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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 글소식] 잘 쓴 글과 못 쓴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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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8-07-11 10:46 조회2,4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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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글과 못 쓴 글들

 

 

 

 

 

 

최희진(읽생 철학학교)

  

 

 

불후의 명작

 

나는 오래 전부터 불후의 명작이 될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글쓰기가 나를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과 구원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의아하지만, 멋있는 작가들마다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 말은 아주 그럴듯하게 들렸다. 

 

하지만 명작은 생각만큼 쉽게 써지지 않았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글을 못 쓴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취한 방법은, 일단 지금은 안 쓰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두 개의 글만 있었다. 잘 쓴 글과 못 쓴 글들. 나에게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었고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글을 못 쓰는 지금의 나와, 불후의 명작을 쓰는 작가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수록 글을 써보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언젠가 때가 되면 좋은 글들을 써낼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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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글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엄숙하고 진지해져 갔다. 글이란 순수한 창작물이므로 다른 것들은 거기에 개입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의 영향을 받아 변형이 생긴다거나 다른 이의 생각과 조언을 녹여서 글을 쓴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글이 아니다, 글이란 절대적이고 고유하고 개별적인 것이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것! 불순한 것들이 섞이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 이렇게 나에게서 글이 점점 숭고(?)해져갈수록, 글을 쓰지 못하는 내 현실은 초라해져만 갔다.

 

 

 

오백 개의 손

 

 


기다리는 자의 문제. ―어떤 문제의 해결점이 그 안에서 잠자고 있는 보다 높은 인간이 그래도 적절한 시간에 행동에 옮기기 위해서는 ―말하자면 ‘분출하기 위해서는’ 행운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구석에는 앉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며, 그러나 기다려도 헛되다는 사실을 더욱 알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그들을 깨우는 고함소리가, 행동을 허용하는 저 우연이 너무 늦게 다가온다. ―그때는 조용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행동하기 위한 최상의 청춘과 힘을 이미 다 써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가 ‘벌떡 일어섰을’ 때, 사지가 마비되고 정신이 이미 너무 무거워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놀랐던 것일까! “너무 늦었다!” ―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그는 자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이제 영원히 쓸모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천재의 영역에서는 ‘손 없는 라파엘’이라는 말이, 이 용어를 가장 폭넓은 의미로 이해하는 한, 예외가 아니라 통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천재란 아마 결코 그렇게 드문 것은 아니리라 : 그러나 드문 것은 ‘적절한 때’ ―를 마음대로 지배하기 위해, 우연의 앞 머리털을 잡기 위해, 필요로 하는 5백 개의 손이다! 

(니체, 『선악의 저편』, 책세상, 298쪽)

 

 

화가 라파엘로는 당대에 너무 유명했던 탓에 여기저기서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는데, 그는 그 많은 주문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엄청나게 많은 주문 제작 그림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의뢰인들의 주문에 맞게 그렸고, 건축물에 맞추어 벽화를 그렸다. 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모델에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그렸다. 그래서 그를 천재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보다는 노력을 많이 한 화가임을 강조하는 표현이 ‘손 없는 라파엘’이라는 말이다. 엄청나게 많은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양식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유명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에게 손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천재라는 말은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니체는 라파엘로를 긍정하는 반면에, 때를 기다리고만 있는 자의 문제를 지적한다.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잠재력’을 믿고 언젠가 폭발할 때를 기다리는 자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행운이나 우연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후미진 구석에 앉아 있다가 ‘우연’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 우연의 밋밋한 뒷머리를 잡으려고 움직이면 늘 한 발 늦는다. ‘우연’이 지나갈 만한 모든 길목에서 우연의 앞머리를 잡아채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기회를 잡으려면 능동적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작가란 내면에서 영감을 끌어올리는 사람, 타고난 재능을 지닌 비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왔다. 단번에 훌륭한 글을 써내야지,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본다는 이유로 실패할 글들을 쓰는 것은 오점만 남긴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니체를 읽으니 이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적절한 때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글쓰기를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니체의 태도를 가져오는 것으로 묵은 고민이 해결되는 것인가 싶었다. 

 

 


바꿔야 할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

 

하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과거에 멋있는 작가들의 글을 읽고 글쓰기로 구원 받으리라 생각했던 것과, 최근에 더 멋있는 니체의 글을 읽고 다양한 글쓰기를 실험해봐야겠다고 생각을 약간 바꾸게 된 것이 정말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옛날엔 저것이 좋아 보여서 저것을 취했었는데, 지금은 이것이 좋아 보이니 이것을 취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내 질문은 과거에도 지금도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해야 불후의 명작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라는 내가 처음부터 들고 있었던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한 것이 아닐까. 내가 들고 있는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잠자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적절한 때란, 무언가를 행동에 옮겼을 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때이다. 하지만 니체는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행동하는 시점뿐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는 순간 다른 조건들도 함께 변한다. 결국 그들에게 적절한 때란 영원히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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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그 자체로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었다. 성공과 실패를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글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든 조건과 환경과 영향을 제거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오백 개의 손으로 쓰는 글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완성된 글이 아니라 글쓰기의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바꾸는 게 좋겠다. 어떤 글쓰기인가, 다시 말해 시도이자 실험 그 자체일 뿐 그밖에 다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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