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과 1년 정도 만나고 살림을 합쳤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남산 아래 9평 원룸이었다. 학자금 빚을 갚고 모아둔 1500만 원과 남친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남겨주신 500만 원을 합쳐 보증금을 마련했다. 동거하기 전 나는 3년째 감이당 여자 학사에 살았는데 계속 혜택을 받는 것이 마음이 걸렸다. 내가 연구실에 아무것도 없이 처음 왔을 때처럼 또 누군가 들어와 공부하면 좋을 터였다. 또 남친과의 연애가 길어질수록 데이트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매번 밖에서만 데이트할 수도 없는 노릇. 무엇보다 남친과 동거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살 공간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서였다. 내 집이 생긴다는 것! 둘의 힘으로 보증금을 해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존감이 높아졌다.
집이 너무 좁아 보인다고? 전혀~ 우리 둘이 살기에 충분했다! 당시 남친은 화장실이 밖에 있는 하숙집 형태의 집에 월 10만 원을 내고 살았다. (서울 도심에 아직 이런 집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이사를 한 후 남친은 흥분하며 말했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어! 너무 행복해~” 살림을 합친다니 감이당 선생님들이 선물을 해주셨다. 세탁기, 그릇 세트, 집에 있던 교자상, 수저 두 벌, 전자레인지 그리고 동거 축하자금까지! 엄마는 친구들에게 “우리 딸 살림 차렸으니까 안 쓰는 물건 다 내놔~”라고 소문을 냈고, 그 결과 가스 압력밥솥, 그릇 등등을 얻어오셨다. 이렇게 십시일반으로 선물해주셔서 우리가 따로 산 것은 매트릭스와 수납장 정도였다. 여기저기에서 선물을 받다 보니 깨달았다. “아, 세상은 넓고 남는 물건도 많구나!” 우리의 동거로 의도치 않게 버려진(?) 물건의 순환을 돕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친한 선배를 만났다. 선배에게 남친과 동거하고 있다고 하니 선배 왈, “뭐? 너 어떻게 하려고 그래?” 선배의 반응에 당황해서 대화를 급히 마무리했다. 연구실 선생님들께는 남친과 동거한다고 여기저기 소문내놓고 친구들에게는 당당히 설명하지 못하는 이 황당한 상황은 무엇인가? 아직 “결혼하기 전에 같이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나 보다. 여전히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방탕한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되어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사회적 시선은 자연스럽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갈 뿐이었다. 남친과의 동거를 결정하며 어느새 경제적, 정신적 자립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