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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니체에게 배우는 시월드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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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09-18 22:23 조회1,3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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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연 (남산강학원, 읽생철학학교)

나는 2014년 겨울에 결혼했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 뿐 아니라 원치 않았던 선물도 받았는데, 그건 시어머니였다. 내게 시어머니는 새롭고 이질적이며 당황스러운 세계,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외부였다. 어머니는 설거지는 당연히 며느리의 몫이다, 문안 인사를 하지 않는다, 시부모의 생일상을 차리지 않는다 등등의 말로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는 이런 못된 사람을 만나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것이 억울했다. 내게 시어머니의 행동은 불합리했을 뿐 아니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늘 속으로만 열불을 내며 괴로워했다.

그러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읽으면서 책에서 말하는 ‘원한감정’에 꽂히게 되었다. 시어머니에 대한 내 감정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착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불행이, 내가 왜 이런 나쁜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해야해!’라는 마음을 원한감정으로 이해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받고 있지만 특별히 대항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 말이다. 나는 원한감정의 해소법을 잘 파악해서 내 문제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엇이 원한감정인지조차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상태로 공부를 마무리했다.

올해 내 생일 날, 시어머니는 지난 날 불같이 화를 냈던 일을 모두 잊었다는 듯, 웃으며 내게 꽃다발과 용돈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라, 나 자신한테 진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우리 사이의 안 좋았던 일과 상관없이 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 대한 미움에 휩싸여 있어 아무리 좋은 장소에서 좋은 음식을 먹어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어머니는 나에 대한 미움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그저 자신이 있는 현장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상대가 아니라 내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도덕의 계보학』을 펼쳤다. 그제야 비로소 원한감정이 새롭게 읽히기 시작했다.

내 경우처럼 상대의 힘을 받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 상태에서는 상대와 자신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때 우리는 힘을 쓰는 상대를 ‘악한 사람’으로, 그에 대립하는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설정한다. 이 구도에서는 선한 사람이 악한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 그래야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림으로써 복수하는 쾌감을 맛보고, 자신에 대한 불만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에서만 시어머니를 처벌하는 쾌감을 누렸을 뿐 현실에서는 그 누구보다 괴로운 사람이었다. 늘 미움을 간직한 채 누군가를 만난다고 생각해보라. 모두가 즐거운 순간에도 나 혼자 어머니의 사소한 행동, 말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시댁에 다녀온 날은 공식 부부싸움의 날이 되었다. 나는 지나간 감정은 깨끗이 털어 버리고 현재에 충실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현재를 과거로 채우고 있었지만 미움이라는 감정에 잠식당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러한 나의 무능력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상대를 계속 나쁜 사람으로 왜곡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보지 않으려면 원한감정에 계속 빠져 있는 것이 필요했다. 내 원한의 첫 번째 이유가 어머니한테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끝까지 나를 괴롭혔던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나는 『도덕의 계보학』을 통해서 원한감정이 자신을 가리는 가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체는 말한다.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스스로를 정직하고, 투명하게 보라! 원한감정의 늪에 빠지려할 때마다 나는 『도덕의 계보학』을 펼쳐든다. 내가 외면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좀 더 정직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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