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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의 페이지들]깨달음은 나의 몫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7-31 18:22
조회 : 268  

깨달음은 나의 몫


김희진(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요즘 명상을 하고 있다. 잠시라도 고요 속에서 가만히 멈춰서고 싶어서 명상 신청을 했고, 매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고 있다. 가부좌를 틀고 지그시 눈을 감을 때의 소망은 이렇다. ‘나의 부산스러운 일상과 욕망이 걷히고 났을 때, 오롯이 남는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싶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의 꼬리뼈와 들숨과 날숨, 손바닥 발바닥을 발견하는 일이 급선무다. 에잇. 아무것과도 접촉하지 않는 발바닥을 느끼는 일조차 이토록 어려운데, 도대체 어느 세월에 나를 찾을 것인가! 이 난망한 가운데, 오늘은 홍루몽에서의 깨우침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보옥 친구 진종

   보옥이의 성장은 한 걸음씩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아주 사소한 곳에서, 아주 의외의 사건을 통해, 아주 엉뚱하게 한 걸음씩 자기 자신을 인식해 가는 길, 그것이 보옥이의 길이다. 홍루몽에서 보옥이 외의 사람들에 관해서는 그들이 살면서 무언가를 깨우쳐간다는 내용은 드물다. 그런데 여기 진종이라는 보옥의 친구는 잠깐 나오는 인물임에도 보옥과 대비되는 면이 있어서 살펴보면 재밌다. 특히 그의 죽음과 깨우침의 사건이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진종은 보옥이의 조카의 부인의 남동생이다. 친구를 맺을 당시, 둘 모두 처음 본 순간부터 속으로 탄복하고 마음이 끌려, 그날로 마음을 터놓고 함께 문중 서당에서 공부하기로 약속을 했다. 뭐 공부에 마음이 있겠는가. 그 핑계로 함께 놀고자 하는 심보다. 그런데 서당에 나가봤더니, 거의 개판 오분전이다. 서당이 아니라 남색의 전당?! 예쁘장한 남자애들에게 여자이름을 붙여 호시탐탐 안아보려고 하고, 붙어다니는 애들에겐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며 나쁜 말을 퍼뜨려댄다. 보옥과 진종은 곱상한 외모 때문에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둘이 붙어다니니 의심의 눈초리도 받는다. 진종은 또 다른 친구와 눈짓을 주고받으며 수작을 하다가 동급생들의 질투를 받고 한바탕 싸움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뭐 공부에 마음이 있겠는가. 그 핑계로 함께 놀고자 하는 심보다

   진종은 가부에 드나드는 어린 비구니와도 썸을 타는 관계였는데 그들은 진종 누나의 장례식 때 절호의 찬스를 얻어 깊은 관계를 맺는다. 보옥은 그들이 몰래 운우지정을 나누는 현장에 나타나 그 둘을 골려주고 협박하는 등 짓궂은 짓을 서슴지 않는다.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은 짧지만 강렬하다. 마치 호기심과 장난기 넘치는 혈기왕성한 사춘기의 학창시절 같다. 서로에게 느끼는 친밀감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호기심과 즐거움에 관해서 끈끈한 연대의 우정을 나누는 관계다.

   진종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비구니와의 관계를 아버지에게 들키면서이다. 그의 아버지는 진종을 찾아온 그녀를 쫓아내고 진종에게 매를 때리고서는, 그만 홧병에 지병이 도져 죽고 말았다. 이후 충격에 빠진 진종 역시 시름시름 앓게 된 것이다.

유언의 무게

   진종은 죽는다. 그가 마지막까지도 저승사자에게 애걸하며 쫓아가지 못한 이유가 구구절절마음에 와 닿는다. 집안일 할 사람이 없는 것, 아버지가 남긴 삼사천 냥의 돈이 신경 쓰여서, 행방이 묘연해진 어린 비구니에 대한 소식이 궁금해서… 앗! 그러다 눈물바람을 하며 뛰어온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것 봐 경형! 나 보옥이 왔어, 여기 보옥이가 왔다구!”

