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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의 페이지들]사랑은 왜 가슴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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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10-03 12:52 조회1,58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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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가슴 아플까

김희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눈물범벅의 향주머니와 염낭주머니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사랑은 안정감보다는 불안감을 주며, 기쁨보다는 고통을 준다는 것을. 중국어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我疼你(워텅니)가 我愛你(워아이니)와 같은 뜻이라는 것. 疼은 아프다는 뜻인데, 사랑(愛)과 동의어라니! 연애할 때 가슴이 미어지기도 하고 찢어질 것처럼 아팠던 경험이 있다. 가슴 저릿했던 연애 드라마를 떠올려 봐도 대체로 그러하다. 맑은 날씨에 함께 솜사탕을 먹는 장면에선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정도지만, 비를 흠뻑 맞으며 골목에서 딴 놈(?)과 한 우산 쓰고 가는 그녀를 몰래 지켜보는 장면에선 고통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흑! 왜 사랑은 슬픔의 정서에서 더욱 강렬하게 요동치고 우리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걸까?

사랑할 때 이상한 것 또 한 가지는 자기 마음만 아프고 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파서 아프게 한다는 점이다. 연애 드라마에서 남녀가 썸 타기 시작하는 설정이 괜히 신경쓰고 간섭질하며 싸우는 것은 공식처럼 되어있다.

홍루몽의 보옥이와 대옥이가 투닥거리는 장면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둘은 분명 너무 좋아하는데도 맨날 싸우고 오해하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그중 재밌는 사건 한 가지를 보면, 보옥이가 어느 날 외출했다가 하인 녀석들에게 차고 있던 패물들을 거의 빼앗기다시피 나누어 주고서 돌아왔다. 대옥이는 자기가 만들어준 염낭주머니까지 없는 걸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씩씩대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대옥을 보고서 뭔가 불길하여 서둘러 따라간 보옥이, 아니나 다를까 대옥이가 보옥이에게 주려고 만들던 향주머니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은 뺏겨서 없는 줄 알았던 염낭주머니는 보옥이의 속옷 속에 잘 간직되어 있었다. 이제 같이 부아가 난 보옥은 그걸 꺼내 보여주며 “자 이것 봐. 이건 도대체 뭐야? 내가 언제 누이의 물건을 남한테 함부로 주었던 적이 있단 말이야?”라고 화를 냈다. 또 한 술 더 떠서, 그렇게 자기한테 만들어주기 싫다면 이것도 돌려주겠다며 그 염낭주머니를 대옥에게 던지고 나가버렸다. 아니, 뭐 별일이라고 이렇게들 화를 내나?

보옥이가 이렇게 나온다면, 대옥이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다시 성깔을 부려보는데, 자기의 오해에서 비롯된 거지만 자기가 만들어주기 싫어서 그랬다는 보옥이의 오해도(물론 일부러 염장지르려는 거다)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대옥은 너무 참담하고 화가 나서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그 염낭주머니마저 잘라버리려 하자 보옥이 재빨리 달려와 사죄하고 달래준다. 이때 대옥이 울며불며 “제발 나하고 더는 이렇게 실랑이하지 말고 살아. 그렇게 화를 내려면 아예 손을 털고 사라지라고. 이게 도대체 뭐야!”라고 소리친다. 그러니까 말이다. 대옥아. 왜 둘 다 일을 만들어서 화를 내고 있느냐고.

앗,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들은 무슨 커플도 아니고 할머니 거처의 한 켠에서 함께 기거하는 사촌지간이며, 열 두세 살 남짓된 아이들이란 점이다. 정화스님의 뇌과학 이론에 따르면 이 나이대의 아이들의 뇌신경 연결망의 수는 일반성인의 1.5배나 되기 때문에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어른이 볼 때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열을 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별 것 아닌 일로 이렇게 유치한 싸움을 벌이는 걸까? 물론 그런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이 조금 더 커서는 홧김에 이렇게 막나가는 충동적 행동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계속 아프게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보옥과 대옥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도 주체 못하는 슬픔으로 가슴앓이를 한다. 그렇다면, 서로 싸우는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오, 오히려 사랑의 전조증상인 것이며, 사랑이 깊어질 때 슬픔도 함께 깊어지는 것은 슬픔이야말로 사랑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 아닐까?

