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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Q글소식]<홍루몽의 페이지들> - 인연이 펼쳐지는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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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05-02 22:00 조회2,36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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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펼쳐지는 극장


김희진(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다시 만난 현실 너머의 세계

  며칠 전에 새 차를 뽑았다. 결혼하고서 처음 사는 새 차다. 나는 시루떡 반 말과 머릿고기 등을 준비해놓고 한 동네에 사는 친정식구들을 모두 불러 차 고사를 지냈다.

  예전엔 믿었으나 커서 안 믿게 되었다가 이제와 다시 믿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귀신의 존재를 전제하면서 제사나 고사를 지내는 일이다. 어렸을 땐 귀신이 정말정말 무서웠고, 제사를 지낼 때는 한 쪽 구석에서 할아버지 귀신, 할머니 귀신이 오는 걸 상상하며 촉을 세워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지를 살피곤 했다. 물론 커서는 그런 것들을 비웃고, 제사나 고사는 그냥 산 사람들끼리 정답게 지내려는 것일 뿐이라며, 귀신이건 기운이건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아마도, 아이를 낳으면서 다시 생각이 바뀌었던 듯하다. 어떻게 생명이 잉태되어 우리에게 왔는지, 그 인연에 그저 감사하고 삼가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차에 절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퀴에 막걸리를 뿌리노라니, 진심으로 천지신명께 무사고를 기원하였고, 이제 우리 가족이 된 이 차와의 인연이 오래오래 가기를 바랬다.

 

  전생 역시 내가 믿었다가 무시했다가 다시 믿게 된 것 중 하나인데, 근래 무턱대고 읽고 외웠던 불경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홍루몽의 첫 페이지를 이야기해보자. 홍루몽의 주인공인 보옥의 전생은 두 가지 인연이 얽혀있다. 신선세계에서 초목에 물을 주던 신영시자라는 신선이 범심을 일으켜 인간세상에 태어나고자 하였다. 때마침 또 인간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었던 돌덩이가 있어 돌 옆을 지나가던 두 신선들이 그 돌을 작은 옥으로 변신시켜서, 신영시자가 환생하는데 덤으로 같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돌은 여와가 구운 돌이라 신령한 기운이 서려있었고, 옥이 되어 아기의 입에 물린 채 함께 태어나는데, 그 아기 곧 보옥이의 정신(마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앗, 그런데 책에는 이 돌이 보옥의 정신을 이루었다느니, 보옥의 전생이 두 가지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없다. 소설의 복잡한 인연을 읽고 또 읽어, 면밀히 연구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이다^^.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대옥이도 이 전생 스토리에 끼여 있다. 신영시자가 신선세계에서 매일같이 강주초라는 초목에 물을 대주었는데 아니 글쎄, 이 초목이 정성어린 보살핌에 영원한 생명을 얻더니 급기야 ‘초목의 자태를 벗어 던지고 마침내 아리따운 여자의 몸이’ 된 것이다. 이런 마법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우렁각시와 노총각’처럼 이 아리따운 여자를 각시삼아 알콩달콩 살 수도 있을 텐데, 신선세계엔 역시 족쇄 같은 결혼제도는 없나보다. 결혼제도만 없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사귀는 것도 아마 불가능인 듯. 이 여인은 “종일토록 이한천의 밖을 노닐며 배고프면 밀청과를 따먹고 목마르면 관수해의 물을 먹”으며 자유를 누렸다. 화초와 신선으로 매일 만나던 신영시자와는 신선세계에서는 더 이상 엮이는 인연이 없었는지, 신영시자가 인간세상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이 강주초 여인은 은혜를 갚으러 따라가겠다고 한다. 오~ 이것은 사랑!!! 바로 이 사건이 홍루몽의 온갖 풍류사건의 시발점이 된다. 그런데 이 여인, 어떻게 은혜를 갚을지 자신의 바램을 얘기해보는데,

“그분은 감로를 뿌려 준 은덕을 갖고 계시지만 저는 돌려 드릴 물이 없습니다. 그분이 세상에 내려가신다면, 저도 따라가 인간이 되어 저의 한평생 품은 모든 눈물로 돌려드리고자 하옵니다. 그리하면 그나마 보답이 되지 않겠사옵니까.”(1권, 35쪽)

