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고 싸운 끝에 만난 두 사람, 육이와 구오. 그런데….. 이게 다일까? 전력을 다해 겨룬 자들 간에 어쩌면 이제야 진짜 신뢰가 싹 텄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동인괘의 진짜 동인은 구삼과 구사와 구오, 이들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나의 과거 행태가 떠올랐다(나를 두고 다섯 남자 어쩌고 그런 얘기 아니니 안심하시길.) 나는 워낙 성격이 온순하고 평화주의자여서^^;; 싸우거나 경쟁하는 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감이당에 오기 전 십여 년 간 생협활동을 할 때도 그랬다. 우리는 허구한 날 복작복작 모여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얘기했다. 벼룩시장, 각종 교육과 독서모임, 시의회참관, 동네운동회, 환경운동…일이 많았지만 원해서 하는 일이었고 사람 만나고 논의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인지라 크게 부대끼지 않았다. 하지만 “말을 잘 한다”거나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 날이면 고민이 되었다. 그게 그저 순수한 칭찬이든 질투심의 일단이든, 논의 내용 자체보다 내 태도가 두드러졌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의견을 강하게 내세웠던 날은 특히 불편했다. 그런데 나 잘하는 것만 싫었을까? 너만 잘하는 건 더 싫었을 것이다. 모두 똑같이 골고루, 싸우지 않고. 내가 생각했던 “함께 하기”란 이런 것이었다. 대립과 갈등이 생기면 나는 구오처럼 격분하여 싸우는 대신 입을 다물고 표정을 관리했다. 이기고 웃는 대신 의견을 철회했다. 몇 번인가 끝까지 정색하고 논쟁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참지 못한 자신을 미숙했다고 여겼다.
동인괘를 읽으니 분명히 보인다. 나는 평화주의자여서 안 싸운 게 아니었다. 솔직하지도 않았고, 상대를 믿지도 않았던 거다. “선호도이후소, 대사극 상우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 울부짖었다 뒤에 웃으니, 크게 군사를 일으켜 이긴 후 서로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동인괘 구오의 이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구삼도 구사도 대담하지만 군주인 구오가 계급장 떼고 한 판 붙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차다. 육이는 일편단심 구오만 보는 지조있는 여자이고 구오는 강력한 리더이니 모른 척 상황을 넘길 수도 있었으리라. 만에 하나 구오가 졌다면 그는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속으로 욕망을 품은 채 겉으로만 점잖게 굴었다면 셋은 끝내 마음을 합칠 수 없었으리라. 그러니 최선을 다해 싸우고 만난 사람이 어찌 육이 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