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온전히 제 역할을 하려면 보이지 않는 중심이 필요한데, 그게 구사의 역할이다. 다시 감이당 주방으로 돌아와 보자. 밥당번을 하러 가면 어떤 날은 전직 쉐프 출신의 베테랑, 어떤 날은 계란 프라이도 안 해본 청년 등 매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하게 된다. 처음엔 요리보다 낯선 주방 환경에서 낯선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게 더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주방에는 언제나 주방의 구사효, 매니저가 있다. 매니저만큼 감이당 학인들과 골고루 안면을 튼 사람도 없기 때문에 서먹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화제를 찾아 말을 건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늘의 메뉴나 주방 사용법 등을 전체적으로 안내한다. 이런 마음 씀이야말로 세 개의 솥다리가 균형을 이루며 하나의 마음으로 모이도록 하는 작업일 것이다. 매니저 역시 공부하는 학인이기 때문에 주방에만 붙어있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그가 한 번 왔다 가면 그 후로는 알아서 눈치껏 협력해서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세 시간 가량을 함께 썰고 볶고 씻고 치우며 수다를 떨다보면 마치 솥에 넣은 배추와 파가 된장 국물에 부드럽게 풀어지듯 마음이 푸근하게 통하니, 감이당 국솥이 끓여내는 것은 단지 국 만이 아닌 것 같다.
물론 감이당 주방에도 간간히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찾아온다. 카레가 타 눌어붙거나, 밥이 설거나 심지어 화풍정 구사효처럼 다된 음식을 쏟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그냥 사건일 뿐이다. 진짜 실패는 감이당 주방의 존재 이유를 망각할 때일 것이다. 감이당은 공부 공동체이다. 공부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 공부를 위해 밥을 차리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공부하기 위해 먹고, 먹으니까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지불식간에 공부와 주방일을 차등시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밥당번하는 시간이 아깝고 힘들어질 터. 주방에서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낸다해도 이 점을 놓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솥다리가 부러지고 함께 먹을 국을 쏟는 일이 될 것이니 주방에 들어갈 때마다 외워야 하지 않겠는가? 정절족, 복공속, 기형악, 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