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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찰나의 마음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09-18 23:31
조회 : 127  


찰나의 마음

장자스쿨정리

 

질문자1: 죽음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해야 하나요?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 요즘 사고도 많고 그러면 저도 이제 사고를 직면할 수도 있고 해서 죽음의 순간에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런 사고의 순간이 있었을 때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그냥 죽나보다 했는데 죽진 않았어요. 그런 때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감사한 생각을 해야 하는지, 뭔가를 해야 하나요? 될까요?

 정화스님: 미래에 무슨 일을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것을 지금 미리 생각해봐도 아무 필요 없어요.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가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요. 지금 즐거우면 바로 1초 뒤가 즐거울 확률이 높아요. 내가 지금 마음이 기쁘면 기쁜 마음이 상속되어서 다음 찰나가 기쁘기 쉬워요. 이것이 쌓이면 미래가 되는 거예요.

질문자1: 제가 기구를 타고 올라갔다가 공중에서 사고가 났어요. 추락할 위기가 있었었는데 그때 “곧 떨어져서 죽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죽지는 않았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거예요. ‘죽나보다’ 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거든요.

정화스님: 그것은 대처할 수 있는 뇌의 기능 자체가 정지가 된 사건이 오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에만 의미를 두어야 해요. 계획은 가져야 돼요. “계획을 기쁘거나 슬픈 것으로 맞이할 것인가?”하는, 기쁠 수도 있고 슬픈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기쁜 쪽으로 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그 사건이 됐을 때 내가 기뻐할 것인지, 슬퍼할 것인지 나는 몰라. 간 적이 없어. 그렇게 연습했는데 되면 좋고 안 되면 마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때 다른 것이 더 힘이 세면 그때 그것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자기의 죽음이 즐거운 것으로 상상을 하는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 즐거운 일이 일어날 수는 있는 것이지요. “반드시 그렇게 된다.”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요. 미래의 일을 만들어 가는 것은 지금 나를 어떻게 보는 것인가가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 이예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간단해요. “죽을 때 되면 죽잖아.” 해놓고 그것까지 해놓고, 지금 나는 내 인생을 살겠다고 사는 것 이예요. 그때 내가 한참 지나서 “얼마 안 남았어.” 하면 정리하면 되고 그렇게 하시면 충분합니다.

질문자2: 슬픈 마음을 잊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성숙한 인간으로 세상에서 저와 만나는 인연과 감사함을 느끼면서 잘 먹고 잘 살다 잘 죽는 게 목표인 50세의 엄마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몸 공부, 마음공부 여러 가지 기웃기웃하면서 여러 가지 즐거운 마음으로 잘하고 있었어요. 그 중간에는 특별하고 커다란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잘 사고 주위 사람들이랑 잘 지내고 나름 스스로 만족하면서 잘 살고 있었는데 근데 1년 전 갑자기 각별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이후에 “여태까지 공부했던 것이 제 삶에 어려움이 왔을 때 아무 소용이 없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 되나? 이 슬픈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계속 잊어버리는 생각을 해야 되나?” 그러다가도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보니 어느 날 생각이 날 때 그 슬픔이 폭발해서 이런 것을 계속 생각의 생각을 거듭해서 이 슬픔이 없어질 때까지 생각을 계속 해야 되나 하다가 갈 길을 잃어 버렸어요.

 

정화스님: 근래에 내가 느낀 것 중의 하나가 “나는 별로 그렇게 아파하지 않는 생각 길을 만들어 왔구나.”라는 느낌이 있어요. 어떤 느낌이냐면 머리 옆에 뭐가 자꾸 나서 막 손으로 뜯었는데 머리가 다 빠져도 아프지가 않아요. (일동 웃음) 텔레비전을 보다가 런닝맨에 김종국씨가 머리 뽑는 것을 안 아프다고 하던데, 나도 전체적으로 슬프지도 않고 슬퍼도 오래가지 않더라고요. 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한 사건이 있다가 가는 구나.” 슬퍼하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요. 슬픈 공감이 아니라 분노 공감 쪽으로는 좀 있더라고요. 저런 것을 받아들이도록 훈련된 심정이 크게 오고, 나는 다른 데로 오고 이런 사람이 이렇게 오고 전체적으로 그런 게 다르구나.

지금 상태에서 보살님이 이루어 놓은 것은 그냥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몸 안에서 각각의 감각 세포가 어떻게 발현될 것인가를 만들어 놓았을 때 유전자가 그런 것을 굉장히 강하게 느끼도록 만들어놓은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저하고는 비교하면 정말 저는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중 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털을 다 뽑아도 아프지가 않아요. (일동 웃음) “보살님은 이런 것을 상대적으로 좀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감정표현이 되어 있구나.”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나온 현상이에요. 그렇게 “해석을 감정적으로 강하게 하도록 되어 있구나.”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어요. 살려 해도 살아질 수가 없어요.

