장이 많이 이상해?”

  “이 문장도 그냥 반면으로 고쳐 쓰면 문장이 깔끔할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한데 그렇게 줄이면 쓸 말이 없어. 정말 이상해?”

  “비문은 아니니 정말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바꾸면 문장이 간결해지죠.”

 

   A학인은 글을 봐달라고 가져왔지만 나와 B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학인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면 왜 글을 봐달라고 가져왔는지 화가 났다. 나는 A학인을 바라보지도 않고 외워야 하는 주역 괘를 쓰며 투덜거렸다. A학인은 방을 나가더니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A학인의 행동을 보며 작년 구비문학을 책으로 내기 위해 작업하던 때가 생각났다. 1차로 원문을 보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다듬어 가면 학인들과 함께 2차 윤문작업을 했다. 내 글을 읽고 학인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참 재미없게도 써왔다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학인들은 나에게 스토리는 재미있는데, 너무 설명조가 많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이런 저런 설명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엔 학인들이 코멘트 해 준대로 수정을 하고 다시 읽어보면 무언가 빠진 것처럼 허전했다. 바쁜 시간을 내어 글을 봐주는 학인들의 마음이 고마우니 싫다는 소리도 못하고 고쳐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어보니 글이 훨씬 경쾌해졌다.

  또 하나 자주 듣는 말은 글이 건조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빼빼 말라서 살이 없듯 글도 빼빼 말랐어.”, “사건만 있지 서사가 없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평소 일의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말만 전달하던 태도가 그대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구비문학 작업을 하면서 학인들과 많이 웃고 떠들며 오랜 시간 작업하다 보니 속마음도 터놓게 되었다. 학인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지니 코멘트도 더 달갑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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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일로서만 대한 태도가 이런 습관을 만든 듯하다. 마음보다는 말로써 일을 하려하니 설명을 해야 뜻이 통할 것 같아 군더더기의 설명을 붙이게 되었다. 평소 다른 사람의 실수를 자주 지적하다 보니 나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 사람들 앞에서 경직되었다. 그런 점이 글을 건조하게 만들었다.

  감이당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어떤 일을 할 때 큰 어려움 없이 해내지만 글쓰기만은 쉽지 않다. 지난 4년 동안 공부하면서 에세이는 대충 때우고 넘어가는 숙제였다. 그동안 나에게 글쓰기는 중요하지 않았었다. 공동체에서 같이 공부는 하고 싶고, 글쓰기의 장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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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나에게 책의 서문이라는 피할 수 없는 난관이 왔다. 낭송 옛이야기 책 만들기를 6명이 함께 시작했는데 나는 서문에 걸려 낙오되었다. 뒤늦게 서문을 쓰며 수없이 수정 과정을 거쳤다. 이것은 결코 대충 써서 넘어갈 수 있는 글쓰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서문을 쓰며 지금까지 대충했던 공부가 여기서 걸리는구나 싶었다. 텍스트를 볼 때 생각 없이 글만 읽어 내려가고, 그 마저도 여러 번 읽지 않고 한 번 읽어가기도 급급했다. 글을 쓸 때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유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지점이 오면 다른 내용으로 튀어버렸다. 문제를 제기하고 이제 파야할 지점이 오면 글을 얼른 마무리하고 나왔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니 글을 제대로 쓸 수 있었겠는가.

  윤문 작업은 마쳐놨는데 서문 때문에 마무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창피한 일이었다. 내 능력의 바닥을 보여주는 것이 창피하고, 감이당도 공부 하러 못가고, 해인네에서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의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글이 다듬어졌다. 꼭 해내야 겠다는 다부진 마음을 먹고 글을 쓰니 주변에서도 도와주어 글이 완성되었다.

  공부의 장에 있으면서 소식지의 글을 대충해서 넘기려는 A학인의 모습이 싫었다. 소식지라는 공통의 작업에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에세이 쓸 때 대충 때우고 넘어가기도 하고, 가끔은 이마저도 쓰지 않고 벌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이제는 왜 글을 그토록 쓰라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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