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에겐 크고 은밀한 즐거움이 있었다. 그건 ‘패션잡지’를 보는 것이었다. 10살 무렵부터 였을까. 사촌언니의 집에 가면 패션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매 번 설레는 맘으로 집어들던 그 책들은 10대 초반의 나에게 아주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여성인권’이 진보했다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노골적인 언어로, 20년 전의 패션잡지는 내게 ‘성’에 대해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어떻게 매력적인 여자가 될 것인가’, ‘어떻게 남자를 유혹할 것인가’등을!
꼬마가 그런 걸 어따 쓰나 싶겠지만, 이것들이 단순한 ‘볼거리’로 그치진 않았다. 10대 초반부터 배워온 잡 지식들이 내가 20대에 들어서며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에, 오랜 세월 잡지책을 통해 뼛속까지 새겨진 스킬들이 더해져 나는 수월하게 성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거다. 남자들을 꼬시는 것, 연애, 스킨십,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있는 여자’로 인식되는 것. 이 짜릿함! 책에서 그랬듯 실전에서도, 성은 내게 설레고 벅차고 즐거웠다.
하지만! 여기에는 늘 풀리지 않는 갑갑함이 함께했다. 우리의 성은 ‘암컷과 수컷의 만남’이다. 여자인 나는 남자와 만나기 위해 여자로서의 노력을 한다. 외모를 가꾸고, 남자들을 끌어당기는 순진하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담지 하는 등, 교묘한 노력을! 하지만 이상한 것은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나약해진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수록 더더욱 나를 예뻐해 줄 사람이, 기댈 사람이 필요해지는 아이러니. 그 길을 계속 가는 건, 자기학대에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성을 포기할 순 없었다. 나는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해보기도 하고, ‘여성성’을 지우며 ‘남자처럼’되어보려 하기도 하고, ‘강인한 여성상’을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었다. 남녀의 성을 향유하려면 결국에는. ‘매력 있는 여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 성은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나를 갉아먹는 ‘나쁜 것’이었다. 성을 누리려면 나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을까? 강해지기 위해서는, ‘성적 즐거움’을 조금쯤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