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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춤 한판의 이치도 그 안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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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10-02 11:00 조회1,37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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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한판의 이치도 그 안에 있었네


김연정 (감이당 수요 대중지성)

다섯 살 때였다. 여섯 살 많은 언니가 추는 춤이 너무 좋아 보였나 보다. 하도 졸라대서 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차이 나게 작은 것이 신나게 대장 노릇을 하며 뛰어다녔단다. 엄마가 알려준, 내가 춤을 만난 첫 장면이다. 그저 언니를 따라 하고 싶었는지, 예쁜 옷에 곱게 화장한 모습이 좋았는지, 아니면 원초적인 움직임에 담긴 쾌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런 활발함과 씩씩함은 그때 다 불살라 버렸던 건지 이후 내가 기억하는 나는 남들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주변인이자 이상주의자였다. 그런 성격으로 남들 앞에 서는 무대예술을 한다는 것이 모순 같지만, 오히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짙은 화장에 영혼 없는 웃음으로 가득한 춤 공연을 볼 때마다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던 것이. 진실한 마음을 몸에 담아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 것이.

전통춤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언어들과 만났다. 엎고 제치기, 맺고 풀기, 감고 뻗기와 같은 움직임 말들은 굴신과 회전의 반복을 통해서 호흡의 순환, 기운의 변화, 음양의 조화, 태극의 운용과 같은 말들로 이어졌다. 춤이란 호흡과 기운의 변용이며,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태극의 생명력을 담아내는 것이라 배웠다. 팔다리가 먼저 움직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깊은 곳에서부터 기운의 싹을 틔워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움직임을 찾고 싶었다. 이것이 우리 움직임의 기본 원리이고 우주 자연의 원리이며, 동양 사상의 정수와 맞닿아 있다는 말이 조금씩 머리에서 마음으로 흘러 내려왔다. 그 동양 사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나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것이 감이당이다. 인문학자라고만 생각했던 고미숙 선생님이 몸과 우주의 원리에 대해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뭔가 찾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하나 되는 몸’에 대한 화두와 맞짱 떠야 했다. 금요대중지성에서 1년간 혹독하게 『주역(周易)』과 만났다. 왠지 익숙한 말들인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난감한 책은 처음이었다. 무슨 뜻인지 해독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통째로 64괘를 외우고 필사하고 암송하고 글을 썼다. 매주 있는 시험은 나를 좌절하게 했지만, 몸에 붙이는 공부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주역은 변화(易)에 대한 인문자연과학을 총망라한 종합해설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희씨로부터 문왕과 주공, 공자에 이르기까지 동양문명의 축을 따라 흐르는 시간의 역(易) 또한 느껴져서 그 무게가 남달랐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이야기를 하다가 하찮은 일상의 이야기로 죽비를 때리는 듯하다. 내 삶으로 파고 들어오는 텍스트의 열린 가능성이 고정된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망망대해에 훌쩍 던져놓는 것 같다. 64괘, 384효가 만들어 내는 강유(剛柔)와 중정(中正)의 끊임없는 변화와 반전의 이야기들은 현재를, 그리고 나를 읽게 한다. 주역에서 춤 움직임의 원리를 찾아보겠다고 시작한 공부가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가 되었다.

글을 보면 고스란히 내가 드러나듯이 춤에서도 그 사람의 품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몸을 양생하는 것도, 무대에 서는 일도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나를 닦을 일이다. 자연 세상의 춘하추동, 인간 행위의 기승전결, 인간 삶의 생장수장, 우주 자연의 성장소멸, 이 모든 ‘변화(變)의 도(道)’를 깨치는 것이 춤 한판의 이치다. 평범한 일상 속에 충만한 수시변역(隨時變易)의 원리도 우주 만물의 이치도 내 한 몸으로 체득되는 앎,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앎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길은 이제 시작이다.



댓글목록

猫冊님의 댓글

猫冊 작성일

오~ 춤=몸=품성... 이라니!
전 평소 아무데서나 촐싹거리고 덩실덩실 춤추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ㅋ
판소리 연습을 해보면... 발성과 소리에서도 성품이 나온다 하더군요!
춤이건 소리건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사실에 문득 부끄러움이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