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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기쁨은, 차가운 이성과 함께!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1-08 21:32
조회 : 414  










기쁨은, 차가운 이성과 함께!

오창희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雷地 豫   

豫, 利建侯行師.

初六, 鳴豫, 凶.

六二介于石不終日貞吉.

六三, 盱豫, 悔遲, 有悔.

九四, 由豫, 大有得, 勿疑, 朋, 盍簪.

六五, 貞, 疾, 恒不死.

上六, 冥豫, 成, 有渝, 无咎.

주역은 여백이 참 많은 텍스트다. 그래서 해석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걸 채우는 과정에서 그냥 지나쳐버린 삶의 이치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뇌지예는 기쁨을 만났을 때 우리가 보이는 다양한 모습을 통해 진정한 기쁨이란 무엇이며, 그러한 기쁨을 오래도록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괘상을 보면 땅을 상징하는 곤괘가 아래에,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가 위에 있고, 사효만이 유일한 양효이다. 정이천은 이를 “양이 땅 속에 잠재해 감춰졌다가 진동하여 움직여, 땅 속에서 나와 그 소리를 떨쳐 일으키니, 소통하여 펼쳐져서 조화를 이루어 즐겁기 때문에 열광”이라고 풀이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같은 생각이 잠재해 있다가 누군가 소리쳐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 거리로 뛰쳐나와 그 마음을 서로 나누며 기쁨에 겨워 소리치는 군중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괘사[利建侯行師]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제후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이롭고, 군대를 출동하는 것이 이로운 상황일 때, 백성들이 역시 어떤 자리에 있든 어떤 기질을 가졌든 중정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열렬히 이에 호응하는 모습, 그것이 기쁨이자 열광이라고. 요컨대 진정한 기쁨의 필요충분조건이 오랜 숙성의 시간, 저절로 터져 나오는 소리, 소통, 펼침, 조화라는 것이다.

이런 기쁨의 상황인데 효사로 들어가면 뜻밖에도 길한 효가 이효 하나밖에 없다. 열광하며 큰소리를 내는 초효에게는 흉하다 하고, 사효를 쳐다보고 있는 삼효에게는 후회가 있을 거라 한다. 모두 다 호응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운명이 갈리는 건 왜이며, 이 열광이 ‘여유롭게 즐김’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유일하게 길한 이효를 바탕으로 그 이치를 알아보자.

다시 괘상을 보면, 모두가 호응하는 사효의 기쁨은 충동적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순종의 미덕을 가진 곤괘를 다 통과한 연후, 즉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고 그 이치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기쁨이 일어나고,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저절로 터져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초효는 이런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사효와 응을 하는 자리에 놓인 덕분에 그의 총애를 받게 되자 너무 좋다고 소리부터 질러대는 형국이고, 삼효는 초효보다는 뜸이 들었지만 아직은 시간이라는 지층을 더 견뎌내야 안으로부터 기쁨의 소리가 터져나올 텐데 조급하게 사효를 쳐다보며 나누어 달라 하고 있다. 둘 다 사효의 그 기쁨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하는 이치를 탐구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걸 다른 이들과 나누겠다는 마음의 여유도 없다. 결국 기쁨을 만났을 때 취하는 그들의 태도가 운명을 갈라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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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육이는 절도가 돌과 같아 하루를 기다리지 않고 단호하게 행동하니올바르고 길하다[介于石不終日貞吉].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있으면 반드시 열광하므로 점차로 탐욕과 미혹에 빠져 그칠 수가 없게 된다.”(정이천) 인생사 힘든 문제로 고민하다가 출구를 만나면 기뻐하거나 열광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 순간 갈림길에 서게 되므로. 에너지를 어느 방향으로 가져갈 것인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구도의 길로 갈 것인가 미혹의 길로 빠질 것인가 하는. 무엇이 이효를 이러한 갈림길에서 길함으로 방향을 잡게 했을까.

이미 기쁨의 극한에 이른 상육을 제외하면, 육이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위치[正]에 있는 효다. 게다가 하괘에서 중(中)을 얻기까지 했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줄을 놓치지 않고, 현상과 근원을 함께 탐구하면서 상황을 주시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은 자다. 이 지혜가. 사효를 보는 순간 다른 효들과 함께 기쁨에 들떠 열광했지만, 육이가 그 기쁨을 마음속에 갈무리하면서 곧바로 돌 같이 단단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토대이자, 이웃하고 있는 초효와 삼효의 태도에서 탐욕과 미혹으로 가는 기미를 읽어낸 힘이기도 하다. 길흉이 정해지기 전에 그 기미를 알아채느냐 아니냐에 따라 이렇듯 운명이 달라진다. 공자님께서 “갈림길[幾]을 아는 것이 신령한 것[知幾其神乎]”이라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니 기미를 알아채려면 진리를 만난 기쁨을 가슴에 품은 채 그 기쁨의 이치를 탐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중정함을 가져야 한다.

문득 류머티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소동이 떠오른다. 이십 년 가까이 먹은 오만가지 약의 독성을 빼내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단식이 엉뚱하게 근육을 빼는 바람에, 관절 변형이 심해지고 몸무게 저하로 생리작용에 이상이 생겨서 약간은 암울한 상황에서 ‘활원(活元)’운동을 만났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도장을 찾았고 자율신경계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활용하는 운동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그동안 이런 식으로 속은 치료법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기에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열흘쯤 지나자 뜻밖에도 그 당시 내 몸 상태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동작들이 저절로 일어났다. 내 안에 이런 힘이 있었다니 싶어서 놀랍기도 했고, 전신 관절에 이상이 있어 운동을 하는 데 한계를 느끼던 내게 딱 맞는 운동이란 생각에 무척 흥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굳어버린 오른쪽 팔이 추석 무렵 펴지게 될 거라는 예언까지 해 주시니 더욱 흥분!! 다행히도 추석이 지났지만 팔은 그대로였고, 들뜬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연하게라도 팔이 펴졌더라면 내 삶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기쁨에 들뜬 순간 그 운동의 이치를 탐구했더라면 또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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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기쁨은 돌 같이 단단하고 냉철한 이성이 함께할 때 누릴 수 있는 거라고.

일반적인 약과 치료가 효과가 없자 언제부턴가 나는 일상적인 범위를 벗어나서 작동하는 어떤 기적 같은 걸 기대했고 또 권유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경험들로 나에게 희망을 주려 했다. 부흥회가 그랬고 안수기도가 그랬고 남묘호렝게교가 그랬다. 그런데 뇌지예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건 기쁨이 아니라고. 진정한 기쁨은 돌 같이 단단하고 냉철한 이성이 함께할 때 누릴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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