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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어그러짐에서 어우러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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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08-13 22:35 조회1,1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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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러짐에서 어우러짐으로






김주란(감이당 금요대중지성)

 

火澤 睽 ䷥

睽, 小事吉.

初九悔亡喪馬勿逐自復見惡人无咎.

九二, 遇主于巷, 无咎.

六三, 見輿曳, 其牛掣, 其人天且劓. 无初有終.

九四, 睽孤, 遇元夫, 交孚, 厲无咎.

六五, 悔亡, 厥宗噬膚, 往何咎?

上九, 睽孤, 見豕負塗, 載鬼一車, 先張之弧, 後之弧, 匪寇, 婚媾, 往遇雨, 吉.

 

규괘는 물과 불, 애초에 갈 길이 다른 존재들이 임시로 동거하는 형상의 괘이다. 안 그래도 위로 타오르는 불이 윗자리에 있고, 아랫자리에는 밑으로 흘러내리는 물이 놓인 꼴이니 이제 앞으로 둘의 사이는 어긋나고 멀어질 일만 남았다.

분열이 시작되는 규(暌)의 시대. 지금 우리 집이 딱 그 짝이다. 우리 집 최연소 구성원은 방년 십오 세. 사춘기의 정점을 찍는다는 중2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깜찍발랄한 초딩이었는데 이젠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털이 숭숭 난 종아리의 중딩이 되어버렸다. 쪄죽는 삼복더위에도 문을 꼭꼭 닫고 들어앉거나 마루에 있는 컴퓨터 앞에 고난이도의 부동자세로 장시간을 버티는 특기를 지닌 이 녀석의 귀에는, ‘할 말만 하고 들을 말은 안 듣기 위한 용도’가 아닌 가 추측되는 헤드폰이 근 24시간 장착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악을 쓰지 않고는 대화가 불가능한 조건인데, 악을 쓴다는 건 이미 대화가 아니므로 이래저래 소통이 불가하달까.

이런 녀석의 작전에 대한 나의 대응책은 이러했다. 성을 내거나 서러워하거나, 엄마를 감시자로 만들지 말라고 호소하거나 조용히 옆에 책 펴고 앉아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거나. 나름 다양한 수를 쓴 것 같지만 실은 그저 감정적인 반응에 불과했다. 집안에 발발한 분열의 싹을 순지르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한. 결과는 뭐, 역시나 좋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불쾌한 기분이 되었을 뿐. 그런데 규괘에는 전혀 다른 대응책이 제시되어 있다. 안타까이 여길 필요 없다잃어버린 말을 쫓지 마라저절로 돌아올 테니.(悔亡喪馬勿逐自復). 미운 사람을 보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見惡人无咎)”

왜 규괘는 이렇게 말하는 걸까? 이 효는 규괘의 첫 번째 자리다. 좋았던 시간이 끝나가고,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시대의 초입. 사건의 발단은 아끼던 말의 실종 사건으로 시작된다. 주인은 ‘아이고, 도둑이 들었구나!’하는 생각에 속상해하며 당장 말을 찾으러 뛰어 나갈 태세다. 근데 실상 이 말은 누가 훔쳐간 게 아니라, 달리고자 하는 충동을 좇아 울타리를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적인 양(陽)효가 시작의 자리에 있으니 얼마나 궁둥이가 들썩거리겠는가. 아아, 종아리에 털이 숭숭한 중2야말로 길들지 않은 말, 연신 발굽을 굴러대는 말이 아닌가. 그런 말을 쫓아가면? 말은 점점 더 멀어질 뿐. 게다가 까딱하면 뒷발에 채이는 불상사가 생길 지도. 그래, 그 말은 쫓지 말자. 집 나간 말은 달릴 만큼 달리다 제 풀에 돌아올 것이다(상마 물축 자복). 양기는 뻗치기는 잘해도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대개의 우리는 이렇게 기다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화가 나니까~ 화가 난 채 말을 쫓아다니다 씨근덕거리며 돌아와 말을 욕하고 이웃을 의심할 것이다. 말에 대한 욕심(탐)은 이웃을 향한 의심, 말을 잃은 분노(진)로 대나무 뿌리가 번지듯 마음을 잠식해나갈 것이고 이는 다시 우리 눈을 한층 어둡게(치) 만든다. 탐진치의 무한 회로가 생성되는 순간이다. 이 회로로 빨려 들어가면 규괘의 분열은 참담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누굴 만나도 다 미울 것이다. 하지만 진짜 미운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닐까? 욕심과 의심, 분노, 무지로 범벅된 자신. 그 얼굴이 얼마나 미운지를 깨닫는다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見惡人无咎).

이쯤에서 초효 첫 머리에 놓은 두 글자를 다시 생각해보자. 회망(悔亡)회(悔)란 안타까워하는 감정이다. 틈이 벌어지는 관계, 불만족스러운 상황 등등에 대해. 이 감정의 정체는 결국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다. 그러니 회망이란, 이 불안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집착, 분노 등의 감정적 반응을 멈추는 것이다. 하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 멈추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순간 아주 ‘세심하게’ 지켜보는 일이다. 소사길(小事吉)! 이것은 규괘의 괘사다. 괘사란 그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 처방이다. 매사에 세심하게, 세밀하게 임하라. 그리하여 분열과 차이가 불안이 아닌 변화를 생성하도록. 그때 규의 분열은 어그러짐에서 어우러짐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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