바깥에 던져진 마음

‘아프다’는 말이 사랑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내 마음의 주권이 내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자연스레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그러나 그 욕망의 실현 가능성은 언제나 욕망의 크기에 못 미친다. 내 욕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도 나에 맞춰 따라줘야 하며, 조건과 상황도 나에 맞게 따라줘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리 만무하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내 마음은 이제 나의 것이 아니다. 사랑의 욕망은 나의 노력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내 마음은 나의 외부, 바깥에 던져진다. 사랑이란 이렇게 외부로 나아가는 것이고, 또 모든 불확실성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어찌 불안하고 두렵지 않겠는가.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보옥과 대옥의 두 사람 사이는 각별히 친밀하여 낮에는 함께 다니고 밤이면 동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두 사람은 오가는 말이 정겹고 생각이 잘 맞아서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 이번에 설보차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 그 때문에 대옥의 마음속에 우울하고 편치 않은 응어리가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보차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날은 또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오가는 말이 서로 어긋나 대옥이 벌컥 화를 내고 혼자 방 안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자….”   (1권, p.116) 

불교에서는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말로생의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설한다당연히 사랑도 고통이다보고 싶은데 못봐서 괴롭고만나면 헤어져야 해서 괴롭기 때문이라고 한다헤어짐이 고통의 원인이다보옥과 대옥의 친밀한 오누이 관계에 보차라는 제3자가 들어오자갈등과 질투의 감정이 생겨나면서 어긋남(헤어짐)이 생겼다하지만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둘은 더 이상 친밀한 오누이가 아니라 투닥투닥 사랑싸움을 하는 특별한 관계로 전환되었다갈등의 요소가 생김으로 해서동시에 둘의 마음이 확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행위는 자신들의 사랑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아프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통의 원인인 헤어짐을 암시하여바깥에 던져진 상대의 마음을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이다우리는 치사하게 그렇게 사랑을 확인한다.

대옥이가 오빠가 자꾸 그러면 나는 멀리 떠날거야라고 협박을 하면보옥이는 그러면 나는 따라 갈거야라고 대꾸한다대옥이가 그럼 난 죽어버릴거야’ 라고 하면보옥이의 대답은 그러면 나는 중이 될 거야이다이 말은 죽는다는 말만큼이나 큰일 날 소리라서이 말에 대옥이가 우는 것으로 말싸움은 끝난다죽음이 영원한 헤어짐인 줄 알았는데이보다 더 큰 헤어짐이 있다그건중이 되는 것즉 모든 집착을 끊고 속세를 떠나는 것이다

밀물이 오면 썰물로 간다

일체개고에는 싫은 사람을 계속 봐야 하는 괴로움도 있다그토록 타오르던 마음이 내게 있었던가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한심하기도 하다그깟 가오에 껌뻑 죽다니지금은 그 되지도 않는 가오를 계속 봐야하는 괴로움에 처해 있다그렇다알콩달콩이니 찢어지는 마음이니 이런 것은 어차피 모두 식게 되어있다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마음은 타오르고는 또 식어버리게 마련이다그래서 콩깍지가 벗겨지고 정신줄 챙기는 순간 바깥에 꺼내놓았던 마음을 잘 수습해서 내 안에 잘 챙겨넣는다.

헤어지는 것이나 마음이 식는 것이나결국 두려운 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제행(諸行)이 무상(無常)인 것이다.  아무것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삶의 무상함을 받아들이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마음의 불이 꺼진 상태, ‘열반이다보옥이가 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말로 다가오는 것은 그 말이 근원적인’ 헤어짐을 뜻하기 때문이다그 근원적인 헤어짐이 우리 삶의 지반이고우리는 모두 그 위에서 삶을 살고 있다작은 만남과 헤어짐에 연연하면서 

보옥이는 대옥이와의 가슴 아픈 이별뿐 아니라 찐한 우정을 나눴던 시녀들의 죽음으로 숱한 이별을 한다뿐만아니라 꽃 같던 누이들이 시집가고 죽는 등 흩어짐의 괴로움을 계속 겪는다그때마다 보옥이의 마음은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그렇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괴로움은 결국 그를 근원적 헤어짐을 깨닫는 순간으로 이끈다마음의 모든 불이 꺼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우리는 딱 겪은 만큼만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내가 체험한 사랑과 헤어짐의 고통이 깨달음이 되는 순간까지우리는 잘 수습했던 마음들을 다시 밖으로 꺼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세상엔 사랑만큼이나 찐한 다양한 인연들이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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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猫冊님의 댓글

猫冊 작성일

"사랑이란 이렇게 외부로 나아가는 것이고, 또 모든 불확실성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저는 이거 싫어서 사랑 안 되나 봅니다!!!
더 이상의 불확실성에 나를 맡기는 건 이제 그만 하고 싶습니다.
홍루몽은 언젠가 정말 꼭 읽어봐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