   진종은 저승사자에게 제발 친구와 단 한마디만 나누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매달려 겨우 허락을 얻어내어 다시 눈을 뜬다. 아! 절박한 순간이다. 궁금한 순간이다. 도대체 우리는 세상에서 딱 한 마디 말을 남기고 죽으라면 무슨 말을 하고 죽을까? 이미 저승사자에게 잠시의 말미를 얻어온 이상, 죽음을 경험한 진종이 남기는 말은 분명 그의 진정일 것이다.

“전에 우리 둘은 남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졌다고 자부했는데 난 지금에서야 그게 잘못이라고 깨달았어. 앞으로는 의지를 세우고 공명을 이루도록 힘써서 가문의 영광을 찾고 스스로 출세하는 것이 옳은 일인 것 같아.”(1권, 349쪽) 

저승사자에게 잠시의 말미를 얻어온 이상, 죽음을 경험한 진종이 남기는 말은 분명 그의 진정일 것이다.

   아니, 이것이 무슨 재미없는 소리란 말인가! 이것이 죽음 앞에서 깨달은 삶의 진정한 목표라니… 하지만 진종은 정말 그렇게 느꼈고, 진심을 다해 친구에게 그 한마디를 해 주기 위해 잠시나마 이생으로 달려왔다. 이것은 정말 진종의 깨달음인 것이다.

   보옥이 대답할 겨를도 없이 진종은 저승사자에게 가버려서 보옥이 그 마지막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깊은 슬픔에 빠져들어 이후 한동안 혼이 나간 듯 시간을 허비하고 마는 것을 보면, 친구의 죽음은 슬프지만 충고는 귓등으로 들은 것이 확실하다.

   보옥은 평소에 저런 말을 냄새가 난다고 하며 딱! 싫어했다. 그래도 그렇지, 가장 친한 친구가 그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 준 말이니 귀 기울여 듣고, 진심으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유언이 가지고 있는 무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왜냐하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이라는 사건에 직면하여 깨달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무게는 보옥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듯하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충고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산 사람들이다. 부모나 선생 모두 ‘내가 살아보니’라는 말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그 세월 속에서 자신이 느낀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것도 우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그런데도 왜 우리 귀엔 그저 ‘꼰대의 잔소리’로 느껴질까? 우리보다 먼저 살았다고 해서 그 말이 나에게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고 해서 그 말의 무게가 나의 삶을 짓누를 수도 없을 것이다.

혼자서 가는 길

   내가 유언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때문에 그 말에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옥이 어디 권위에 끄떡이나 하는 녀석이던가. 성현의 말씀마저도 이리저리 되는대로 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던가. 이탁오도 그리 말했다. 성인도 그 당시 딱 필요한 말을 했을 뿐, 그 말이 지금 이 상황의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나는 진종의 깨달음을 보고, ‘깨달음은 각자가 다 다르다’는 너무나 흔한 말이 새삼 가슴에 다가왔다. 각자의 깨달음이 있을 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다고. 그리고 아리송한 아포리즘으로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던 루쉰의 글이 떠올랐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길을 갈 때 가장 쉽게 직면하는 것은 두 가지 난관이다. 그 하나는 기로에 섰을 때다. 묵자는 통곡을 하고서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울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다. 먼저 갈림길 머리에 앉아 조금 쉬거나 한숨 잔다. 그런 뒤 갈수 있어 보이는 길을 택해 간다. 만일 진실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의 먹을 것을 빼앗아 배고픔을 면할 것이다. 하지만 길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루쉰, 양지서)

‘깨달음은 각자가 다 다르다’

   왜 진실한 사람에게 묻지 않는가? 그의 길과 나의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의 진실함으로 자기 인생을 고민하지 않는 보옥을 보며, 진정 누구에게 길을 묻지 않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 것 같다. 우리는 진실한 이로부터 계속 살아갈 힘을 얻지만, 깨달음은 각자의 몫이며, 나는 오로지 혼자서 길을 내며 갈 뿐인 것이다. 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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