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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높은 성벽 위에 오르면 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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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07-16 10:53 조회2,0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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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벽 위에 오르면 보이는 것

 이한주(금요대중지성)

 

雷水解 ䷧

解, 利西南, 无所往, 其來復吉, 有攸往, 夙吉.

初六, 无咎.

九二, 田獲三狐, 得黃矢, 貞吉.

六三, 負且乘, 致寇至, 貞吝.

九四, 解而拇, 朋至斯孚.

六五, 君子維有解, 吉, 有孚于小人.

上六,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올해 스물두 살인 딸이 드디어 독립하기로 했다. 어렸을 적부터 관계의 어려움을 겪어왔던 아이인지라 본인으로서는 큰 결정을 한 셈이다. 딸이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로서의 입장도 쉽지만은 않았다. 사회적 관계가 거의 없다 보니 딸아이는 자꾸만 방으로 숨어들었다. 그 아이를 바깥세상으로 내보기 위해 그동안 갖은 노력을 다해보았다. 마찰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공부의 즐거움을 누리다가도 문득 자기만의 세상에 숨어 있는 아이를 보면 은근히 올라오는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늘 해결되지 않은 문제 하나를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공부가 무의미해지며 모든 것이 허무해지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딸아이의 독립 결정은 본인 못지않게 나에게도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사실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겪어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설상가상, 첩첩산중 문제가 점점 꼬여갈 때가 있다는 것을. 참으로 막막한 상황. 그럴 때 사람들이 흔히 내놓는 답이 있다. “때가 되면 다 해결되게 되어 있어!” 딸아이의 문제로 답답해할 때마다 사람들이 나에게 알려준 해결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보편적 상식만으로 해결되는 만만한 장이었던가? 개인의 당면 문제로 돌아오는 순간 혼돈의 도가니탕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때’라는 시간성을 인식하기도 힘들지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란 ‘식칼 제 자루 깎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답이 있다고 한다. 이 상황을 말해주는 괘가 바로 뇌수해 괘이다. 뇌수해 괘에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는 방법이 담겨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찾는 방법은 해(解)괘의 어느 자리에 있을까? 상육효에 있다. “공용석준우고용지상 획지 무불리(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공이 높은 성벽 위에서 매를 쏘아서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공(公)은 군주는 아니지만 아주 높고 존귀한 위치의 사람을 말한다. 그의 이러한 존재감은 그가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이 열쇠를 갖게 된 것은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씩 천천히 풀어온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친구들이 몰려오는 것도 경험했고(解而拇), 군자의 도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당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君子維有解). 그리하여 그가 맨 마지막으로 올라간 곳은 높은 성벽.

높은 성벽? 문제 해결의 상황에 높은 성벽이라니?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성벽은 보통 안과 밖의 경계에 있다. 안과 밖. 아마 이것은 문제의 해결과 미해결, 또는 문제의 지엽성과 전체적 맥락의 경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은 곧, 그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와 싸우고 있다는 뜻이며, 높은 성벽에 올라가 사건의 안과 밖의 상황을 내려다보며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도 안과 밖이 있다는 것을. 이것과 저것의 이분법의 논리, 즉 자타, 시비의 관점에서 빠져나와야지 문제의 핵심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사이에 있는 높은 성벽. 그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던 공은 드디어 문제 해결의 핵심을 찾았다. 그것이 매가 상징하는 바다. 매 또한, 높은 성벽 위에 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어떤 쪽에도 속하지 않는 객관적 시선을 가질 때 보인다. 매의 모습으로.

매! 즉, 문제 해결의 핵심. 그것을 포착하여 해결한다는 것.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더구나 우리에게는 삑사리라는 함정이 일상다반사로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매를 발견하기는 했으나, 아뿔싸! 화살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화살이 뭉툭해서 쏘나 마나 하다면? 쏘긴 쏘았으나 화살이 멋지게 빗나간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말이다. 그리하여 공자는 계사전에서 말한다. “매는 날짐승이고, 활과 화살은 새를 잡는 도구이며 매를 향해 쏘는 것은 사람이다. 군자가 자신의 몸에 새를 잡는 도구를 가지고 때를 기다려 행하면 어찌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행하여 막힐 것이 없다.”고. 공자는 화살을 날카롭게 다듬고, 정확히 표적을 맞힐 수 있는 기량을 닦는 노력의 시간이 문제 해결의 최종적인 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문제를 해결한 공은 그다음에 무엇을 할까? 그도 사람인지라 높은 성벽에서 내려와 다시 땅 위의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그러면 또 문제는 발생할 것이고, 높은 성벽을 오르고 화살을 다듬는 시간을 또 보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네 삶 아니겠는가?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도 이러하다면 우리도 그처럼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딸의 독립이 아직 그 아이와 나 사이의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는 없다. 지금은 솔직히 기쁨과 함께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딸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해 보는 거다. 성벽 밖의 세계를 밟아보지 않고 어떻게 안과 밖 사이에 문제 해결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독립을 결정한 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뇌수해 괘의 가르침을 이사 선물로 주고 싶다.

딸아! 이 기회에 너의 성벽을 한 번 발견해 보렴. 엄마도 그러려고 해. 그리고 힘들 때마다 자신의 성벽 위로 올라가 보자. 문제 해결의 ‘매’가 보일 거야.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활과 화살을 준비해서 다듬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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