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남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澤地 萃 ䷬
萃, 亨王假有廟, 利見大人, 亨利貞, 用大牲吉, 利有攸往.
初六, 有孚 不終, 乃亂乃萃, 若號, 一握爲笑, 勿恤, 往无咎.
六二, 引吉, 无咎, 孚乃利用禴.
九四, 大吉, 无咎.
六三, 萃如嗟如, 无攸利, 往无咎, 小吝.
九五, 萃有位, 无咎. 匪孚, 元永貞, 悔亡.
上六, 齎咨涕洟, 无咎.
인문학 공부에 발을 들인지 8년째다. 그동안 수많은 공부모임으로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해왔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갈등이 있었고 그로인한 혼란스러움 또한 같이 따라 다녔다. 지금은 문이정에서 세미나를 리드하고 있는 입장이다. 세미나가 꾸준히 유지되는 모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공부모임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이치로 모여들고 흩어지는지 또 모임은 누구에게로 모여드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모임의 도리를 알려주는 췌(萃)괘를 공부하면서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 싶다.
우선 택지췌의 상(象)을 보면 연못(澤)이 땅(地)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으로, 물이 모이는 모습이다. 왜 이렇게 모여들었을까? 단전에서 함께 모이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순종하면서 기뻐하고, 강하면서 중도를 이루어 호응하므로, 함께 모인다.” 즉 췌의 상체는 태(兌)로 기쁨을 의미하고, 하체는 곤(坤)으로 순종을 의미한다. 췌의 위아래가 순종하면서 기뻐하는 까닭은 강하면서 중의 자리에 처한 구오효에 사람들이 호응해서 모여들기 때문이다. 오호~ 구오효는 세상 사람들을 어떤 방도로 모여들게 했을까? 공부모임을 주도하는 자는 어때야 하는지 구오효를 통해 비결을 알아보자.
‘구오효는 사람들을 모으는 데에 지위를 소유하고 허물이 없다. 믿지 않는 자가 있거든 원영정하면, 후회가 없다.’(萃有位, 无咎. 匪孚, 元永貞, 悔亡.)라고 한다. 구오효는 모임을 리드하고 있고 자리도 얻은 자인데, 왜 믿음을 얻지 못한 자에게까지 원영정해야 후회가 없다고 했을까? 공부모임에서 ‘믿지 않는 자’(匪孚)라면 공부의 방향성과 공부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자 이다. 그렇다면 모임에 다른 뜻을 품은 자에게도 ‘원영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