 

이렇게 대옥과 보옥의 눈물어린 인연이 시작되고, 홍루몽의 수많은 인연들도 그들을 따라 앞다투어 인간세상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홍루몽의 주인공인 보옥의 전생은 두 가지 인연이 얽혀있다

엉뚱한 전개 - 이번 생(生)

  소설에선 몇 줄 안 되는 전생의 연을 나의 상상과 추정을 덧붙여 길게 설명한 것은 대옥이와 보옥이의 엇갈린 운명이 이 전생의 업보와 연관이 되어야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옥이와 보옥이는 한 살 차이가 나는데 둘이 열 살이 채 안된 무렵 처음 만나게 된다. 둘은 고종사촌 지간으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은 대옥이가 외할머니 집에 의탁하러 와서 외할머니의 친손자인 보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대옥의 자태를 보니,

찡그린 듯 아닌 듯 푸른 연기 걸린 듯한 굽은 두 눈썹, 기뻐하는 듯 아닌 듯 정을 담뿍 머금은 두 눈빛. 슬픔 어린 두 뺨에서 우아한 자태가 피어나고, 나약한 병든 몸에서 아리따운 풍류가 흐른다. 눈물자국은 점점이 찍혀있고, 기침소리 희미하게 나오는데, 멈춰 설 때는 예쁜 꽃송이 물 위에 비추는 듯하고 움직일 때는 가는 버들가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여라. 총명한 마음은 비간보다 한 수 더하고, 병약한 교태는 서시를 뛰어넘는다. (1권, 90쪽)

  이 설명을 듣자, 나는 전생의 강주초가 이렇게 생겼겠구나, 라며 그 초목의 자태를 눈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눈물과 기침이라, 기침은 폐가 약하다는 것이고 폐는 슬픔을 주관하니 대옥에겐 천성적으로 슬픔의 정서가 몸에 배어 있다는 뜻이다. 대옥이는 인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며, 아무 일도 아닌데 눈물을 흘려댄다. 외할머니 집에 얹혀 있다고 눈치를 보며 울고, 보옥오빠의 행동을 오해하면서 울고, 보옥 오빠의 마음을 알아도 운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우는, 그야말로 ‘청승’ 그 자체라고나 할까?

  대옥은 보옥과 한 집에서 크기 때문에, 투닥투닥 다투기도 하면서 맨날 울 일을 만들어내는데, 대개는 대옥이가 오해를 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경우다. 대옥의 다른 면모에는 시도 잘 짓고, 꿰뚫어 보듯 날카롭게 말하는 영리한 면도 있지만, 자꾸만 자기 비하를 하면서 눈치를 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못 표현하는 걸 보면 나는 고구마 10개를 혼자 먹은 듯 했다. 결국 보옥이가 자기가 아닌 이종사촌 누나와 결혼을 하게 되자, 보옥이가 결혼을 하는 날, 피를 토하고(폐병) 울부짖으며 죽는다(슬픔).

  울기로 작정을 하고 태어났으니, 울다가 죽었다. 홍루몽에서는 대옥이 뿐 아니라 금릉의 훌륭한 여자 12명이 모두 비극적으로 삶이 정해져 있는 채로 이 세상에 왔다. 그보다 조금 덜 훌륭한 다른 여인들과, 그보다 쬐금 더 떨어지는 시녀 급의 여자아이들도 어떤 삶을 살지 이미 책으로 정해져 있다. 그 책은 이생의 풍류사건을 주관하는 경환선녀가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이번 생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인가? 피할 수 없이 전생의 업보대로 살라는 건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눈물로 되갚아드리겠다고 하고 인간세상에 왔으니, 대옥이는 보옥이와 결혼했어도 울었을 것이고, 어떤 다른 일을 만들어서라도 울다가 죽었을 것이다. 오, 젠장.

  이렇게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하면, 내가 우연이라고 생각한 모든 일들 역시 필연적인 것이다. 아침에 점을 쳤더니, 귀인을 만날 운이 나오고, 정말로 길에서 누군가가 척 나타나 도움을 준다는 것 같다.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필연성을 모를 뿐인 것이다.

