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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클래식]품행 제로 – 암군 무종과 환관 유근의 국정 농단 (1)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11-19 22:33
조회 : 108  








품행 제로 – 암군 무종과 환관 유근의 국정 농단 (1)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1. 비열한 거리(distance), 북경에서 귀주까지; ‘나 뿐’ 놈들 전성시대

문리스(남산강학원)

千聖皆過影(천성개과영), 良知乃吾師(양지내오사)

“뭇 성인들이란 모두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 양지가 곧 나의 스승이다”

시대와 나, 혹은 역사와 개인?

2019년, 이 땅은 언제나처럼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제법 찬바람이 뚜렷한 지금, 11월 중순에도, 여전히 뜨겁습니다. 이 땅이 언제 안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긴 합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한국의 근대 100년은 격동의 근대사 100년입니다. 어느 시기를 떼어 놓고 봐도 뜨겁지 않았던 시절이 없습니다. 농담처럼,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찰’ 만 합니다.

최근 몇 년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2016년과 2017년은 온통 촛불과 광장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8년엔 판문점을 오가던 남과 북이 떠오르면서 금방이라도 뭔가 일이 되거나 국면이 전환될 것 같았던, 지금 생각으론 판타지를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기억이 떠오르고. 올해도 만만치 않아서, 한일 관계가 얼어붙었니 어쩌니 하더니 아직까지 회복이 안 되고 있습니다. 올 초에 연말 일본 일정이 생겼었는데, 그때만 해도 설마 겨울까지 한일 관계가 냉각 상태일 거라곤 전혀 생각 못 했습니다.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앞으로도 일시에 회복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여름부터는 검찰개혁과 대학 표창장 문제(이른바 ‘조국 사태’)가 대한민국을 격렬하게 두들겼습니다. 이슈 블랙홀이라 할까. 정말 모든 뉴스가 다 빨려 들어가 버리는 듯한! 여하튼 대략 100일이 넘어가면서 한 풀 기세가 꺾인 것 같지만, 해결이 되거나 조정이 되었다기보단 조정 중인 형국이고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인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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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들끓는다는 건 뭐고 그런 들끓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또 무엇일까요. 무엇일까, 라고 묻고 있지만 그게 꼭 무슨 대답이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어떻게든 살 사람은 살아가게 되어 있지, 라는 체념 반 다행 반의 심정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세상(외부)이 들끓는 것에 비교해, 내부의 생활 리듬과 일상이 크게 틀어지는 경우는 솔직히 별로 기억에 없습니다. 아주 없지야 않았겠지만 견딜 만 했거나 대충 조절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인생은 아름답다>거나 <삶은 계속된다>는 식의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려는 건 아닙니다. 굳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1997년, 1988년은 역사적 대서사 이면에서 일상적 소용돌이에 부침하는 덕선이와 택이 같은 소시민적 역사들의 중중 무진한 세계입니다. 돌이켜보면 역사적 맥락에서의 1987년에도 혹은 그 이전 1970년대의 독재 유신체제 같은 시대 아래(혹은 이면)에서도, 일상은 늘 일상이었고 누구에게나 ‘역사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이 2019년 11월의 홍콩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제가 지금 홍콩에서 글을 써야하고, 공부 공동체를 하면서 세미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나고 나면 당연한 진리 같은 그 일상의 유장함이, 생각보다 일상을 유지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겠다는 감이 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이 무너지도록 둬서야 되겠는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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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하는 데 외부적 환경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거나, 일체유심조 같은 말들이 틀렸다는 말도 아닙니다. 설사 어떤 말이 진리라 할 때에도 중요한 건 진리의 언표가 아니라 진리 역시도 상황과 맥락을 떠난 진공 상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나, 혹은 역사와 개인 따위의 관계로 문제를 설정하는 건 질문 자체가 뭉툭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마음에 관한 학문의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이야기해보고 싶은 왕양명과 그의 시대처럼 말입니다.

