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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내 안의 자연, 무의식의 외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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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8-07-04 14:47 조회1,7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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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자연, 무의식의 외부성




 임 경 아

 

얼마 전, 중학생 아들이 밤 10시에 집에 와서 독서토론 수업이 너무 늦게 끝나서 힘들다고 엄청 투덜댔다. 의례히 하는 말이라고 넘기기엔 불평의 정도가 심해서 다음날 아이를 붙들고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힘든지 얘기해 보자고 했다. 아이는 자신의 관심사인 과학이나 수학 관련 책은 없고 2주에 한 번씩 주로 문학과 철학 분야만 읽다보니 별 재미가 없다면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즐겁게 더 많이 읽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싶어서, 독서토론 지도 선생님께 상의를 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너무 의외라고 하시면서 평소에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고, 게다가 글도 항상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쓰는 편이라 오히려 생기 있다는 느낌이었다며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셨다.
 

‘어라,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너무 쉽게 원인을 찾았다 했더니 역시나 아니었나보다 싶어서 언제부터 책읽기 공부가 하기 싫었는지, 이전과 달라진 지점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캐물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건 아이가 작년 12월에 쇄골을 크게 다쳐서 거의 운동을 못하면서 기초체력이 상당히 저하되어 있었고, 그러다보니 월요일 밤 늦게 집에 오는 게 자기 딴에는 많이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난달부터 영어학원 숙제도 많아져서 심적으로 더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연결고리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월요일 저녁마다 피곤하고 지치다보니 독서토론 수업이 하기 싫다는 감정만 남게 된 것이다.
 

결국은 걷기나 운동이 가장 우선순위로 해야 할 일이었는데도 엉뚱한 지점에서 헤맬 뻔했다. 물론 관심분야 책이 아니라는 것, 저녁 늦은 시간에 하는 공부가 부담스럽다는 것 등이 모두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하나의 사건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서로 얽혀 있는데 그 점을 나도 간과한 것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요인들을 갈래갈래 나눠서 보는 힘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지만, 사실 다 큰 어른들도 ‘내 마음 나도 몰라’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직장에서도 보면 자기 자신도 명확한 이유를 모르는 상태로 시름시름 아프다가 퇴사하는 신입사원들이 꽤 많다. 우리는 보통 인권의 차원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고 믿으며, 남과 내가 구별되는 지점은 자기만의 특별한 자아, 내면, 영혼 등 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각자 자기 안에 고유한 공간이 있다고 믿는데 막상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본인도 알 수 없을 만큼 너무 은밀한 것인가? ^^;;  결국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물론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자기를 탐구하는 기회로 활용하면 좋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은 전문가라는 권위에 기대려 하기 때문에 결국 해결책을 찾아 전전하게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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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 이런 걸까요? 

 인류학에서는 이런 경우 일명 ‘꿈 추측 제의’를 통해 타인의 영혼이 원하는 것을 가시화하는 사례가 있다.


 예수교 선교사들은 또한 대부분의 이로쿼이 어족 사람들이 가능한 한 이런 종류의 “영적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이웃과 친척들의 의무로 간주하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것이 중요한 사람의 꿈인 경우 그것의 의미를 밝히고 그 실현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즉시 모임이 소집되기도 했다. 명백하게 실현 불가능한 소망인 경우에는 상징적 방식으로 이를 해소할 수도 있었다. <중략>
 매년 열리는 동지제의의 한 부분인 꿈 추측 축제 역시 꿈에 대해 비슷한 이해를 보여 준다. 이 축제에서 사람들은 수수께끼나 몸짓 등을 통해 서로에게 자신의 꿈을 표현하고 서로 이 내용을 알아맞히기 위해 노력했다. 설사 꿈을 꾼 사람이 자신 꿈의 내용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경우라도 이를 직설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친구나 이웃들이 그 사람의 “영혼이 갈망”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차례로 이런저런 물건들을 그에게 제시하는 과정이 이 축제의 주요한 절차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병이 나고 그 병이 실현되지 않은 꿈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같은 종류의 행사가 치러지곤 했다.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그린비, 데이비드 그레이버, 300쪽~301쪽)
      
