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세력화 혹은 환관들에 대한 절대 권력의 견제는 역대 왕조들에서 꾸준히 지적되어 왔고 또 시행되어 왔습니다. 물론 명나라도 그걸 모르지 않았고 방안을 모색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막을 수는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건 그들을 견제하는 권력이 다른 한편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동력으로 그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환관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환관들은 권력에 관심이 있거나 권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느낌조차 보여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오랜 역사가 보여주듯 불가능합니다. 환관들은 대대로 공공연하게(혹은 은밀하게) 멸시되는 존재들이었고, 이것은 무엇보다 생식 기능의 부재(무능력)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혹은 가정을 이루기도 하고 혹은 양자를 들여 후사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거세된 자라는 근원적 결핍은 상쇄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은밀하게(혹은 공공연하게) 권력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황제(황실)가 절대적 충족감에 따라 방탕과 무절제로 치닫는 표상을 보여준다면, 환관들은 절대적 결핍감에 따른 탐욕의 표상입니다.
정덕제 무종이 15세에 명나라 황제로 즉위했을 때, 유근은 55세의 환관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가 베테랑 환관이었다는 사실 이외에 정덕제 무종을 출생에서부터 보아온 인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근은 영락제 성조 및 성화제 헌종, 그리고 홍치제 효종 시대 등을 두루 거치면서 황실 내부의 권력 관계를 충분히 경험했을 뿐 아니라, 무종의 성향과 자질 또한 깊이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놀기 좋아하고 괴팍한 망나니 황태자만큼 상대하기 쉬운 주군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무종은 예상 외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여하간에 무종 시대에는 유근을 포함한 여덟 명의 막강한 환관 세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팔호(八虎)라고 부르는데(마영성, 고봉, 나상, 위빈, 구취, 곡대용, 장영), 유근은 팔호의 리더였습니다. 환관 신분으로 호랑이에 비유된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방자하고 사납게 권력을 휘둘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유근은 사람의 안색을 잘 살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매우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는 얘기일텐데, 그러면서 종종 구설에 오르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유근의 이런 재주는 무종이 한창 음주 가무에 젖어들어 있을 때를 노려 복잡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를 보고하는 식으로 발휘(!)됩니다. 이는 환관들이 자신의 주군을 길들이는 전형적인 방법인데, 특히 눈치가 빨랐던 유근으로선 이런 방법을 통해 금세 자신의 지위를 내외적으로 각인시키는 소득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