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Q 글소식] 탁월해지기 위한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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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8-12-06 23:05 조회2,1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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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해지기 위한 경쟁
이호정
난 ‘경쟁’을 아주 싫어한다. 누구랑 싸워 이길 자신도 없지만, 굳이 이겨야 할 가치를 전혀 못 느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왜 그런 이기고 지는 문제에 힘을 쏟아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과 몸은 다른 법. 내 안에서는 ‘이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불쑥불쑥 올라와 나를 당황스럽게 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 마음을 애써 부정해보려 하지만, 계속해서 올라오는 것을 어쩔 수는 없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인들의 경합 문화는 아주 신선하다. 그들의 경쟁은 우리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일단, 경합을 벌이는 가치부터가 참 새롭다.
하나의 경쟁적인 도덕 가치로서 탁월함은 강한 의무와 책임감을 동반하는 개념이다.
(토머스 R.마틴, 『고대 그리스사』, 책과함께, 97쪽)
그들은 ‘탁월함’이라는 가치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그 때의 ‘탁월함’이란 단순히 누구에 비해 능력이 뛰어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이 얼마나 훌륭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와 같은 탁월함은 ‘강한 의무와 책임감’을 동반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을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열렬히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이다.
‘탁월함’의 경쟁은 특정한 행동 규범을 낳는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가장 탁월한 자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맡겼는데, 그들은 ‘엘리트’라고 불렸다. 엘리트 구성원들의 기본 조건은 부와 지위를 갖춘 집안이었다. 자기 자신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어야 공적인 생활도 책임질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은 행동으로써 자신들의 탁월함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 행동은 곧 그들의 공동체인 폴리스에 도움이 되고 사람들의 존경을 이끌어내는 명예로운 일로 이어졌다.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 속 영웅들의 행위 역시 바로 그 ‘탁월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영웅들은 그리스인들에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탁월한 자들을 보고 ‘나도 탁월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 그게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경쟁이었다. 그럴 때의 경쟁은 우리의 것과 어떻게 다를까?
오늘날의 경쟁은 다른 사람들을 이기고 누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에 따른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을 받는 것이 경쟁의 핵심 목적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의 경쟁은 다른 사람을 쳐다볼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더욱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삶이 탁월해지기 위해서 내 힘을 끝까지 쓰는 것, 그것만이 경쟁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쟁은 탐욕을 내려놓고 맑은 마음으로 깨어 있으려고 할 때에 가능하다. 그 싸움의 상대자는 타인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하니까.
그럼에도 탁월함의 경쟁에서 타인은 아주 중요하다. 혼자서는 결코 자신의 힘을 다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헬스장을 혼자 누리지 못하고 PT강사와 꼭 함께 누려야만 하는 것을 보라.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힘을 쓰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심과 같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다. 탁월함의 경쟁에서 타인은 나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다. 다른 사람이 없다면 나의 삶이 탁월해지는 것도 꿈꿀 수 없는 일이다. 경쟁의 방향을 이렇게 바꿔보는 것, 새로운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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