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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솥과 공부와 주방에 대하여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9-12-15 13:19
조회 : 524  




솥과 공부와 주방에 대하여



김주란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 火風鼎

鼎 元吉亨.

初六 鼎 顚趾 利出否 得妾 以其子无咎.

九二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 卽吉.

九三 鼎耳革 其行塞 雉膏不食 方雨 虧悔終吉.

九四 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六五 鼎黃耳金鉉 利貞.

上九 鼎玉鉉 大吉 无不利.

 

조금씩 해서 바로 먹어야 맛있는 요리도 있지만 국은 아니다. 국은 큰 솥에 물을 넉넉히 잡고 오랜 시간 푹 끓여야 맛이 있다. 감이당 국이 맛있는 건 그래서이다. 보통 사오십 인분은 예사로 만들어내니 얼마나 국솥이 크겠는가. 화구도 일반 가정용이 아닌 식당용이라 화력이 어찌나 좋은지 그 큰 솥에 가득 끓여도 금새 설설 김이 오른다. 미역국, 배춧국, 북엇국, 된장국에 채소만 넣고 끓인 육개장까지, 온갖 맛있는 국을 끓여내는 솥! 주역에도 이 솥을 테마로 한 괘가 있으니 이름하여 화풍정(火風鼎)괘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솥이 뭐라고 64괘 중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걸까 궁금하다. 과연 화풍정괘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

주역에서는 문명의 시작을 중화리괘로 말한다. 리(離)괘는 불이 두 번 겹쳐진 모양의 괘이니, 불로 어둠과 맹수를 물리치고 음식을 익혀먹기 시작하면서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학자들도 불의 역할에 주목한다. 화식(火食)을 시작하면서 소화가 더 쉬워졌고, 치아나 창자의 활동에 소요되던 에너지를 그만큼 더 대뇌로 넘겨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인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을 만들었다! 불과 물이라는 두 대극적인 에너지가 ‘솥’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로 인해 드디어 함께 작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엔진기관이나 컴퓨터, 우주로켓, 원자력 등만 ‘문명’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화풍정괘를 읽으며 나의 좁은 소견을 반성했다. 주역은 이런 문명의 창안자를 성인(聖人)이라 한다. ‘세인트’가 아니라 문화기획자, 생활 발명가라니~ 거 참 신선하다.

이렇게 볼작시면^^ 솥이란 실로 놀라운 기물이다. 겉은 타고 속은 설익기 쉬운 직화구이에 비해, 솥으로 끓인 국은 각 재료가 모두 부드럽게 익는데다 국물로 우러난 맛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 “끝내주는 국물 맛”의 조화로움에 우리의 영혼은 위로받고, 원기는 보충된다. 게다가 더 적은 양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장점까지 더 해진다. 그리고 주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성인은 음식을 삶아서 상제에게 제사를 올리고크게 삶아서 성현을 기른다.”(화풍정 단사) 성인의 진정한 기획 의도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감이당과 같은 공부공동체이건 혁명으로 수립된 새로운 국가이건 모든 사회에는 공통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제사나 교육은 그 비전을 만들고 공유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일 것이다. 공동체를 무의식 차원에서 함양하고 축복하는 의식이 제사라면, 교육은 실제로 구성원들에게 역사와 문화를 전수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사업의 핵심에 ‘솥’이 있다는 것 아닌가! 아, 솥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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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솥을 다루는 일이 만만할 리가 없다. 정괘의 괘사는 “크게 길하니 형통하다”로 단순하지만, 효사는 자리마다 유의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건 사효다. 솥이 다리가 부러져 공에게 바칠 음식을 엎었으니그 얼굴에 땀이 흐른다흉하다.”(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다된 음식을 나르다 그만 엎어버리는 것!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배고픈 학인들이 웅성웅성 몰려오는데, 솥에 가득 든 국을 엎지르다니….. 고대의 솥에는 다리가 셋 달려 있다. 밑변이 삼각형을 이루는 구도가 하나의 무게 중심으로 집중하기에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리가 부러졌다면 그건 어느 한 다리가 너무 길거나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책임은 구사효에 있다. 구사는 군주 바로 밑에서 아래 삼효를 다스리는 대신(大臣)이다. 따라서 구사는 자기 일처리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정이천은 말한다. 세상의 일을 어찌 한 사람이 홀로 책임질 수 있겠는가반드시 세상의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구하여 그들과 협력해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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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온전히 제 역할을 하려면 보이지 않는 중심이 필요한데, 그게 구사의 역할이다. 다시 감이당 주방으로 돌아와 보자. 밥당번을 하러 가면 어떤 날은 전직 쉐프 출신의 베테랑, 어떤 날은 계란 프라이도 안 해본 청년 등 매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하게 된다. 처음엔 요리보다 낯선 주방 환경에서 낯선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게 더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주방에는 언제나 주방의 구사효, 매니저가 있다. 매니저만큼 감이당 학인들과 골고루 안면을 튼 사람도 없기 때문에 서먹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화제를 찾아 말을 건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늘의 메뉴나 주방 사용법 등을 전체적으로 안내한다. 이런 마음 씀이야말로 세 개의 솥다리가 균형을 이루며 하나의 마음으로 모이도록 하는 작업일 것이다. 매니저 역시 공부하는 학인이기 때문에 주방에만 붙어있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그가 한 번 왔다 가면 그 후로는 알아서 눈치껏 협력해서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세 시간 가량을 함께 썰고 볶고 씻고 치우며 수다를 떨다보면 마치 솥에 넣은 배추와 파가 된장 국물에 부드럽게 풀어지듯 마음이 푸근하게 통하니, 감이당 국솥이 끓여내는 것은 단지 국 만이 아닌 것 같다.

물론 감이당 주방에도 간간히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찾아온다. 카레가 타 눌어붙거나, 밥이 설거나 심지어 화풍정 구사효처럼 다된 음식을 쏟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그냥 사건일 뿐이다. 진짜 실패는 감이당 주방의 존재 이유를 망각할 때일 것이다. 감이당은 공부 공동체이다. 공부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 공부를 위해 밥을 차리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공부하기 위해 먹고, 먹으니까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지불식간에 공부와 주방일을 차등시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밥당번하는 시간이 아깝고 힘들어질 터. 주방에서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낸다해도 이 점을 놓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솥다리가 부러지고 함께 먹을 국을 쏟는 일이 될 것이니 주방에 들어갈 때마다 외워야 하지 않겠는가? 정절족, 복공속, 기형악, 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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