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민(감이당)
20대 중반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와 처음 만났다. 산시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도쿄대학에 입학한 청년이다. 시골 출신인 그에게 세상은 마치 자신을 남겨둔 채 너무나 빨리 흘러갔다. 그 사이에서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망설인다. 취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때의 나도 무엇에 쫓기듯 참 불안했다. 내가 어떤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채 남들처럼 일단 어디든지 원서를 넣어야 했다. 그때는 무엇이든 결정되기만 하면 이 불안함이 해소될 것 같았다.
다행히 졸업 전에 취직이 되었다. 그런데 잊고 지냈던 불안함이 금세 다시 찾아왔다. 직장을 다니다 ‘뭔가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퇴사하고 감이당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몇 해가 지났을까. 우연히 『산시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엔 주인공 산시로가 아니라 히로타 선생에게 눈길이 갔다. 히로타 선생은 평범한, 심지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중학교 교사다. 겉으로 보기에 ‘태평’한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그의 머릿속은 ‘격렬히’ 움직인다. 히로타 선생은 번화하는 도쿄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내 모습은 어느새 히로타 선생과 닮아있었다. 감이당에서 생활한 후 언니들과 공동 주거를 하고 매주 산에 다녔다. 학자금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취직해 매달 80만원씩 갚았다. 학기마다 텍스트를 읽고 에세이를 쓰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한 3년 정도 이렇게 생활했을까. 산만하던 일상이 차분해졌다. 그러면서 질문이 생겼다. ‘꼭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 걸까?’, ‘결혼하기 전에 동거하면 안 되는 걸까?’, ‘돈은 얼마나 모아두어야 하는 걸까?’ 등등. 나름 히로타 선생처럼 ‘격렬’하게 고전을 읽고 쓰면서 그 당시 만나는 문제들을 고민했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히로타 선생의 서생 요지로는 그를 ‘철학자’라 칭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철학자를 ‘자기본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한다. 자기본위란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어떤 개념이든 “근본적으로, 그리고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방법”(<문명론>, 『나의 개인주의』, 235쪽)이다. 나쓰메 소세키에 의하면 나는 이제껏 철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학자란 단순히 어떤 무거운 문제를 붙잡고 고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언어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