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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의 페이지들] 네 개의 도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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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10-28 19:33 조회1,1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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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도주선


김희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일요일 아침. 오늘도 슬그머니 나왔다. 주말의 아침은 직장인인 남편과 초딩·중딩인 아이들에겐 늦잠을 잘 수 있는 천국의 시간이다. 나도 함께 늦잠을 자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평일보다 일찍 일어나 그들이 늦잠을 자는 틈을 타, 서너 시간의 고요한 아침시간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집에 앉아 있으면 눈에 할 일이 계속 보인다. 어제 돌려놓고 아직 널지 않은 빨래라든가, 아침에 먹으려면 손질해 놓아야 할 식재료 등등, 내가 집에 없으면 그만이지만 집에 있다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 고요한 아침시간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간단한 아침만 준비해 놓고는 조용히 집을 빠져나와 커피숍에 앉아 ‘카공’족이 되어보는 주말 아침이다.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덜하지만, 가족이 함께 있으면 (그들이 자고 있을지라도) 나는 내 역할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역할이 정해져있다고 누가 강요한 적도없고, 나한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용감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오늘 아침 뭐야?’ 따위의 가벼운 질문조차 내 할 일을 알려주는 강력한 주문이 된다. 어쩔 땐, 집이 그런 역할에 대한 기대로 서로를 묶어 놓고 꼼짝 못하게 하는 꼭두각시 놀음의 무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무도 깨지 않은 아침에 새벽공기를 가르며 빠져 나올 때, 그 보이지 않는 줄을 끊고 나오는 듯한 자유의 해방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유독 보옥이의 외출이 눈에 띄었다. 가부의 높고 육중한 담을 넘어 쪽문으로 또는 후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은 은밀한 만큼 커다란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보옥이는 공식적 행사가 아니면 가부의 담장을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대갓집 귀공자의 몸이다. 그런 보옥이가 몰래몰래 몇 번이나 집을 빠져나간다. 그의 시선과 동선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첫 번째 도주선은 ‘몸 따로 눈길 따로’다. 가부에 상(喪)이 있어 발인 날이 되자 문중의 절인 ‘철함사’를 향해 출발한다. 온 가문의 사람들이 천천히 운구를 따라 이동하는 화려하고 장엄한 행렬이다. 도중에 희봉이 옷을 갈아입겠다고 하여 한 농가의 사람들을 피하게 하고는 그 집에 들어가 잠시 쉬는데, 희봉과 같은 가마를 타고 있던 보옥이도 함께 내렸다. 거기서 보옥이는 농기구나 물레를 처음 보고서는 신기해서 만져보는데, 한 처녀아이가 나타나서는 물레가 고장난다고 핀잔을 주며 저지한다. 보옥이는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녀가 물레 잣는 걸 보여주자 넋을 잃고 바라본다. 옆에 있던 친척이자 단짝 친구인 진종이 ‘저 여자 끝내주는데’라고 하자, 보옥은 ‘그런 소리 집어치워, 한번만 더 그런 소리 했다간 맞을 줄 알라’고 면박을 준다.

잠시 후 농가를 떠날 때, 그 집안사람들이 나와 사례를 받고 전송을 하는데 보옥의 눈은 바삐 그 물레 잣던 여자아이를 찾는다. 그녀가 안보여서 안타까워하며 가마에 올라탔는데, 가마가 출발하자 저 멀리서 동생을 안고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다. 보옥은 그녀를 따라가고 싶어 죽겠는데 그럴 수 없어 눈으로만 멀어져가는 그녀를 쫓을 뿐이다.

보옥이가 속한 행렬은 앞꼭지와 뒤꼭지가 보이지 않는 길고 거대한 행렬이다. 가문의 위세를 길에 뿌리며 행차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런 그가 스치듯 만난 농가처녀에 대한 탄복과 존경심으로 자기의 처지와 신분을 잊고, 눈으로 그녀를 쫓으며 행렬로부터 빠져나오는 도주선을 그린다. 몸은 행렬에 묶여 있지만, 고개를 돌려 상체를 뻗어내며 멀어져가는 그녀를 시선으로 쫓는 보옥을 상상하면 나는 묘한 감동에 사로잡힌다.

두 번째 도주선, ‘시녀 습인의 집에 찾아가다’ : 보옥이의 시녀인 습인이 설 명절 때문에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사이, 보옥은 무료하고 심심하다고 하면서 시동하나만 대동하고서는 몰래 빠져나가 습인의 집을 찾아간다. 습인의 집은 그야말로 일반 백성이다. 중국말로는 老百姓. 넓은 대륙의 부가 거대 가문에 몰려 있으니 이런 백성들의 삶은 당연히 쪼들리고 보잘 것 없다. 가부의 설날은 어떠한가? 온갖 명절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연극이니 노래니 하며 떠들썩하기가 이를 데 없는 흥겨운 축제분위기다. 보옥은 그런 건 하나도 재미가 없나보다. 그저 몸의 일부처럼 곁에 있던 습인이 없으니 허전하고, 그녀가 사는 모습이 보고 싶을 뿐이다.

보옥이의 친 누님인 원춘이 귀비에 책봉되었을 때도 그랬다. 보옥의 집안이 부귀공명의 정점을 찍게 된 결정적인 경사인 귀비책봉 소식에 온 가족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있을 때도 너무나 심드렁했다. 단짝 친구가 아파서 누워 있는 게 속이 상하고 걱정될 뿐…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는 물질적 편안함이 얼마만큼의 재력과 권력의 수준인지를 알 때, 비교우위의 기쁨을 느낀다. 강남의 40평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추상적 부에 어깨가 올라가고, 자기가 탄 외제차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킬 부러움을 상상하며 거기에 비례해서 승차감의 편안함을 느낀다. 이런 망상적 기쁨은 조금만 생각해도 전혀 실체가 없는 것인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간다.

