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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의 페이지들]유동하는 의식의 흐름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8-28 13:40
조회 : 250  


유동하는 의식의 흐름


김희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어느 날 대옥이의 꿈에 보옥이가 나타나서는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겠다며 칼로 가슴을 죽~ 그었다. 그리고 자기의 심장을 꺼내 보이려고 헤집다가 심장이 없어졌다며 쓰러지는 장면. 청승맞은 대옥이의 개꿈인가 했더니 보옥이도 자다가 가슴이 너무 아파서 깬 걸 보면, 무슨 암시라도 되는걸까?

보옥이는 툭하면 자기 마음을 꺼내보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무도 자기 마음이 어떤지 모른다고 원망하며 참 투덜거리기도 잘한다. 대옥이는 몸이 크게 아프면서부터 보옥오빠의 마음이 과연 어떤지에 관해 더 예민하게 의심했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꾸었을게다.

대옥이를 불안하게 하는 건, 오빠의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마음이다. 자기에게 사무치게 지극한 이 오빠의 눈앞에 딴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마음을 그 사람에게 홀딱 줘 버린다는 걸 진작에 간파한 대옥이. 자기 맘속엔 대옥누이 뿐이라는 고백에 이렇게 대꾸한다.

“오빠 마음속에 그 ‘누이’라는 게 있다는 건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다른 곳에 가서 ‘누나’만 보면 이 ‘누이’를 곧 잊어버리고 마는 게 탈이지요.” (2권, 210쪽)

아니나 다를까, 보옥은 곧이어 보차누나를 만나게 되는데 포동포동하고 매끄러운 팔뚝을 바라보다가 문득 흠모의 마음이 불현듯 일어 넋을 놓고 바라본다. 에라이! 사랑고백한지 반나절도 안 되서…! 그 장면을 목격한 대옥은 그럴 줄 알았다는듯 웃으며 오빠의 얼굴에 손수건을 던져버렸다.

보옥이의 이런 특성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는 일화는 일명 꿈에 대옥이 맞이하기사건이다슬프게도 대옥은 요절하는데보옥은 대옥을 그리워하며 꿈에라도 한 번 볼까 기대하지만 영 나타나질 않는다시간이 지나니 부인 보차가 점점 좋아지기도 하여 이제 대옥이를 잊어뿔자!’라며 그리운 대옥을 이제 그만 마음에서 떠나보내기로 한다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간절히 꿈에 대옥이를 청해보려고 침실 바깥에서 혼자 자는 날이었다뜬금없이 자기를 시중드는 시녀 오아가 너무 예뻐서 말도 걸고 다정하게 굴어본다가만히 보니 청문이를 닮았기에 문득 죽은 청문이 생각에 그리움이 사무친다도대체 이게 몇 명이지보차와 대옥오아와 청문까지~! 보옥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네 명의 여자를 생각한 것이다.

나는 보옥이가 너무 웃기고 황당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았다거의 동시적으로 그의 머릿속을 지나가는 여자들의 퍼레이드그가 소녀들에 대해 갖는 애틋한 마음들이 마치 조각조각 분열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보옥은 전혀 혼란스럽지 않다그의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서 저기로저기서 거기로 자신의 맥락에 따라 옮아가고 있을 뿐이다

명상을 할 때를 떠올려보면 오히려 보옥이보다 뒤죽박죽인 나의 맥락없는 생각들을 발견하곤 한다. 처음 명상을 했을땐, 호흡이나 한 생각에 의식을 고정시켜서 집중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들에 머리를 흔들며 다시 호흡에 의식을 붙잡아 매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명상 방법에 대한 코칭을 들어보니, 한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구나’,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또 ‘떠오르는구나’를 반복하며 그 의식의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라고 한다. 그 흐름을 지켜보는 것이 하나의 집중이고, 그러다보면 나의 정신을 좀 더 멀리서 통으로 관찰 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면서 가장 편안한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이런 논리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잡념이 아니라, 그것들이 떠오를 때 끊임없이 그것들을 떨치고 돌아오려고 했던 호흡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자연스런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의식의 흐름이란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처한 시간과 공간에 반응하여 내 앞의 상대에 끊임없이 공명하려고 하지만, 무엇인가에 대한 걱정이나 집념, 집착들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에서 계속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매여 있는 것, 붙들고 있는 것이 잡념이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마음이 아무런 방해 없이 표현되는 것이 바로 집중이다.

보옥이의 마음은 혼란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담백하고 단순하다. 대옥이가 진작에 간파했듯, 보옥은 눈앞에 다른 이가 나타나면 마음이 오롯이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집중된다. 보옥이가 정말 놀랍고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은 그가 모든 대상에게 집중을 할 수 있는 능력, 지나간 것에 집착하며 끄달리지 않는 놀라운 능력이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엄청난 능력이다.

대옥의 마음이 슬픔에 가득 찬 것은 보옥이의 마음을 붙들어두고 싶은 불가능한 바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할머니 댁에 의탁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끊임없는 한탄 때문이다.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보옥이에게 위안받고, 혼삿말이 오가는 나이가 될 때부터는 보옥이와 맺어져야만 가씨 가문을 떠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일편단심의 사랑이란, 이렇게 삿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움직이는 마음은 언제나 더 먼 곳을 향하게 마련이다. 보옥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우연히 마주쳤던 농가처녀를 눈으로 찾다가 저 멀리서 그녀를 발견하자 그 소녀를 따라 하염없이 멀고 먼 곳까지 시선으로 쫓아가는 모습니다. 그 시선! 거대가문의 장엄한 장례행렬에 속한 자신의 신분과 처지도 잊게 만드는 탈주하는 시선이다. 물레를 자아보이는 그녀에 대한 존경심은 순간 보옥의 마음을 온통 차지했고, 그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될 정도로 강렬한 마음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보옥이의 이러한 움직이는 마음의 흐름이야말로 거대한 가문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철옹성같은 명문거족에 멸망을 초래하는 틈들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혼란한 잡념이 아니라 아주 섬세하고 고요한 집중의 강한 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 앞의 상대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우리 모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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