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괘의 효들은 발이나 장딴지, 허리, 몸, 뺨과 같이 우리 신체 부위에서 각각 어떻게 그치고 있는지 멈춤의 여섯 단계의 과정을 보여준다. 때를 잃지 않고 적절하게 멈추거나, 때를 놓쳐 어리석게 멈추거나. 그중 나나 지인의 경우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구삼은 “한계에서 멈추는 것으로서, 등뼈를 벌려놓은 것이니,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艮其限, 列其夤, 厲薰心) 이 상황은 한계에서 강제로 멈추게 되니, 우리 몸의 위아래를 연결하는 척추가 끊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 몸의 중심인 척추가 어긋나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가장 궁색한 지경으로, 모든 활동이 중지되는 위험천만한 상태다. 우리 삶도 적절하게 멈추지 못하고 임계치를 넘어버리면 균형을 잃어 휘청거린다. 이렇듯 구삼효처럼 때를 놓쳐 멈추게 되면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 경로를 이탈한 등뼈가 근육의 신경을 건드려댈 때 그 통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몸도 무너지지만 애태우며 마음 졸이는 번뇌는 또 어떤가. 그 심신의 고통을 ‘열기인 려훈심(列其夤, 厲薰心)’으로 리얼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중독에 빠지면 왜 적절한 자리(位)에서 멈추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쾌락의 회로는 고속도로와도 같다. 감각의 노예가 돼버리면 내달리기만 하지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주역은 ‘간기배(艮其背)’하라고 한 것이다. 등에서 멈추라! 중독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간괘가 내린 행동강령이다. 그런데 왜 하필 등일까? 우리 몸에서 등은 내가 볼 수 없는 곳이다. 또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외물과 접촉할 때 생기는 탐심은 감각으로 오는 것이니, 볼 수 없고 움직이지 못하는 등이야말로 가장 담백할 수 있는 신체부위가 아니겠는가. 한편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척수는 우리 몸의 가장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 쾌락의 열기를 식히기에도 알맞다.
‘등에서 멈추면 몸을 얻지 못한다.’라고 괘사에서 말한 의미가 이제야 풀린다. 감각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하게 그칠 줄 알면 몸이 자유를 얻는다는 말이다. 신발이 내 발에 잘 맞을 때 신발을 신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듯이, 등에서 적절하게 멈추면 몸을 잊어버리는 이치다. 그 때 몸의 고통도 번뇌도 자연스럽게 멈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