나 뿐인 놈들의 나쁜 시대

왕양명(王陽明)은 서기(西紀) 1472년에 태어나 1529년(음력으로는 1528년 11월말)까지 58세의 생애를 살다 간 중국 명나라 시대의 유학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사소한 것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왕양명의 기본적인 생애 정보는 달리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왕양명은 명나라 성화제 헌종 8년에 태어나 가정제 세종 7년에 졸(卒)한 사대부 유학자입니다…. 엄밀히 말해 왕양명은 서기(1472년이든 1529년이든)를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중국력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피는 입장에서 보면 왕양명의 삶은 명나라 8대 황제인 헌종, 9대 황제 효종, 10대 무종, 11대 세종까지 4대에 걸쳐 있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겠습니다. 1472년-1529년과 성화제 헌종8년-가정제 세종7년.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생몰 표기가 어떻게 들리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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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명나라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왕양명이 살았던 명나라 중기는 그렇게 태평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속기(俗氣)를 벗어던지고 호연한 기상의 사대부로 한 생애를 살아간다는 건, 당시 역사적 배경을 조금만 이해해도 혹은 상상으로라도 벌써 어렵고 답답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양명은 바로 그와 같은 시기를 살다가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굳고 거대한 주자학이라는 학문 풍토를 거슬러 당당하고 초쇄한 대유학자의 학문과 삶을 살다 갔습니다.

더욱이 왕양명은 회시(回試)를 정식으로 급제한 문신(文臣) 관료였음에도 실제 삶은 갑옷을 입고 칼과 활을 찬 채 말에 올라 전장을 누비고 다녔던 무신(武臣)이었습니다. 사대부 선비로서 전쟁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게 아니라, 무인-장수로서 전쟁터’에서’ 죽고 사는 문제를 맞닥뜨리는 게 일상이었던 운명이었습니다. 조용히 공부만 해도 깨닫기 어려운 세상에서, 조용한 공부는커녕 생사를 걸고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공부이고 삶인 셈입니다. 왕양명을 만날 때, 이 대목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부터 저는 일단 그에게 한 수 접히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넘사벽 같은 기분이랄까요? 물론 이런 태도가 배움에 어떤 선입견을 갖는 것일 수도 있어서 꼭 좋은 방법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다른 사람들도 왕양명과 양명학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을 열게 되고 통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양명의 이런 조건(?)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지만 일단 왕양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그가 살았던 그의 시대에 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왕양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시대 배경 정리 같은 것은 건너뛰고, 딱 두 명의 인물만 소개하겠습니다. 정덕제 무종 그리고 환관(태감) 유근.

먼저 정덕(正德; 1506-1521)이란 연호를 쓴 황제 무종(武宗; 1491-1521)입니다. 무종은 명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 역사 속에서도 특이한 이력으로 이름을 날린 혼군(混君) 혹은 암군(暗君)의 대명사 같은 황제입니다. 요즘 같으면 암군(癌君)이라 불리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황제들이 등장하면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결국 어느 한 쪽이 죽어야 끝이 납니다. 황제가 죽든 나라가 결딴나든. 자기 밖에 모른다는 건 자기 밖(외부)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자기 바깥을 알지 못하는 것(알려들지도 않고)은 자기 안에 갇혀 있다는 뜻입니다. 즉 둘은 같은 것입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최상위에 해당하는 황제부터 ‘나 뿐’이라면 그 아래 신분들은 도미노처럼 연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대는 금세 ‘나 뿐’인 나쁜 놈들의 시대가 됩니다. 주발에 담긴 맑은 물에 먹물이 한 방울 떨어지면 그 순간 그 물은 먹물이 되는 것입니다. 2,400여 년 전에 맹자가 ‘나 뿐’왕이었던 양혜왕을 만나자마자 지적했던 사항이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특정한 사람의 경우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최고 권력자로 살아가는 황제들이야 대부분 자기 밖에 모르는 나쁜 사람들일 확률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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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생각이 그렇다 하더라도 자기 생각대로 대놓고 ‘나 뿐’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일단 아무리 황제라도 그게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전근대 정치권력의 역학 관계, 특히 송대와 명대를 거치면서 공고화된 사대부 관료들이 왕(황제)과 함께 국정을 책임진다는 동아시아 정치 구도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천하는 천자(황제)의 것이지만, 천자는 하늘(도덕)의 대리자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도덕의 대리자가 자신의 권리만을 앞세워 ‘나 뿐’인 황제라는 걸 커밍아웃한다?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정덕제 무종은 그 어려운 걸 거뜬히 그것도 아주 특이하게 해낸 황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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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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