 사람이라는 개념과 관련해서 우리는 이미 두 가지 측면을 검토했다. 우선 이로쿼이 5부족 내에서 영원히 부활하는 이름을 통해 구현되는, 형식적이고 모스적인 의미에서의 사람, 페르소나 개념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욕망의 거주지 혹은 내면의 “영혼”이라는 개념 역시 존재한다. 전자가 왐펌 같은 가시적 대상을 통해 구현된다면 후자는 궁극적으로 비가시적인 존재로서 대개는 꿈이나 목소리를 통해서만 인지된다고 여겨진다. 양자 모두는 어느 정도 의식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때 양자가 갖는 외부성은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름이 사회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외부적이라면, 영혼은 너무나 내면적인 것이며 따라서 욕망의 당사자조차 그것을 전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외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꿈은 이런 내면적 영혼의 욕망 혹은 “언어”이며 이 언어를 통해 숨겨진 비가시적 욕망이 가시적 형태를 갖게 된다. 그러나 월리스는 숨겨진 욕망이 특정하고 지속적인 물질적 형태를 통해 구체화되고 표면적으로 가시화되는 과정이 오직 다른 사람의 참여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그린비, 데이비드 그레이버, 310쪽) 


처음에 영혼이 너무 은밀하여 외부적이라는 말이 정말 특이하고 기이했다. 우리는 보통 남들이 말하는 나는 왜곡된 모습이거나 특정한 일면인 경우가 대다수고, 나만 알고 있는 진짜 ‘나’라는 모습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에 혹은 말투나 태도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오해 받고 있다” 그런 말들을 상당히 자주 한다. 
 

그래서 어떤 외부적 상황에도 결코 훼손되지 않는 순수한 결정체인 ‘나’란 존재가 있고, 그게 진정한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결국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온전한 나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인데, 이로쿼이족은 주로 이 내면 혹은 영혼에는 욕망이 거주한다고 보았다. 이 영적 소망은 숨겨져 있기 때문에 가시화하기 위해선 꿈을 단서로 삼아 다른 사람이 그의 욕망을 추측해 내야 한다. 이렇게 표면으로 끌어내지 않으면 이유 없이 병이 나거나 타인에게 폭력적인 행태를 보인다.
 

조금 가벼운 예를 들면, 어린 아이들은 하루 종일 뛰놀거나 바깥활동을 해서 피곤한데도, 더 놀고 싶다고 떼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때 울고불고 해도 억지로라도 활동을 멈추고 쉬거나 잠을 자게 해야지 안그러면 자기도 이유를 모르고 엄청 짜증을 부린다. 
 

과연 아이들만 이럴까? 회사에서 면담을 해보면 일이 많아서 이른바 분노 게이지가 올라갔는데 본인은 자꾸만 ‘일이 많은 건 괜찮다. 심지어 재미있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상사나 동료 때문에 힘들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대부분 업무 강도를 확 줄여주면 주변 사람은 바뀌지 않아도 불만이 없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기 때문에 업무량은 문제 삼지 않는 것일까? 물론 이 경우 자기 자신도 실제로 일 때문에 힘든 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로쿼이 족이 친구나 이웃의 참여를 통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아내는 건 상당히 합리적인 방식이다. 
 

이로쿼이 족과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마음의 밑바닥은 외부와 연결되는 곳이라고 말하는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가 있다. 그는 이른바 영혼의 심연은 의미가 발생하기 이전의 공간이고 자신의 의식을 뛰어넘은(초월한) 스피리트와 접촉하는 장소이기에 인간 내부의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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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인간  내부의 자연은 이런 모습? 스피리트와 만나는 공간!


어찌되었든 두 경우 모두 인류에게만 존재하는 무의식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히 안쪽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바깥쪽으로 나와 버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살피기 위해 요즘처럼 정신과 의사와 같은 전문가를 찾는 것과 이로쿼이 족처럼 부족사람끼리 상대의 내밀한 욕망을 찾는 것은 타인의 개입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으나, 전자는 하나의 본질적 자아가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지는 것이고 후자는 매번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가시화되는 ‘다층적인’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 논리를 따라가면 이 ‘숨겨진 잠재태’들은 스피리트(정령)와 접촉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증식하고 변이하여 매번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다르게 가시화된다. 인간의 무의식은 감정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 안의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고 언제나 자신을 하나의 실체로 고정하여 의미화하면 나도 모르게 이유 없이 무기력하고 우울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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