거기까지는 조금 전 질문자가 말했듯이 올라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안에서 훈련된 것을 가지고 내 마음에서 아버지를 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은 그냥 내가 하려고 해서 되고, 안 하려고 해서 안 되는 게 아니에요. 저 같은 경우는 하려고 해도 안 돼요. 저희 부모님이 어릴 때 돌아가셨는데, 중1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돌아가셨는데. 가슴이 벌렁하는 게 없어. “나는 참 그런 것이 무딘가? 이것만 무딘가?” 했는데 그것만 무딘 게 아니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김 아프지도 않아요.

신체가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는 통로가 만들어진 조건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예요. 올라오는 감정은 어떻게 해볼 수 없어요. 저처럼 안 일어나는 것은 감정이 메말라서 인간 같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고, 너무 올라오는 것을 “너는 너무 감정이 풍부해” 라고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올라온 다음부터는 그 상황을 보내는 연습, 그 연습이 강해지면 나중에 안에서 그 생각을 만들어 내는 신체적 배열망들이 바뀌면서 편안해져요.

전에 한번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불교에서 전 세계에서 내세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게 완벽하게 하나의 빈틈도 없이 보장해주는 종교 들어보셨습니까? 일본에 정토진정이라는 종파가 있는데 따라서 외워보세요 (스님 나무아미타불, 청중 나무아미타불) 여러분은 이것을 말하는 순간 완벽하게 100퍼센트 완벽하게 틀림없이 극락에 가버렸어요. (일동 웃음) 그 종파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그런데 그 종파가 아닌 사람이 봤을 때는 말도 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거의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런 식이에요.

제가 생각할 때는 모든 돌아가신 분들은 후손을 위해서 마음을 썼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 마음만 가지고도 극락왕생 전부 다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간 사람은 절대 후손을 괴롭히려고 귀신처럼 나타나지 않아요. 세상에는 귀신이 없어요. 귀신은 내 안에서 생각이 많아지면 그런 것들을 하나 만들어서 통일적으로 생각을 이끌지 못할 때 각각으로 분해될 때 귀신이 나오기 시작해요.

아버지는 잘 가신 거예요. 그리고 그 아버지가 거기를 봤을 때, 딸이 자기를 생각하면서 울고 있어요. 그런 모습이 아버지 마음이 좋겠어요?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강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슬프다 하는데… 입장을 아버지로 옮기면, 자기는 극락왕생 갔는데 딸이 울고 있어. 누가 좋아하겠어요? 모든 부모는 “나 때문에 울지 마.” 그것이 나한테 가장 큰 효도야 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너희들 살면서 너무 욕심 내지 말고 살아. 나 갈 때 빈손으로 갔잖아. 그렇게 살면 마음 편해.” 부모의 죽음은 자식들에게 불필요하게 욕심 부리면서 살지 말라는 거고 좋은 데 가서 지켜보고 있는 거고, 우리 아버지가 나를 보고 우는 것을 좋아 하는 게 아니고 웃는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모든 부모들은 다 그래요.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훈련해야 해요. “우리 아버지는 내가 웃는 것을 좋아해”라고 생각해야 해요. 울음이 나오면 울다가도, 또 계속 “우리 아버지는 내가 웃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돌아가신 모든 부모들은 내 자식 뿐 아니라 다른 후손들도 괴롭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어디 가면 “조상이 막고 있다” 이런 말 믿을 필요 없어요. 조상들은 아무도 안 그래요. 믿을 필요 없어요. 조상의 고마움을 알고 한 50만원 들여 제사지내는 것은 괜찮아요. 안에서 뇌가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해석할 수 없을 때 그런 것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아버지는 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조상들은 자기 후손들이 슬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평소에도 잘하셔서 좋은 딸 역할 했는데 돌아가신 뒤로 부모를 마음 아프게 할 필요 없어요. 스스로 마음을 풀어요.

 

질문자3깨달음의 시간을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어제 마침 고미숙 선생님의 근대성에 관련된 책을 보다가 거기 근대적 시간개념에 대해 직선적인 시간 개념,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가는, 사실 저 자신도 시간개념이 그와 동일하게 갖고 있었는데 거기에 정화 스님께서 일본 사찰에서 공부하신 내용 하나를 예화로 들면서 “과거에 어떤 한 청년이 차 사고가 나기 전에 바로 그 순간 부지불식 중에 피하라는 소리를 들어서 목숨을 구했는데, 나중에 그 청년이 스님이 되어서 거기서 그때 나중에 미래의 자기가 과거에 소리를 줬다.”라고 하면서 시간의 맥이 직선상이 아닌 띠와 같은 고리로 순환될 수 있는 서로가 연관될 수 있는 시간개념을 말씀해주셔서 제가 그 부분에서 상당히 놀랐거든요. 왜냐하면 현재에 살면서 항상 과거에 대해서 나는 회한을 갖지 않지만 자꾸 해석하려고 하죠. 그때 나는 왜 그랬는가 하는. 그러면서 객관적인 통찰 이상의 얽매임이 어쩔 수 없이 있고 그 문을 하나 통과해서 나와서 멀리서 보면서 나는 그 시간을 계속 반성해야 하는 시간으로 생각을 하고. 또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재의 시간이 미래로 현상화되는 그런 인과적인 그런 생각을 벗어날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시간의 개념이 달라지면서 지금 깨달으면 지금 좋고 미래 뿐 아니라 과거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깨달음의 시간을 산다는 것이 지나쳐버린 미래를 개입할 수 없는 것이 아닌 그 미래까지도 해볼 수 있는… 그런 것에서 제가 감명을 받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정화스님: 과거의 경험 정보들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준비해 놓은 거예요. 경험 정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미래들을 예측하면서, “지금 제가 말하고 있으면 안에는 무의식이 만든 모든 미래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 중의 특정한 미래만 지금 나하고 만나는 거예요. 과거의 기억은 과거가 아니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신의 미래예요. 기억 정보는 전부 다 미래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미래가 다층적이니까 그것이 현재의 의식으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고 이렇게 하는데 아까 같은 경우는 마치 자기의 다른 미래가 나온 것처럼 이해하게 되는 거예요.

