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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 명겸(鳴謙)에서 배우는 진정한 겸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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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19-11-03 08:10 조회1,7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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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겸(鳴謙)에서 배우는 진정한 겸손함


신혜정(감이당 금요대중지성)

 

地山 謙 

謙 亨 君子 有終.

初六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六二 鳴謙 貞 吉.

九三 勞謙 君子 有終 吉.

六四 无不利撝謙.

六五 不富以其隣 利用侵伐 无不利.

上六 鳴謙 利用行師 征邑國.

주역의 64괘 중 여섯 개의 효(爻)를 모두 긍정적으로 풀고 있는 괘가 있다. 바로 지산겸(謙)괘. 산이 땅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숨기고 있는 형상으로 ‘겸손함’을 상징한다. 겸괘는 타고난 자질이 공손한 손(巽)괘와는 다르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겸괘는 풍족한 소유를 이야기하는 대유괘 바로 다음에 등장한다. 모름지기 재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엔 이런저런 구설과 사건사고가 생기기 마련. 그래서일까. 주역에서는 무엇이든 쌓여서 넘치는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겸괘를 공부하다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글 하나가 떠올랐다. ‘로또 1등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기획기사였는데 일확천금을 거머쥔 사람들의 이후 삶을 추적한 내용이다. 그 기사에 따르면 인생 역전을 꿈꿨던 다수의 사람들이 돈도, 건강도 잃고 가족, 친구도 다 잃은 채 결국 불행한 삶을 살더라는 거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겸괘의 「상전」에서는 ‘칭물평시(稱物平施)’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천하 만물의 흐름은 세상의 모든 것을 공평하게 분배하려는 기운이 있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걸 두고 보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든 본래의 상태, 평등한 모습으로 되돌리려 한다는 거다. 그러니 무엇이든 크게 소유한 자를 해치려 들고 미워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겸괘에서는 늘 자신을 비우고 가진 것을 나누라고 강조한다. 어려운 시기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솔루션은 ‘겸겸’ 겸손하고 또 겸손한 것.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헌데, 문제는 ‘다다익선’이라고, 가지면 가질수록 소유에 대한 욕망이 더 커져 멈추기가 어렵고 어떤 일을 이뤄냈을 때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겸손은 정말 힘들다.” 겸괘의 괘사에서도 겸손은 도의 끝, 도의 완성이라고 풀고 있지 않은가.(謙 亨 君子 有終.) 그 정도로 중요하고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사실 이제까지는 겸손이라고 하면 잘난 체하며 나서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는 언행을 떠올렸지 내 것을 나누고 덜어내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낮추는 것과 물적인 걸 내놓는다는 건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몇 년 전 한 도반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샘은 어떤 일이 주어지면 왜 맨날 저는 못해요 라는 말부터 먼저 해요. 결국은 잘 할 거면서,” 그 때는 그게 겸손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이미지를 지키는 교양 수준, 우아한 태도 차원에서 겸손을 이해했던 거다. 나를 비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키려 했던 것. 그럼 겸괘에서 말하는 진정한 겸손은 어떤 걸까? 그 답은 육이효의 “명겸(鳴謙)“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명검이란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와 목소리와 얼굴에 또 행동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어떻게 이런 태도가 가능한 것일까?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주적 차원에서 본다면 유무형의 자원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재물이든 재능이든 명예든 내가 많이 가졌다는 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몫이 그만큼 적어졌다는 거고 그 말은 결국 다른 이들의 걸 빼앗아 내 것을 채웠다는 의미도 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여러 인연조건들이 얽혀 만들어 진 결과라는 것. 이런 감각이 전제되어 있다면 나를 낮추고 내가 가진 걸 나누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하면 일겸사익(一兼四益). “하늘도 땅도 귀신도 사람도 덜어내서 나눈 부분을 복으로 채워준”다니. 아!! 그래서 겸괘의 여섯 효가 다 길한 거였구나. 나누고 비웠더니 복(福)으로 돌아와 채워지는 선순환.^^

헌데 겸괘의 상육효를 보면 같은 명겸이 또 등장한다.(鳴謙 利用行師 征邑國.) 이건 뭐지? 왜 겸괘의 마지막에 왜 다시 명겸이 나오는 걸까? 상육효에서 명겸은 육이효와는 다른 상황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겸손이 지나쳐 오히려 오만으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읍국을 친다는 건 사사로운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수양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 때문에 진정한 겸손이란 결국 세상과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내면의 중심을 잡아가는 과정. 다른 존재들과 나의 인연조건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우러나오는 미덕이자 최고의 관계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겸괘의 육이효를 통해 배운 겸손함이자 삶을 통찰하는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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