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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고귀한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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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06-28 14:48 조회1,7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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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축적




이성남(감이당 금요대중지성)


山天大畜 

大畜利貞不家食利涉大川.

初九, 有厲利已.

九二輿說輹.

九三良馬逐利艱貞曰閑輿衛利有攸往.

六四童牛之梏元吉.

六五豶豕之牙.

上九何天之衢.

 

주역의 大畜괘는 축적에 대한 담론이다. 우리 시대의 축적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증식하는 자산 축적에만 포인트를 둔다. 그 부가 어떻게 순환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은 풍부하지 못하다. 그러나 주역의 대축괘는 한마디로 우리 시대의 소유와 증식을 전복하는 담론이다. 즉 축적이 극에 이르렀을 때 대축괘는 모두 흩어버린다. 그래서 ‘하늘의 거리가 형통하다.’(何天之衢, 亨)고 한다. 어떻게 하나도 쌓인 것이 없을 때를 가장 큰 축적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대축괘의 축적방식은 초반에는 위태롭게 여기고 그쳐 멈추라고 한다.(有厲利已) 필요하다면 달리는 수레바퀴의 차축을 스스로 풀기도 한다.(輿說輹) 축적하는 초기에는 쾌속 질주는 금물이다. 왜일까? 축적의 초기에 진정으로 쌓아야 하는 것은 내면의 덕이기 때문이다. 만약 덕을 충분히 쌓지 않는다면 부귀를 얻었을 때 혼자서만 누리려는 탐심을 저지하려는 주역의 장치로 보인다. 그래서 대축괘의 초효나 이효는 그치고 때에 따라서 수레바퀴 차축을 풀라고 하는 것이다. 강건하게 달려 나가려는 탐심이 올라올 때 스스로 ‘輿說輻(여탈복)’하라는 지혜가 놀랍다!

이렇게 덕을 충분히 쌓고 난 후라야 세상에 유용한 기술지를 배우라고 한다. 그러나 그때도 원칙은 있다. 좋은 말을 타고 달려 나갈 때 어렵게 여기고 바른 도리를 따라 나아가야 한다. 더 많이 축적하려면 경쟁에서 이겨야하고 그러려면 속도가 중요한데 왜 대축 괘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주역에서는 덕을 축적하고 세상에 필요한 기술지를 익혔다면 그 덕과 기술지를 나만을 위해 증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축 괘는 덕과 기술지를 축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고 순환시켜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보통 성공하고 출세하면 어떻게 더 부유함과 쾌락을 누릴까에 골몰하는데, 주역에서는 축적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나서 증식의 함정에 빠질까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사효나 오효에서도 ‘소뿔’과 ‘돼지어금니’로 비유되는 ‘강건함’을 미리 방비하는 지혜로움을 쌓는 것을 큰 축적으로 여긴다. 소유와 증식으로만 가려는 ‘강건함’ 곧 탐심을 제지해야만 덕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상구효에 이를 수 있다. 그 경지는 하늘의 길이 뻥 뚫려 막힘이 없고 장애가 없기에 ‘하늘의 거리가 형통한 것이다.’ 덕이 지극한 지경에 이르면 변화를 일으킨다. 즉 덕이 베풀어지고 흔적 없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작년 허리디스크로 아프면서 내 몸과 행동동선을 돌아보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물적 축적만을 목표로 삼고 탐심을 저지하지 않으면 증식의 함정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고 탐심을 덜어내지 않으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배움이나 물질, 무엇이든 쌓기만 하고 순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꽉 막혀 장애가 생긴다. 그러니 ‘利艱貞’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 우리 집 이층을 오픈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공부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공부 공간 <문이정>이 탄생했다. 마흔 아홉 해 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식욕, 탐심은 덜어내고 지혜와 덕의 포인트는 쌓는 전환 말이다.

『금강경』 구절 중 ‘진정한 복덕은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로 닦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복과 전혀 다른 최고의 복덕은 바로 ‘보시’다. 베푸는 덕이다.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란 내가 베풀었다는 인식조차 잊어버리는 것이다. 대축괘의 상효에 이르러 덕이 베풀어지고 흔적 없이 흩어진 것처럼, 『금강경』에서 말하는 ‘복덕’과 일맥상통한다.

나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문이정>이라는 공간이 ‘복덕을 누리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탐심으로 가려는 마음을 끊임없이 저지하는 것이 먼저다. 내면의 덕이 쌓이고 쌓여 자유자재로 변용하는 공간이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지지대’, 누군가에게는 ‘고전과 노니는 집’,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무엇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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