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지 (금요대중지성)
아침에 출근하며 테이크아웃하는 커피가 하루를 시작하는 큰 위안이던 때가 있었다. 카페인을 몸에 주입하면 기운이 돌기도 했지만, 카페에서 들고나오는 커피의 따끈한 감촉과 향기는 거를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임신으로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중요한 아침 의례가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나의 자구책은? 카페의 텀블러를 구해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라 생각하며 마신 것. 텀블러 안이 까만색이라 수증기가 오르는 음료가 물인지 커피인지 육안으로는 잘 구분이 안 되었다.
돌이켜보면 일상에서 내가 그럭저럭 괜찮다는 기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어떤 대상에 의존해서였다. 커피는 오랫동안 그 중심에 있었다. 나중에 몸이 더는 카페인을 감당하지 못해서 진짜 커피를 끊어야 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커피를 통해 누리던 정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일시적 충만함의 상태를 외부에서 구하려는 의지처, 커피는 이제 다른 대체물로 계속 모습을 바꾸어 가며 내 곁에 머물렀다.
미세하게라도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나는 커피처럼 감각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외부 대상을 향해 충동적이 되곤 했다. 초콜릿 같은 단맛을 찾아 헤매거나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정신을 팔거나. 뭔가 지루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의 상태를 피하고 싶을 때 나의 감각은 습관적으로 외부의 대상을 찾는다. 일상적으로 보이는 이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사소한 행동 같지만, 여기엔 부작용이 있는데도 같은 쾌락을 반복하려는 중독의 성향이 있다. 감각이 주는 즐거움에 의지해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회피하거나 현재 느끼는 고통을 마비시키고 불쾌한 감정을 덮어버리기. 내게 커피와 초콜릿, 스마트폰은 누군가의 담배, 알콜, 게임 중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