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할 때를 떠올려보면 오히려 보옥이보다 뒤죽박죽인 나의 맥락없는 생각들을 발견하곤 한다. 처음 명상을 했을땐, 호흡이나 한 생각에 의식을 고정시켜서 집중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들에 머리를 흔들며 다시 호흡에 의식을 붙잡아 매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명상 방법에 대한 코칭을 들어보니, 한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구나’,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또 ‘떠오르는구나’를 반복하며 그 의식의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라고 한다. 그 흐름을 지켜보는 것이 하나의 집중이고, 그러다보면 나의 정신을 좀 더 멀리서 통으로 관찰 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면서 가장 편안한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이런 논리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잡념이 아니라, 그것들이 떠오를 때 끊임없이 그것들을 떨치고 돌아오려고 했던 호흡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자연스런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우리의 의식의 흐름이란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처한 시간과 공간에 반응하여 내 앞의 상대에 끊임없이 공명하려고 하지만, 무엇인가에 대한 걱정이나 집념, 집착들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금 이 순간에서 계속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매여 있는 것, 붙들고 있는 것이 잡념이다. 끊임없이 유동하는 마음이 아무런 방해 없이 표현되는 것이 바로 집중이다.
보옥이의 마음은 혼란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담백하고 단순하다. 대옥이가 진작에 간파했듯, 보옥은 눈앞에 다른 이가 나타나면 마음이 오롯이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집중된다. 보옥이가 정말 놀랍고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은 그가 모든 대상에게 집중을 할 수 있는 능력, 지나간 것에 집착하며 끄달리지 않는 놀라운 능력이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엄청난 능력이다.
대옥의 마음이 슬픔에 가득 찬 것은 보옥이의 마음을 붙들어두고 싶은 불가능한 바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할머니 댁에 의탁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끊임없는 한탄 때문이다.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보옥이에게 위안받고, 혼삿말이 오가는 나이가 될 때부터는 보옥이와 맺어져야만 가씨 가문을 떠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일편단심의 사랑이란, 이렇게 삿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