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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이옥, 내 마음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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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09-09 21:05 조회1,3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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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숙(감이당, 화요대중지성)

10대 중반부터 산업체 학교에 다녔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녔다. 봉제공장의 시다로, 재단사 보조로, 꼬박 5년을 일했다. 오로지 학교를 졸업하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졸업을 하면 번듯하고 안정된 직장이 생길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버텼다.

졸업 후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밥벌이를 위해 구로공단의 전자회사에 들어갔다. 이 시기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던 때였다. 나도 그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갔다. 친구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해방을 외치며 투쟁했다. 또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도 만났다. 그렇게 10여 년을 달렸다. 이렇게 살면 노동자가 살만한 세상이 올 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또 보름만 지나도 생계비가 바닥나서 어쩔 수없이 잔업, 철야를 해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국적기업인 우리 공장이 자본을 중국으로 이전시키고 폐업을 했다.

삶의 유일한 출구이자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 공장 폐업으로 노조활동이 중단되니 허무했다.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게 되었다.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지만 마음 밑바닥에서 헛헛함과 공허함이 자주 올라왔다. 이 시기 생협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도 함께 키우고 먹거리를 나누고, 생산자를 지원하는 활동이 좋았다. 이런 활동들이 모여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확신이 과도한 책임감을 생기게 만들었다. 매번 과하게 일을 맡고 일이 마무리될 때마다 번아웃이 되어서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몸이 자주 아프니 생협이나 집에서 관계들이 삐걱대고 분노도 자주 올라왔다. 10년 넘게 열심히 했던 활동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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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감이당을 만났고 이옥의 글을 만났다. 이옥의 글을 처음 만난 건 낭송을 통해서이다. 산으로 공원으로 걸어 다니며 수없이 소리 내어 읽고 외우기를 반복했다. 만나는 사물 하나하나에 온전히 마음을 다 주고 흘러넘치듯 감정을 드러내는 그의 글이 나를 흔들었다. 이옥의 글을 낭송하다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확 풀리고 몸도 편해지곤 했다.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때 봄마다 벚꽃나무의 꽃비를 맞고 집에 돌아가곤 했다. 꽃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단한 나를 토닥여 주는 것만 같았다. 그 시절처럼 이옥의 글이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 안에 오랜 시간 억눌려놓았던 자잘하고 세밀한 감정들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옥의 글에는 사람, 나무, 풀, 새, 벌레 등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는 조선시대 대부분의 선비들이 몰가치하다고 생각했던 저잣거리 민중들의 삶과 생활 주변의 자잘한 사물에 주목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섬세하고 마음껏 드러내는 글을 썼다. 그는 우연히 꺾어 본 수숫대 속의 작은 벌레를 통해 우리의 삶을 말한다. ‘즐겁구나, 벌레여! 이 사이에서 태어나 이 사이에서 자라고, 이 사이에서 기거하며 이 사이에서 먹고 입고 하면서 장차 또 이 사이에서 늙어가겠구나.’라며 그 자체로 충분히 편안하고 충만한 삶을 말한다. 그래서 그의 글 속에서는 사람도, 사물도, 한낮 미물인 벌레까지도 살아서 꼬물거리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옥의 글을 통해 내 모습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20년간 거대한 이상을 쫓아가느라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작은 감정들을 억누르고 외면하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억눌린 감정은 뭉쳐서 분노로 표출되어 내 몸을 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뭉치고 막힌 감정은 같은 패턴의 삶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다른 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마주치는 것들과 섞여서 이전과 다른 나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곧 다른 세계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내가 이옥의 글을 읽는 이유는 미물인 벌레까지도 살아서 꿈틀거리게 하듯, 그의 글이 내 마음을 흔들고 스며들어 나를 한 뼘씩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ladybug-3475779_1920미물인 벌레까지도 살아서 꿈틀거리게 하듯, 그의 글이 내 마음을 흔들고 스며들어 나를 한 뼘씩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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