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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역]‘전전긍긍’에서 ‘종일건건’으로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1-27 21:05
조회 : 220  





‘전전긍긍’에서 ‘종일건건’으로




오창희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重天 乾   ䷀

乾, 元, 亨, 利, 貞.

 

初九, 潛龍勿用.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九三君子終日乾乾夕惕若,无咎.

九四, 或躍在淵, 无咎.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上九, 亢龍有悔.

用九, 見羣龍, 无首, 吉.

주역에서는 우주만물이 건과 곤, 즉 하늘과 땅, 이 두 개의 힘으로 생겨나고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본다. 그래서 64괘의 첫머리에 이 두 괘를 배치했다. 그 중 첫 번째가 ‘중천건’이다. 이는 ‘☰’을 둘 겹쳐놓은 것인데 이 기운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하늘[天]이고, 그 자질은 강건하여 쉼이 없기 때문에 건(健)이라고 한다. 건은 만물을 시작케 하는 근원이고만물을 형통하게 성장시키고만물을 촉진시켜 이롭게 하고만물을 곧게 완성시킨다.”(정이천,주역,52) 이러한 하늘의 쉼 없는 활동을 구현하려면 그에 버금가는 만큼 넓고 큰 땅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곤이다. 이렇게 이 둘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건과 곤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중천건괘를 살펴보자. 괘사에서는 건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 풀이하고, 효사에서는 건괘의 변화 단계를 변화무상한 ‘용’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크게는 우주를 가득 채울 수도 있고 작게는 개미만한 모습으로도 변신 가능하면서 그 누구도 전체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중국문화에서 수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상징물로 숭배해 온 용이야말로 하늘의 광대무변하고 변화무상한 자질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두 가지가 궁금했다. 왜 여섯 효에서 유독 삼효에만 용이 아니라 군자가 등장할까. 삼효에서 말하는 ‘종일건건’의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면 왜 자꾸만 ‘전전긍긍’이 겹쳐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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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문제의 삼효를 중심으로 보면, 우선 초구는 물속에 잠긴 용[潛龍]이다. 능력을 갖추었지만 아직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구이는 때에 맞춰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용[見龍]으로, 기질이 강건하면서 중(中)을 얻어 만사를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덕성을 갖췄다. 자신 있게 날아오를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날아오르기는 뭣하니 한 번 시험 삼아 뛰어올라보는[躍龍] 게 구사다. 그런 다음 구오에서 드디어 하늘로 날아오른다[飛龍]. 이 정도면 변화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삼효를 빼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굳이 삼효를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용이 아니라 군자를 내세워서.

삼효는 하괘에서는 가장 윗자리이며, 상괘로 들어가기 직전에 자리하고 있다. 용으로 보자면 물에서 땅으로 올라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어지간히 덕을 갖췄으나 아직 비룡의 자유자재함을 맘껏 드러낼 수는 없는 상태다. 땅에서 움직이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질적인 도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 없이 날아오르려 해 봤자, 날 수도 없고 어설프게 난다고 해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나댄다는 비난만 받게 될 것이다. 이미 세상에 그 존재를 알린 상태니 다시 잠룡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 할 일은 철저하고 구체적인 수련을 통해 존재의 변이를 꾀하는 것이다. 용이라는 상징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가인 ‘군자’를 내세웠을 것이고, 구체적인 수련 내용이 바로 “종일 굳건하게 힘쓰고[君子終日乾乾], 저녁이 되면 다시 두려워하는 듯하면서[夕惕若], 위태롭게 생각하여 허물이 없도록 하는 것[厲, 无咎]”이다. 소동파가 구삼의 자리를 “화복이 엇갈리는 위치이며, 성패가 결정되는 곳”이고, 잠룡이나 현룡, 약룡, 비룡이 모두 이 삼효의 건건함에 깊이 의존하다고 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다음으로 ‘종일건건’을 보면 자꾸만 ‘전전긍긍’으로 읽히는 이유는 뭘까?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다. ‘종일토록 힘쓴다’고 하면 곧바로 돈을 더 벌기 위해,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그날그날 일어나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수습하느라, 몸도 마음도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우리들의 모습이 곧바로 떠오른다. 또 ‘저녁이 되어서도 두려워하는 듯해야’ 하고 ‘위태롭게 생각해야 허물이 없다’고 하면, 행여나 손해를 볼세라, 사고를 당할세라, 범죄의 대상이 될세라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걱정하는 하루하루가 연상된다. 늘 듣고 보는 정보, 관심사가 이런 것들이다 보니, ‘힘쓴다’,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생각한다’고 하면 현대인들의 뇌에는 하늘의 건건함 ‘따위’를 떠올릴 회로 자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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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우주만물이다. 단 하루도 같은 모습을 하지 않는 변화무상한 모습이지만 늘 거기에 그대로 존재하는 하늘. 하루도 쉬지 않고 규칙적으로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태양. 해가 허둥지둥 떠오르거나 지는 걸 본 적도 없고, 목표를 이루려고 애를 쓰지도 않는다. 그냥 때에 맞게 그냥 움직일 뿐이다. 하늘에 생채기가 남아 있는 걸 본 적도 없다.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우리는? 기껏해야 나와 내 가족을 챙기는 일에 온 힘을 쏟는데 늘 할 일이 많다. 낭패를 당할까 수시로 점검한다. 조그마한 변수만 생겨도 타격이 크다. 그걸 수습하느라 또 정신이 없다. 요컨대 한쪽은 늘 쉼 없이 움직이는데도 바쁘지가 않다. 다른 한쪽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실제로도 무지 바빠 보인다. 그런데 전자는 의도하지 않아도 세상 만물을 키워내고, 후자는 뭔가를 이루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자기 하나 키우기도 힘들다. 갑자기 부끄러워지면서 이런 좀생이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데, 문득 『장자』 「외물」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말은 쓸모가 없소.” 장자는 대답했다. “쓸모가 없음을 알고 나서 비로소 쓸모 있는 것을 말할 수 있소. 저 땅은 턱없이 넓고 크지만 사람이 이용하여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발이 닿는 지면뿐이오. 그렇다고 발이 닿은 부분만 재어놓고, 그 둘레를 파내려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사람들에게 그래도 쓸모가 있겠소?” 혜자가 “쓸모가 없소”하고 대답하자 장자는 말했다. “그러니까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음이 분명하지 않소.”

(안동림 역주, 2013, 현암사, 663)

우리가 종일토록 애쓰고 밤이 되어도 마음을 놓지 않는데도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당장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발이 닿는 지면”만 갈고 닦을 뿐, 그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땅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기에 걷는 길이 늘 위태위태했던 것.

중천건의 삼효는 우리에게 말한다. 건은 역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변화무쌍한 역의 세계에서 건의 굳건함이 자유자재할 수 있으려면 든든하게 받쳐주는 토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좁아터진 마음과 신체로는 “턱없이 넓고 큰” 토대 확보가 불가하다. 그러니 인식의 회로도 신체 습관도 바꿔야 한다. ‘전전긍긍’에서 ‘종일건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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