보옥이는 철저하게, 자기가 만든 관계에서만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헛된 이름이 가져오는 망상적 기쁨에 결코 포획되지 않는 그의 마음은, 한 줄기 도주선을 그리며 쪽문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것이다.

세 번째 도주선은 ‘금천아에게 애도를’ : 어머니 방의 시녀가 자기와 가벼운 희롱을 하다가 쫓겨났다. 억울함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금천아가 우물에 빠져 죽고, 충격과 슬픔에 빠진 보옥은 이 감정을 수습하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엄청나게 매를 맞았다.

시녀의 죽음쯤이야… 모두들 이 사건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잊고 지낼 즈음의 어느 날, 집안의 기둥이자 유쾌함을 몰고 다니는 희봉 형수의 생일날이 되었다. 가모는 모든 식구들에게 돈을 추렴하여, 집안식구들이 다함께 희봉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아 잔치를 성대하게 치러주기로 했다. 그 준비로 온 집안이 시끌벅적한 가운데, 잔치 당일 날 새벽같이 소복을 챙겨 입고 바람처럼 사라진 보옥이.

행사 자리에 보옥이 없는 것을 보고 모두들 난리가 나서 수소문하지만, 북정왕의 첩이 죽어서 조문을 갔다는 시동들의 미심쩍은 대답이 돌아왔다.

보옥은 어디갔을까? 보옥은 시동 명연이와 정처 없이 말을 달려 들판으로 나갔다. 명연이 어딜 가냐고 몇 번을 물어도 대답 없던 보옥이가 뜬금없이 향과 향로를 찾는다. 명연은 보옥의 괴벽스러운 성품을 익히 아는지라, 근처의 작은 암자로 안내해서 보옥이가 누군가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도와준다.

이 날은 보옥의 형수인 희봉의 생일일 뿐만 아니라, 자매들과 결성한 해당화 시사모임의 첫 번째 정식 모임 날이었다. 그가 넓고 깨끗한 들판을 찾아 제사를 올려준 사람은 금천아이다. 다정했던 시녀누나의 허망한 죽음에 대한 얼마나 슬프고 미안한 마음이 컸던지, 자기를 기다리는 가문의 사람들의 기다림에는 아랑곳없이 몰래 집을 빠져나간 것이다. 빈 의자… 그를 기다리는 의자는 바로 그가 그 가문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다. 나처럼 뭘 해서 먹여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가족들 모두 그에게 거기에 앉아 있는 도련님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집’이란 ‘꼭두각시 놀음’이 아니던가. 이번에도 보옥은 불편한 마음으로 그 의자에 앉아 있는 대신, 금천아에 대한 정성된 애도를 위해 빈 몸으로 말을 타고 새벽을 달린 것이다.

네 번째 도주선은 ‘보고 싶은 청문’이다. : 청문은 보옥 방의 시녀로서 보옥이 어머니인 왕부인이 너무 요염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쫓아낸 시녀이다. 아픈 몸으로 치욕스럽게 쫓겨난 청문이 걱정되어 가슴이 터질 것만 같던 보옥은 이번엔 혼자서 쪽문을 통해 빠져나간다. 청문의 집에 데려다 달라고 어떤 할멈에게 ‘죽어라 하고 애원하고 돈까지 건네’주어, 시동도 대동하지 않고 홀로 찾아간 것.

청문은 보옥의 방에서도 주인에게 가장 고분고분하지 않고 입이 매운데다 뻔뻔하기까지 한 시녀다. 그러나 너무나 예쁘고, 침선 솜씨로는 아무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한마디로 성질 값 하는 시녀라고나 할까?

보옥은 그녀와 빽빽대며 싸우고 울며불며 토라질 때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과 시녀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청문은 감기로 앓아누워있을 때, 보옥이의 공작털 외투를 밤을 새서 기워준 적이 있다. 자기밖에 그걸 기울 수 있는 사람이 없자, 아픈 몸으로 새벽 내내 집념을 불태우며 바느질을 하더니, 보옥이의 외출 시간에 맞게 수선을 마치고는 혼절을 할 정도로 살신성인의 자세로 보옥을 대했다.

쫓겨난 후, 더 이상 살 마음이 없던 청문은 도련님이 찾아온 걸 보고 감격과 회한에 펑펑 운다. 도련님과 속바지를 바꿔 입으며, 그녀는 이제 대관원 이홍원에 있는 듯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죽겠다고 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도련님이 갈 수 있도록, 청문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서, 도련님이 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슬픈 작별을 하기 위해 청문을 찾아간 것이다.

이 일 역시 대관원에서 발생한 풍기문란 때문에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있고 나서, 그 김에 왕부인이 평소에 찜찜했던 청문을 내쫓아버린 것으로, 만일 보옥이 이곳에 온 게 밝혀진다면 아마 경을 치리라.

보옥이 보여주는 네 개의 도주선의 공통점은 모두 가문에서 큰 일을 치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옥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따라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이 마음은 너무나 강력해서 거대한 가문의 철옹성 같은 문을 몰래 빠져 나가게 하고, 장례행렬에 속한 자신의 처지도 잊게 하면서 뒷문, 쪽문을 통해 끊임없이 바깥으로 흐른다. 아마도 이 힘들이 결국 이 가문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균열을 초래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집’이라는 강력한 중력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일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미세한 균열이 나 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해방이 될 때까지. 주말 아침의 도주는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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