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는 일 년 열두 달을 12개의 괘에 배속시켜놓은 12소식괘(消息卦)가 있다. 그 중 새해인 1월에 해당하는 괘가 바로 지천태괘(地天 泰). 해서 태괘를 통해 신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먼저, 그 상(象)을 살펴보면 땅은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처해 있는 모습이다. 자연의 형상과는 역전된 모양이니 이거야말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닌가. 헌데, 여기서 반전. 태(泰)괘는 ‘소통과 안정’을 상징한다. 어떻게 이런 해석이 가능한 걸까?
하늘의 본래 성질은 위로만 향하는 강건함이고, 땅은 아래로 내려가려는 유순함이 본성이다.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하늘은 위로만, 땅은 아래로만 향하니 이 둘은 만날 일이 없다. 태괘가 소통을 의미하는 이유는 바로 천지의 상이 뒤집혔기 때문. 서로 자기 위치를 고집하지 않고 역지사지했기에 만날 수 있고 만나야 통할 수 있다는 이치다. 동의보감에서는 심장과 신장의 기가 꽉 막혀 생기는 병증의 치료에 교태환(交泰丸)을 처방하는데 이때 ‘태’가 바로 ‘통한다. 뚫어준다.’라는 뜻. 또 있다.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 역시 지천태괘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마음’. 그러니 지천태괘의 괘사에서 “소통의 도는 길하고 또 형통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태괘의 여섯 효 중에서 나는 특히 구이효에 관심이 갔다. 정이천은 “소통과 안정을 이룬 때를 다스리는 방도를 주로 구이효를 중심으로 말했다.”라고 풀기 때문이다. 왜 모든 것이 원만하고 태평한 시기에 다스림의 도에 대해 강조하는 걸까? 뭐든 술술 잘 풀리고 안정을 이룬 때일수록 ‘기망기망(其亡其亡)’하는 겸손한 마음과 경계하는 태도,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 방도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자.
구이효에서는 그 방법에 대해 “더러운 것을 포용하고,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며, 먼 것을 버리지 않고 파벌을 없애면, 중(中)을 시행하는 것에 합치된다.”라고 했다. (九二, 包荒, 用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 먼저 더러운 것을 포용한다는 뜻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의견 차이가 있는 사람도 포용하는 도량을 지녀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맨몸으로 바다를 건넌다는 건 안정이 주는 편안함과 이제까지 해오던 습관을 따르려는 타성을 혁신할 수 있는 강단과 용기가 필요함을 가리킨다. 공동체를 하다 보면 정말 이런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둘은 다른 차원이 아니다. 주변에 나와 의견이 비슷한 사람, 마음 맞는 사람만 있다면 당연히 안일함과 동일성의 적폐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다른 존재들과 다른 생각들이 들어와서 섞여야 비로소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