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雷 无妄 ䷘
无妄, 元亨, 利貞,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初九, 无妄, 往吉.
六二, 不耕, 穫, 不菑, 畬, 則利有攸往.
六三, 无妄之災, 或繫之牛, 行人之得, 邑人之災.
九四, 可貞, 无咎.
九五, 无妄之疾, 勿藥, 有喜.
上九, 无妄, 行, 有眚, 无攸利.
수십 년 아픈 동안 참 많은 약을 먹었다. 먹는 것뿐 아니라 하여간 좋다는 치료는 다 한 것 같다.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긴 했겠지만 생각만큼 ‘이거다’ 싶은 약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천뢰무망의 오효, “무망지질 물약 유희(无妄之疾, 勿藥, 有喜 ; 진실무망함의 질병은 약을 쓰지 않으면 기쁜 일이 있다)”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진실무망함의 질병이란 무슨 뜻일까? 무망은 망령되지 않다는 것인데 왜 병이 생긴 걸까?’, ‘약을 쓰지 않아야 기쁨이 있다고? 왜 그런 거지?’ 하는 궁금증과 함께. 그러다가 최근 들어 어렴풋이, 그 의미가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효를 가지고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망 괘의 모습은 건괘가 위에 있고, 진괘가 아래에 있다. 진괘는 움직임을 상징하니, 괘상을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의 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정이천은 “진실무망이란 올바름일 뿐”이고, 올바름은 “이치의 올바름”이며,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과도하게 갔기 때문”이라고 무망을 풀이했다.(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524) 요컨대 무망, 즉 망령되지 않다는 것은 이치를 따를 뿐 과도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병을 얻고 보니 이치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약’을 찾기에 급급했다. 무엇이 무망이고 무엇이 망령된 것인지 분간을 하기도 어려웠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아프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산 게 아니었기에 그저 눈앞에 닥친 힘겨움을 덜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을 뿐.
그런데 무망지질이라면 약을 쓰지 않아야 기쁨이 있단다. 그보다 더 좋은 처방이 없을 텐데, 그건 도대체 어떤 병일까? 그런데 무망, 즉 망령되지 않음에 왜 병이 있을까? 이 질문을 곱씹다 보니 내가 무망을, 어떤 문제도 없는 온전한 상태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다. 이 세상의 만사 만물은 역(易)이라는 이치 위에 온갖 일들이 만나고 충돌하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고 이해를 하다가도 막상 무망, 망령되지 않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완벽한 상태, 어떤 문제도 없는 상태를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무망에 왜 병이 있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병’이라는 것은 망령됨 그 자체여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악인 것처럼 내 삶과 분리시켜 놓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