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희(금요 감이당대중지성)
火地 晉 ䷢
晉, 康侯用錫馬蕃庶, 晝日三接.
初六, 晉如摧如, 貞吉, 罔孚, 裕无咎.
六二, 晉如愁如, 貞吉, 受玆介福于其王母.
六三, 衆允, 悔亡.
九四, 晉如鼫鼠, 貞厲.
六五, 悔亡, 失得勿恤, 往吉, 无不利.
上九, 晉其角, 維用伐邑, 厲吉, 无咎, 貞吝.
참 많은 사람들이 연구실을 들고 난다. 대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오는 청년, 고미숙 선생님처럼 명강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오는 중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뭔가 속 시원한 해결책을 기대하고 오는 사람들 등등. 제각각 구체적인 목표는 다르지만 모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온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연구실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각자의 변신을 돕는데 그 중심에 놓인 것이 글쓰기다. 어떤 바람을 품고 왔건 이 글쓰기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
떠난 이들만 그렇겠는가. 남아 있는 이들도 이 과정이 힘들기는 매 한가지다. 금요 대중지성에서는 올해 내내 자신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하나의 고전을 리-라이팅하면서 자기 변형을 꾀하는 미션을 수행 중이다. 나름 애를 썼건만, 변한 게 없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인가 싶어 새로운 책들을 뒤적이며 나름 이 생각 저 생각 골똘히 하면서 고쳐본다. 그러나 여전히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반복해서 받기 일쑤다 그 순간 가슴이 답답해진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이 문제에서 반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거지? 고구마 백 개 먹은 듯한 답답함을 안고 주역 공부를 하다가 ‘나아감’의 도를 말하고 있는 화지진 괘의 초효가 눈에 띄었다. 나아가려면 그 첫 발을 어떻게 떼야 할까?
먼저 화지진(火地晉)괘의 구성을 보면 밝음을 상징하는 리 괘가 땅을 상징하는 곤 괘 위에 있어서 밝은 해가 땅 위로 나온 모습이다. 곤(坤)은 순응하고 이(離)는 광명하므로, 순응하는 태도로 광명을 향해 나아가 더욱 성대해지는 것을 ‘나아감[晉]’이라 한다. 괘사에서는 “나라를 안정시키는 제후에게 말을 많이 하사하고, 하루에 세 번 접견하는”[康侯用錫馬蕃庶晝日三接]것이 진 괘의 상황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제후는 순종의 태도로 크게 밝은 군주와 덕을 함께 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는 자다. 군주는 그런 제후에게 나아감의 도구인 말을 하사하여 격려하며, 제후는 스스로 나아감에 더욱 정진하면서 밝은 덕을 지닌 군주를 만나 자신의 나아감이 밝음을 향하고 있는지를 되새긴다. 그것도 하루 낮 동안 세 번씩이나. 상전에서 밝음은 “가려진 것을 제거하고 지극한 앎에 이르는”(정이천, 『주역』, 703) 것이라 했다. 주역에서 말하는 지극한 앎이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역의 원리 위에서 우주자연의 이치를 정미하게 탐구하여 그것을 자기 일상의 문제에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뜻한다. 이러한 지혜를 얻는 길로 가는 것이 진 괘가 말하는 나아감이고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