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것이 삶의 유익함이자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도 나를 진솔하게 드러내고 나의 허물을 고치고자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럴 때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촉발하고 나도 그들을 촉발하는 관계가 된다. 육이는 이런 모습을 잘 드러낸다. “혹 증진시킬 일이 있으면 열 명의 벗이 도와주는 것이다. 거북일지라도 이를 어길 수가 없으나, 오래도록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니, 왕이 상제에게 제사하더라도 길하다.”( 六二, 或益之, 十朋之龜弗克違, 永貞吉, 王用享于帝, 吉) 여기서 열 명의 벗이란 많은 벗들이 와서 도움을 준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거북은 길흉을 점치는 도구를, 제사는 하늘과의 감응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개과천선을 하고자 한다면 모든 친구들이 도와주고 점을 쳐도 어긋날 수 없고 하늘이 감응할 정도로 천지 만물이 자신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견지하면 좋으련만 익괘 마지막에서 문제가 생긴다. “유익하게 해주는 이가 없고, 어떤 이는 공격한다. 마음을 세우는 데에 욕심을 지속시키지 말아야 하니, 흉하다.” (上九, 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凶) 어느 순간 개과천선의 비전은 없어지고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 이런 마음은 참으로 익숙하다. 나의 연구실 생활을 돌아보면 초기에는 배운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러면서 연구실은 직장, 도서관, 집, 놀이터가 결합된 복합 융합 공간이 되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배려받는 위치에서 배려하는 위치로 모드 전환을 해야 할 때가 왔다. 그때 난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계속 배려받는 위치에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배려의 마음을 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망각할 때 자기 것을 챙기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올라온다. 이때 바람과 우레가 협업하여 힘을 불어넣는 관계를 기억하자. 그런 관계 속에 있을 때 개과천선이 가능하다. 만약 그런 태도 없이 이익만을 탐한다면 결국 누군가의 공격을 받게 돼서 흉할 수밖에 없다고 주역은 경고성 멘트를 날린다. 마음을 비우면 주변 친구들을 포함한 천지 만물의 배려 속에 늘 살고 있음이 보인다. 이기심으로 인해 보지 않았을 뿐! 하여 때로는 배려를 받고 때로는 배려를 하는 모드 전환을 하는 힘. 그런 능력이야말로 삶의 유익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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