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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족의 탄생]청년백수, 혼전에 임신하다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8-06 09:23
조회 : 360  
이소민(감이당)

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뛰다니!

나는 생리 주기가 꽤 정확한 편이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생리를 할 기미가 안 보였다. 어느 날 저녁. 남친과 나는 정말 장난스럽게 편의점에 들러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임신테스트기에 쓰인 문구를 보니 “아침 공복 첫 소변이 가장 정확하다”고 적혀있었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테스트기를 해놓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양치를 하는데, 서서히 선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정확한 두 줄이었다. 일단 현실을 부정한 채 양치를 계속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약간 떨리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남친에게 두 줄의 소식을 알렸다. 남친도 놀라긴 했지만 기뻐했다. 우리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날 좀더 비싼 임신테스트기로 다시 한 번 확인해보기로 했다. 역시나 선명한 두 줄이었다. 며칠 후 우리는 산부인과에서 아기의 존재를 확인했다.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는 순간, 신기하고 감동스러웠다. 뭔가 울컥하기도 했다. 아직 너무 작아 형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소리로 아가는 어엿한 하나의 생명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임신테스트기
우리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날 좀더 비싼 임신테스트기로 다시 한 번 확인해보기로 했다. 역시나 선명한 두 줄이었다.

우리는 남산 밑 9평 원룸에서 동거 중이었다. 그러다 ‘결혼식’이라는 이벤트가 재밌을 것 같아 결혼 날짜를 잡아 놓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도중에 불쑥 아기가 찾아온 것이다. 모든 일에서 늘 계획적인 나는 2~3월쯤 임신해서 감이당 공부를 하다가 12월쯤 아이를 낳으면 딱 좋겠다고 남친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남친 왈, “그렇게 하다가는 평생 임신 못해!” 막상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딱히 불안하거나 걱정되진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비정규직 연구원인 나와 청년 백수인 남친이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 “이 아이를 어찌 키울꼬?”라며 걱정했겠지만, 우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물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오히려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임신하기 전에는 일하고, 공부하고, 매일 매일 나름 즐겁고 바쁘게 지내고 있었지만 비슷한 일상이 계속 되어서인지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나에게 급격한 변화가 필요해서 아기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초음파
어쩌면 나에게 급격한 변화가 필요해서 아기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임신, 양생적인 삶의 시작

임신을 하자 자연스럽게 몸의 변화를 알고 싶어졌다.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 지도 궁금했다. 아기의 손과 발은 언제 생기는지, 또 아기가 언제부터 들을 수 있는지 이런 소소한 질문이 자꾸만 생겼다. 마침 연구실의 한 선생님께서 임신&출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선물해주셨다. 나는 『농부와 산과의사』, 『동의보감』의 부인편, 『임신&출산 대백과』 등을 읽으며 아이에 대해, 또 내 몸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여성의 임신 시기는 몸을 공부할 최적의 시기였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이렇게 자발적으로 또 즐겁게 공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아이는 인성(사주 명리에서 공부 운을 뜻한다)없는 엄마를 공부시키고 있었다. 나는 곧 요가도 시작했다. 요가 선생님은 다른 학인들을 가르치시면서 임산부 요가를 한편에서 따로 가르쳐주셨다. 여러 선생님들이 “아이는 하체 힘으로 낳는다.”고 하셔서 꾸준한 운동과 호흡을 연습하며 출산을 준비했다.

일상은 이제 아기 위주로 돌아갔다. 잠도 많이 자고, 건강한 음식으로 잘 챙겨 먹고, 가끔씩 마시던 맥주 한 잔도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 매일 한두 잔씩 마시던 커피도 아예 끊어버렸다. 직장 동료 중 한명은 “임신하면 좋아하는 커피를 못 마시니 힘들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커피를 안마시고 술도 안마시니 몸이 가뿐해졌다. 예전에는 커피를 꼭 하루에 한잔은 마셔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안마시고도 잘 지내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 습관처럼 마셔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임신을 하게 되면 파마도 머리 염색도 또 네일아트도 할 수 없다. 미용실 염색약과 네일아트 재료 성분이 강해 아기에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네일아트는 원래 하지 않았지만, 파마 정도는 가끔 했던 터라 은근히 비용도 들고 귀찮기도 했었는데 마침 임신을 핑계로 하지 않게 되니 생활이 단순해지고 편안해졌다. 여러 가지로 분주했던 삶이 아기라는 강력한 존재에 집중하게 되어 저절로 양생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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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로 분주했던 삶이 아기라는 강력한 존재에 집중하게 되어 저절로 양생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나의 임신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산부인과에서 아주 작은 난황을 확인했을 뿐인데, 나는 그때부터 공식적인 ‘임산부’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임신했는데 오히려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즐거워했다. 혼전임신이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다들 들떠있었다. 연구실 선생님들께서는 임신을 확인한 그날 이후로 무거운 물건을 대신 들어주시기도 하고 서로 밥을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한 선생님은 임부복을 선물해주시기도 하고 아직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유모차, 아기 띠, 수유쿠션 등을 받게 되었다. 나라에서도 임신했다며 집으로 음식을 보내주었다. 쌀, 계란, 콩, 김, 미역, 우유 등을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집 앞까지 배달해주었다. 또 보건소에선 임산부 등록을 하자 엽산제와 철분제, 손목 보호대 등도 지급해주었다. 마치 아기가 생기길 기다렸던 것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산부인과에 다녀오면 선생님들과 자연스럽게 임신&출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성에게 있어 임신&출산의 과정은 남자들의 군대 경험만큼이나 생생하고 재미있다. 선생님들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임신&출산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산모교실이나 산부인과에 가지 않아도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중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해보자면, 감이당에 Y선생님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셨단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가정 분만이 가능하다니! 선생님은 한 10년 전쯤 조산사와 집에서 출산하셨는데,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편안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하셨다. 다른 선생님은 아가를 낳을 때 힘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며 “엄청나게 큰 똥을 누듯이”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출산이 왠지 쉽게(?) 느껴졌다. 또 임신인 줄 모르고 술자리 약속을 잡았다가 뭔가 이상해서 임신테스트기를 했더니 임신이 확인되어서 눈 딱 감고 소주 두 잔만 드신 선생님도 계셨고, 또 임신 막달에 너무 많이 돌아다니셔서 입원해서 꼼짝없이 누워계신 선생님 등등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영양플러스
마치 아기가 생기길 기다렸던 것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아이를 키우는 데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돈이라고 말할 것이다. 몇 년 전에 결혼한 친구도 일단 빚을 어느 정도 갚은 후에 아기를 갖겠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임신을 하고 보니,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우리도 돈에 관해서 걱정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이 없는지라 약간은 걱정되기도 했다. 이런 걱정을 연구실에 털어놓자, 선생님들께서 매번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아기들은 다 자기 복을 가지고 태어난다.” 경험해보니 정말 그랬다. 이곳저곳에서 하나 둘씩 쌓이는 아기용품을 보니 걱정이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아기는 왠지 뭔가 주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보다. 고로,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임신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였다. 임신을 축하해주고 아기가 커가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말이다. 앞으로 아기를 낳을 계획이 있다면, 아니 우리처럼 느닷없이 아이가 생긴다면 돈을 모으는데 집중하기보다 ‘관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우자.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고민은 배송시간만 늦출 뿐이다.” 아이를 낳는 일도 역시 그렇다. 한번 아기의 생명력을 믿어보자. 그렇다면 온 우주가 힘껏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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