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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강변에 선 어린 여우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1-03 15:32
조회 : 107  


강변에 선 어린 여우


이한주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火水 未濟    ䷿

未濟, 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初六, 濡其尾, 吝.

九二, 曳其輪, 貞吉.

六三, 未濟, 征凶, 利涉大川.

九四, 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有賞于大國.

六五, 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吉.

上九, 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드디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고전 평론가 반의 글쓰기 발표가 끝났다. 감이당의 고전 평론가 과정의 글쓰기는 한 권의 고전을 1년 동안 공부하여 리라이팅하는 방식이다. 저자의 생애와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조사하고, 이 고전과 관련 있는 책들을 읽는다. 그리고 텍스트를 분석하고 책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오게 되었는지, 왜 이 고전을 읽게 되었는지, 이 고전을 운용하여 삶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글을 써서 발표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글쓰기 기술은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중요한 것은 온전히 고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전의 지혜를 삶에 녹여 운용할 수 있을 때 삶은 변화하고, 변화한 자신을 직시하여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 한 편을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나는 올해 들뢰즈와 과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나의 고전으로 삼았다. 이 고전을 통하여 무의식을 탐구하여 지금까지 오이디푸스적 삶 안에서 반복했던 부정적 감정의 습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마무리하면서 이미 느낌이 왔다. ‘올해는 통하지 못했구나…….’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발표가 끝난 뒤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직 나는 『안티 오이디푸스』와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름 한다고 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책과 삶이 어긋난 상태였다. 그러니 정확히 나의 감정의 습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결과론적으로는 미완의 글, 불통의 글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 어긋난 지점에서 앞으로 글쓰기를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이번에는 화수미제 괘를 공부했다.

미완성을 상징하는 화수미제는 주역의 64괘 중 가장 마지막에 오는 괘이다. 이 점에서 발견되는 주역의 탁월한 묘미는 완성을 상징하는 수화기제 괘 다음에 미완성을 뜻하는 화수미제 괘가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마지막이 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으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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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지막이 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으로 끝날까?

주역은 말한다. 사실 천지인, 자연의 흐름으로 인생사를 보자면 완성과 미완성은 없다. 그저 ‘생생지의(生生之義)’ 즉, 살리고 살리려는 뜻만 있을 뿐! 그래서 천지자연의 흐름에 의거한 역의 이치를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라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천지자연은 처음도 마지막도 없다. 변화할 뿐이다.

그저 변화할 뿐인 천지자연의 이치를 말해주는 주역에서 화수미제는 어긋남 속의 생성을 말하고 있다. 이 원리는 괘상에 잘 드러나 있다. 하괘는 아래로 흘러가는 물, 상괘는 위로 타오르는 불의 형상이다. 그러니 둘은 만날 수가 없다. 상하가 어긋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가운데에서도 각 효들은 서로 호응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지한 자리는 제 위치가 아니지만, 음양이 만나 창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것이 화수미제의 괘상이 보여주는 바다.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주체로 등장하는 것은 어린 여우이다. 괘사에서 어린 여우는 과감하게 강을 건너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꼭 이솝우화의 한 장면 같은 이 상황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왜 굳이 어린 여우일까? 여우는 아직 어려서 강물의 깊이를 모른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과감하게 강을 건너려는 마음을 낸다. 이 상황은 육삼효의 효사에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육삼효는 미완성의 때에 가면 흉하지만, 큰 강을 건너는 것은 이롭다. (未濟, 征凶, 利涉大川)” 미완성의 때, 어린 여우는 당연히 강을 건널 수가 없다. 물에 빠져 위태로워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이것은 무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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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에서는 어린 여우가 미제의 때에 나아가면 흉한 것은 아직 자신의 적당한 위치를 찾지 못해 어긋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파는 이 상황을 기다림으로 해석한다. 현재 어린 여우의 상황과 마음과 능력은 모두 어긋난 상태이다. 어리기에 상황 파악이 힘들고 강을 건너고 싶은 욕심은 나지만 능력은 미달이다. 하지만 어린 여우는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기다리면 건널 수 있다. 어린 여우는 기다릴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헤엄치는 능력을 기르는 수련. 다시 말하자면, 삶의 시작점, 강변에 선 어린 여우에게 미완성의 때는 삶이라는 큰 강을 건너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다. 아직은 어긋나 있지만, 어린 여우는 이렇게 성장하고 변화하며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고전 평론가! 각자 나름의 삶에 대한 간절함, 또는 우연한 마주침에 의해 많은 도반들이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 과정을 가고 있는 우리는 모두 강변에 서 있는 어린 여우가 아닐까? 모두 쉽지 않은 과정을 가고 있다. 중간중간, 누구는 절망하고 누구는 그만두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올해도 글쓰기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런데 한편으로 1년의 과정을 조각조각 나누어 현실에 들어가 보면 다른 면들이 보인다.

텍스트를 공부하는 벗들이 모여 세미나를 열었고, 사우들 앞에서 중간 과정을 발표도 해보았다. 필사하고 같이 암송하고, 이 고전을 삶에 적용해보자고 공부 모임을 만들어 머리 맞대고 토론도 해보았다. 아직 고전 평론은 삐거덕거리고 있지만, 그 과정 안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었고 스토리가 탄생하고 있었다. 이 만남에 목표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을까? 이 이야기들에 완성과 미완성의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을까? 그 과정은 그저 온전한 삶이었다. 나의 글쓰기는 미완이었지만 그것으로 가는 과정으로서의 삶은 창조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안티 오이디푸스』 리라이팅을 주제로 ‘내 인생의 주역’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미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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