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양명의 제자가 공무와 송사로 바빠 공부에 매진할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러자 양명은 내가 언제 평소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공부하라고 한 적이 있냐고 따끔하게 말한다. 지금 맡고 있는 업무를 하는 동안 공부할 수 있다고. 아니, 공부는 지금 그 자리에서 하는 거라고 말이다. 송사에 임할 때 사사롭지 않게 마음을 쓰고, 한순간이라도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너의 공부라고. 이것이 바로 ‘사상마련(事上磨練)’이라고! 공부는 고요할 때하는 마음수양이 아니라 부딪히는 일상 속에서 하는 거라고 말이다.
알 듯 말 듯 아리송하다가, 불현듯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양명선생이 말하지 않았던가. 일상 속에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고. “그래!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자! 일하는 곳을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어 보자!” 일하는 시간도 공부하는 시간이 되면 언제나 공부하고 있는 것이니, 일과 공부가 서로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일하는 곳에서도 충만할 수 있고, 공동체에서 공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결핍도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그런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자에게 해주던 양명의 말 중 ‘사사롭지 않게’라는 말이 걸렸다. 나는 사사롭게 일을 대하고 있었다. 주3일만 일할 수 있는 직장은 놓치고 싶지 않고, 정해진 업무시간 외에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은 나. 일을 돈벌이로만 대하고 싶은 나. 이건 욕심이었다. 한동안 나는 이 사사로운 욕심만 덜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일상을 공부로 만들어보자던 호기로운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적당히 돈벌이로만 대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다가가면 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발목을 잡는 다른 것이 있었다. 돈벌이로만 선 긋게 되는 이유, 그건 직장에서의 일이 ‘나를 속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는 척, 잘하는 척 다른 업체를 대해야 했고, 또 그럴듯하게 포장된 결과물을 내야만 했다. 이런 마음들을 눈감은 채 좋은 조건을 보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오히려 ‘사사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일만 일할 수 있는 꿀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