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火 賁 ䷕
賁, 亨, 小利有攸往.
初九, 賁其趾, 舍車而徒.
六二, 賁其須.
九三, 賁如濡如, 永貞, 吉.
六四, 賁如皤如, 白馬翰如, 匪寇, 婚媾.
六五, 賁于丘園, 束帛, 戔戔, 吝, 終吉.
上九, 白賁, 无咎.
감이당(坎以堂)에서 공부한 지 3년이 되던 해였다. 2년까지는 고만고만하게 경쟁하며 우리끼리 희희낙락하며 글을 썼는데, 3년째부터는 분위기가 달랐다. 매주 돌아가며 발표하는 발제문부터 시작해서 모든 글쓰기가 2년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어려웠다. 나는 매주 어리바리하며 어쩔 줄을 모르는데, 한 해 먼저 시작해서 이런 분위기에 적응한 다른 친구들은 너무나 글을 잘 쓰는 것이었다. 그들에 비해 내 글은 너무 볼품없고 초라해 보였다.
어느 날, 『도덕경』을 발제하는 날이었다. 『도덕경』 제81장 ‘信言不美 美言不信(신언불미 미언불신)’에 대한 발제문을 썼는데,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노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다운 말로 글을 잘 쓰고 싶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도덕경』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노자의 그 많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진솔한 말보다는 아름다운 말로, 깊은 지혜와 함께 박식함도, 낮게 흐르는 물보다는 높이 솟은 산이 되어 보고 싶은 내 속의 욕망을 보기 때문이다.” 이는 그날 쓴 나의 발제문의 일부이다. 발제문 발표 후 선생님께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맞았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야단을 맞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글쓰기부터 배워야지 미사어구로 치장하는 습관부터 들이면 안 된다고 하셨다. 한번 습관이 들면 그걸 바꾸는 건 너무나 어렵다며, 아름답진 않아도 진솔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지금 여기서, 당장 다짐하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