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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나는 왜 이곳에 머무르는가?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8-06-22 17:41
조회 : 454  




나는 왜 이곳에 머무르는가? 




고혜경 (감이당 장자스쿨)

  가슴 한 구석에서 아귀가 안 맞는 문짝이 바람에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그 소리는 작년 하반기부터 점점 크게 자주 들렸다. 나는 감이당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이 나던 해부터 다녔다. 그때 나는 결핍, 원망, 우울로 삶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다. 시절 인연이 닿았기 때문일까? 우연히 이 공부 공동체와 만나며 마음에 균열이 일어났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지진만큼이나 획기적인 일이었다. 몇 년 동안 새로운 만남(책, 학우들)이 주는 즐거움에 취해 있었다. 좋았다. 적당한 소속감, 속물적 아줌마들과 다르다는 적당한 착각 등등. 착각은 착각일 뿐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삶을 바꾸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섰는지 자신에겐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기분에 들떠 있었다. 그 기분으로 여기까지 왔나보다.
  문제는 글이었다. 글은 적나라한 자신을 들어냈다. 적당함에서 깨고 싶지 않은 자신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돋보기로 햇볕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에너지가 없는 글은 산만했다. 절실함이 없었다. 자신의 심연과 마주하지 못한 글들은 맥락이 없었다. 자신에게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글쓰기였다. 적당함이 주는 안락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만큼 심연도 점점 커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삐거덕 소리가 크게 들린 것은 적당함과 심연의 간극을 심신이 감당할 수 없어 몸이 보낸 신호인 것 같다.
  학술제였다. 동의보감 팀에서 양생 세미나를 열었다. 나도 동의보감 속의 재밌는 이야기들을  엮기로 했다. 뜻은 창대했으나 결과는 미미하여 학술제 전날 발표를 포기했다. 무거움, 홀가분함, 화남, 쑥스러움, 발표자에 대한 부러움 등의 감정들이 뒤엉켰다. 혼란스런 감정 때문이었을까? 도둑이 제 발 저린 느낌 때문일까? 하필 곰샘 옆에 앉았다. 곰샘이 물었다.

    “선생님은 왜 안하세요?”
    “이야기의 핵심에 가 닿지 못했나 봐요.”
    “아니, 시간이 그렇게 많았는데....”
    “으으ㅡ음,  몰라, 몰라.” 

  몸을 비비꼬며 콧소리를 냈다. 문제의 핵심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어 익숙한 퇴행과 자책으로 가버렸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기 위해 아주 열심히 자책을 했다. 자책만 하고 문제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꿀 어떤 행동도 필요 없었다. 정면을 보지 않는 익숙한 패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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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완성 하지 못했을까? 몇 주에 걸쳐 함께 준비를 한 동료들의 의견이 내게 닿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7년이나 이곳을 들락거렸으니 그럴듯한 그림이 나와야한다는 자의식? 햇수가 묵으며 자신의 동력이 아니고 좀비처럼 오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실체가 초라하니 크게 보여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나보다. 적나라한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으니 자신이 아닌 무엇이 되어야한다. 자신을 부정해야하고 그것은 두려움이 되는 악순환이다. 숨기려 하는 것은 남들이 먼저 안다. 마치 꿩이 머리만 풀숲에 처박고 숨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나는 왜 공부에 적을 두고 있는 것일까? 그럴듯해 보여서? 나는 여기까지일까? 그럼 감이당을 그만두어야하나? 난 이곳을 무엇이라고 여겼으며 어떤 의미를 두고 다녔나? 7년간 즐거운 기분으로 자신을 속이려고 다녔나? 막막한 현실을 피하려 감이당을 마약으로 이용했나? 공부가 독이 되는 모델이 나인가? 공부를 통해 만났던 여러 얼굴이 스친다. 그들의 인격과 지성, 진심으로 나눴던 여러 대화들.......
  올 해 장년들의 자립을 모토로 하는 장자스쿨의 등록을 많이 망설였다. 적당함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어떤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느낌이었다. 끓든지, 그냥 사라지든지. 얼버무리고 다닐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그러나 또, 새로운 결심, 각오 없이 끌려가듯, 습관처럼 등록했다. 책은 읽히지 않았고 기관지염으로 인한 기침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으며 한 달 넘게 계속되었다. 누우면 땅 속으로 아득히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이대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램과 안 돼! 두려워 가까이 하지 못했던 삶과 한 번이라도 맞붙고 싶은 바램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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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가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스스로 펌핑이 안 돼 마중물을 맞을 수 있다. 2011년 나는 분명 이곳에서 시원하고 색다른 마중물을 들이켰다. 그 맛과 충격은 잊을 수 없다. 문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외부의 물만 계속 찾은 것이다. 마중물은 스스로 펌핑을 할 수 있게 하는 윤활유의 역할이다. 나는 자력으로 갈 용기를 내지 않았다. 해보지도 않고 힘들 거라고, 안될 거라고 지레 겁을 먹었다.
  왜? 편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쓰레기(원망, 후회 등)일망정 익숙한 것을 놓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변화의 낯선 기쁨보다 익숙한 지옥이 더 편한 것일까? 내가 공부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립, 자유? 정말?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도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나는 힘센 무엇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번번이 시행착오였다. 내 멋대로 만든 표상은 언제나 허무하게 깨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의지하더라도 내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언젠가 스스로 갈 수 있었다. 허공에 떠 있으니 바람만 불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날라 간다.
  오픈한 식당 앞의 풍선 인형이 바람에 따라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춤을 춘다. 저것이 나일까? 아니다. 나는 빨간 피가 흐르고 이런 자기 분열적 생각을 고민하는 인식이 있다. 그것은 한편 괴로운 일이다. 불편하더라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껴안자. 이번이 내 생에서 비겁함을 벗어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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