기억의 인지시스템 자체가 하고 있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미래를 준비하고 준비된 미래가 현재로 나오는 거예요. 현재로 나올 때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 조율하면서 나와요. 달라져요. 이것은 심리적인 상태고, 실제적인 시간은 마찬가지로 보살님이 미래라는 것이 저한테는 과거일 수 있고, 저의 미래가 보살님에게는 과거일 수 있어요. 각자의 시간은 다 다릅니다. 시간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시간이에요. 예를 들면 격차가 너무 적지만 지금은 정밀시계가 있어요. 그 정밀시계를 2층에 하루만 놓아두고 바닥에 하루 놓아두면 바닥에 있는 시계가 천천히 가요. 2층의 시간과 바닥의 시간인데 바닥의 시간이 천천히 가요, 위는 빨리 가요. 3층 있는 사람이 나의 미래예요. 3층 사람들의 과거는 지금 나의 현재예요. 이것이 물리적 시간이에요.

시간 자체가 이미 사건들이 어떻게 발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흘러가니까 뇌에서 일어나는 기억정보들도 전부가 끊임없이 미래를 만들어 놓고 어떤 사건을 만나면 그것이 현재처럼 재현해요. 재현의 인지 통로를 바꾸면, 뭐가 바꿉니까? 미래가 바꾸는데 왜 바뀔 수 있냐면 기억은 통째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고 조각들로 기억돼요. 조각들을 맞출 때 회한이라는 감정의 조각을 끼어 넣은 사람은 회한으로 과거를 보는 거예요. 기쁨이라는 조작을 끼어 넣으면 기쁨이라고 보는 거예요.

아까의 경우처럼 그런 것들이 전부 환상이니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라고 하는 것을 끼워 넣으면 과거나 미래, 현재의 이미지에 내가 현혹되지 않는 거예요. 깨달음은 이 사건 자체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이것들이 여러 정보들이 만들어 놓은 영화, 그림자 같은 거야. 너무 아파하지 마.” 라고 하는 깨달음의 조각이 하나 끼어 든 거예요. 깨달은 순간 과거의 회한이 “그것도 그 때 만들어진 영상이야. 너무 후회하지 마.”라고 하는 앎이 끼어드는 순간 과거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미래를 불안해하는 데 “미래는 여러 가지가 만들어져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네가 불안해 할 필요 없어. 오는 사건에 대해서 마음 편해져도 괜찮아.”라는 조각이 끼어드는 거예요. 깨달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만들어진 조각이 끼어들면 과거, 현재, 미래가 전부가 깨달음처럼 자기한테 다가와요.

기억의 인지시스템, 기억 뿐 아니라 우리의 인지시스템 자체가 그래요. 한번 깨달으면 깨달음이 사건마다 계속 개입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다른 식으로 해석해주는 거예요. 과거, 현재, 미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렇게 저렇게 된 것이 아니고 시간을 해석하는 조각이 끼어 들 때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한테는 직관적으로 보았던 흐름이 시간으로 해석된 순간 그 해석된 시간 축이 해석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실제의 시간이 반이다 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적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 1905년도에 아이슈타인이 말했을 뿐 아니라 몇 년 동안 실험을 통해서 그 생각이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어요. 모든 실험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어요. 두 번째 “심리의 인지시스템 자체도 그렇다”라고 하는 것이 지금 뇌과학을 통해서 전부 다 이해되고 있어요.

 

질문자3: 시간에 대한 부분을 명확하게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공부할 수 있을까요?

정화스님: 지금 서점에 가보면 두 사람이 시간을 약간 다르게 써둔 다룬 책이 있어요. 하나는 아주 얇은 책이고 하나는 두꺼운 책인데, 얇은 책은 제목이 뭔지… 시간에 대한 것인데(『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로 추정)…두꺼운 책은 『나우: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 둘이 약간 다른 쪽으로 시간을 설명하고 있는데 모두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그 책 두 권만 읽어도 어느 정도 시간에 대해서 현대적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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