  이 말을 믿건 안 믿건, 이 쯤 되면 슬그머니 궁금해진다. 나의 전생은 뭐였을까? 나는 어떤 바램을 가지고 삶을 얻었기에 지금 이 모냥 이 꼴로 살고 있는가!? 그게 뭐였든 간에, 그럼 이번 생은 이대로? 쳇, 흥이다.

  나는 홍루몽을 처음 읽었을 때,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것이 궁금했다. 금릉12차 여인들의 앞으로 펼쳐질 비극적 숙명이 1권 앞부분에 죽 나열된 것이 참 낯설었다. 미리 정해진 것도, 그것이 모조리 비극인 것도.

  우리의 이번 생은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인가? 피할 수 없이 전생의 업보대로 살라는 건가?

다음 생의 극본

  홍루몽의 전생의 연에 따르면 삶은 한 편의 연극이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있으며, 그 대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누군가를 원망하며 울고 있다면 그건 분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 그냥 내가 그 사람한테 나도 모르게 받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갚았다고. 마치 강주초가 전생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것을 얻고서, 인간세상에서 눈물로 갚듯이 말이다. 대옥이 다시 신선세계로 돌아가면 그 은혜를 갚고 왔다고 얼마나 홀가분할까? 그러니까, 그냥 갚을 만하니까 갚았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한 때 저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수동적이고 나약한 정신승리법이 아닐까라고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정작 해보려고 하니……. 어.렵.다! 제일 미운 사람을 하나 떠올려 보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정신승리법이 아니라, 정말로 나의 현재의 삶에 대한 이치를 터득해야만 이를 수 있는 경지다.

  돌을 옥으로 바꿔서 인간세상으로 보내준 두 신선이 대화를 하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도 함께 인간세상에 내려가 중생제도에 힘써 몇이라도 해탈시켜 보지 않으시렵니까그 또한 공덕을 쌓는 일일 것입니다.”라고 의기투합한다. 그리고서 이 풍류사건 당사자들이 다 인간세상으로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내려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세상의 삶은 그냥 단순히 짜여진 연극일 뿐인 것이 아니다. 연극의 과정에, 삶의 과정에, 깨달음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세상의 삶은 그냥 단순히 짜여진 연극일 뿐인 것이 아니다. 연극의 과정에, 삶의 과정에, 깨달음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신선은 홍루몽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우리의 삶의 무대 곳곳에 등장하여 허깨비 같은 말을 늘어놓기도 하고,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물건을 투척하기도 한다.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전생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내할 가치가 있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 먹는 순간, 나의 마음은 다음 생을 어떻게 살지,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생이 지금 생을 결정했다면 지금이 다음 생의 전생이니까. 지금의 마음이 다음 생의 극본이 된다.

  에이, 전생이 어딨다구~ 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생을 쪼개보자. 실제로 어린 시절은 전생처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이 나를 만든 것 같다. 또, 결혼 전 단신일 때와, 남편과 아이가 가족으로 있는 삶은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다. 또 공부를 하기 전과 공부를 한 이후는 전생과 이생처럼 완전히 구분이 된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어떤 마음장이 나를 공부로 이끌었을지 그 인연에 감사하다. 더 잘게 쪼개면, 오늘의 마음 장이 내일을 결정하고, 아침의 마음장이 오후를 결정한다. 이렇게 매 순간,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돌아보고, 내려놓고 내려놓자. 이번 생이라는 연극을 하면서 다음 생의 극본을 써보자.

 

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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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마녀님의 댓글

마녀 작성일

홍루몽으로 이렇게 글도 써다니.  대단하네요.  저도 읽고  홍루몽  여행을 갔다 왔지만  늘 환상같고  왜 이 소설을  왜 읽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 재해석? 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감히 못했는데 ....  함께  공부 할 때도  희진샘 글은 단연 돋보였어요.  그 어려운 둘뢰즈 글인가요  아들의 장난감 블록을 맞추고 해체하던것으로  연결하는 글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희진샘 글을  읽어니 홍루몽을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