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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족의 탄생] 출산, 내 안의 자연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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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2-01 10:36 조회1,4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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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내 안의 자연과 만나다


이소민(감이당)

출산의 시작, 양수가 터지다

2018년 8월 4일 토요일. 출산 예정일을 이틀 남기고 양수가 터졌다. 아침에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말했다. “아기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네요.” 그렇다고 해도 병원을 나오자마자 이렇게나 빨리 출산 신호가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뭐 딱히 아이와 조금 더 늦게 만난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내게 며칠이라는 시간이 더 있다고 해서 철저하게 준비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때 문득, 얼마 전 읽은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건강한 산모의 몸은 어떻게 출산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긴장하는 대신 내 몸의 본능을 믿기로 했다.

소위 ‘자연주의 출산’을 하면 담당 의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출산할 때 담당 의사가 아이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신부는 전담으로 마크해주는 조산사와 한 팀을 이룬다. 조산사는 임신 중기부터 운동은 잘 하고 있는지, 식단 조절은 어떻게 되어 가는지 확인한다. 나는 막달에 병원을 옮겼지만, 꾸준히 요가도 하고 있었고, 이미 조산원에서 출산 과정 등에 관한 교육을 받았던 지라 훨씬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흔히 양수가 터지면 48시간 이내에 아이가 나와야 한단다. 아기와 엄마가 세균에 감염될 위험도 있고 또 양수가 줄어들면 아기 또한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진통이 오지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48시간 이내에 아기가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유도분만에 제왕절개까지 해야 할 수도 있는 건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며칠 전부터 조산사님과 연락 중이었는데, 양수가 터진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조산사님은 혹시 이따가 아기를 낳아야할지도 모르니 밥 든든하게 챙겨먹고 병원에 한번 오라고 하셨다.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한 8시쯤 병원으로 향했다. 배 위에 이상한 기계를 달고 태동검사를 했다. 조산사님은 말했다.

조산사님은 혹시 이따가 아기를 낳아야할지도 모르니 밥 든든하게 챙겨먹고 병원에 한번 오라고 하셨다.

  “지금보다 강한 수축이 더 자주 있어야 해요당장은 여기에서 해줄 것이 없어요집에서 편하게 있다가 수축이 심해지면 밤 12시에 다시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지금 입원하게 되면 병원비가 하룻밤 추가되어 13만원이 더 나와요어떻게 하시겠어요?”

우리는 당연히 13만원을 아끼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진통은 다행히 집에 오자마자 더 강하게 시작되었다.

진통! 마치 한 마리 짐승처럼

하필이면 남편은 진통이 심해지는 사이 밖에 있었다. 내가 복숭아와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해서 편의점에 간 것이다. 남편이 나가있는 20분이 2시간처럼 느껴졌다. 진통은 정말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지나갔다. 나는 진통이 오면 남편을 붙잡으며 외쳤다. “쓰읍, 온다~ 온다!” 한 TV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정주리는 말했다. 진통을 겪을 때 마치 배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고. 뭐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내게 일어나는 중이라는 건 확실했다. 내 마음대로 멈출 수도 조절할 수도 없는 일이 말이다!

신기한 건, 2분정도 진통이 몰아쳤다가 8분 동안은 아무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휴식이 있다는 게 어디인가. 잠깐의 쉬는 시간에 간식을 먹었다. 남편은 허리가 아파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허리에 대주었다. 진통을 하며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 그리고 누구보다 편안한 사람인 남편과 시간을 보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마치 방처럼 꾸며져 있어 침대도 있고, 짐볼도 있고, 수중분만을 할 수도 있는 ‘자연주의 출산실’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출산도 집에서 준비하는 것만큼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통 간격이 짧아지자 나는 방 한 구석,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 내 가슴까지 오는 서랍장에 기대어 버텼다. 이상하게도 그곳이 편안했다. 나는 내가 마치 지리산 동굴에 홀로 들어가 새끼를 낳는 곰이 된 것 같았다. 출산이 임박할수록 10분 간격이던 진통 간격은 2분 정도로 떨어졌다. 주변에 남편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통은 오로지 나 혼자 버텨야했다. 거센 진통이 오면 남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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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산과의사』의 저자 미셸 오당은 진통을 겪는 임신부는 ‘다른 세계’에 들어간다고 한다.(미셸 오당, 『농부와 산과의사』,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96쪽) 그가 말하는 다른 세계란 신피질의 활동이 줄어드는 때를 뜻한다. 신피질은 대뇌 중에서도 고도의 정신작용을 하는 부분이다. ‘언어, 특히 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할 때 자극된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는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켜 ‘다른 세계’로 들어가 아이를 낳는다.

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경험은 신선했다. 이제껏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인 판단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계속 무언가를 판단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진통이 시작되면, 모든 걸 정말 모든 걸 잊는다. 그렇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은 뱃속의 아이를 저절로 낳게 만들었다. 이 경험은 어떤 자유로움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남편이 딱히 하는 일은 없었지만, 옆에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임신 중에 조산원에서 교육을 들을 때였다. 조산사님은 아내가 진통할 때 남편이 할 일은 “목석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남편이 중간에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거나 아니면 “병원에 어떤 걸 가져가면 좋을지” 등등을 묻게 되면 지금 출산에 집중해야하는 임신부에게 방해되기 때문이다. 즉, 앞서 말한 신피질을 자극해서 ‘다른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남편은 배운 대로 내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고, 복숭아를 깎고 허리 찜질을 해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12시가 되어 병원에 갔다. 조산사님 왈, “어떻게 집에서 참았어요? 벌써 7cm나 열렸어요. 바로 분만준비를 해야겠는데?”라고 하셨다. 보통 자궁 문이 10cm 정도 열렸을 때 출산할 수 있다. 배가 아파 똥을 눌 때 어떻게 누어야 할지 알듯이 아기를 낳을 때도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힘이 들어갔다. 감이당의 한 선생님께서 말해주신 것처럼, 정말 마치 큰 똥을 누듯이 말이다! 오히려 조산사님께서는 내게 힘을 많이 안 주어도 아기가 나올 수 있으니, 너무 힘주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힘을 빼는 것도 쉽게 되지 않았다. 진통이 거세지자 나는 호흡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진통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않으면, 뱃속의 아이 또한 산소가 부족할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호흡해보려 했다. 남편은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아기 탄생 5분 전. 힘을 주면 아이의 머리가 보였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했다(고 한다). 진통이 오면 두 번 힘주고, 마지막 한번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말했다.

한 번만 더 힘주면 나올 것 같아!”

나는 이미 온몸에 힘을 주어 팔 다리의 기운이 전부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정말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생명의 정기(精氣)가 다 빠져나간 듯했다. 물을 마시고 진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주었다. 뭔가 꽉 끼는 듯한 느낌, 흔히 말하는 똥꼬에 수박 낀 느낌이 들면서 아기가 나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기의 머리가 나오자 나머지는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딱히 힘을 주지 않았는데, 꿀렁꿀렁하면서 아이의 몸이 미끄러져 나왔다. 진통은 아이가 나오자마자 사라졌고, 불룩하던 배는 순식간에 꺼져 있었다. 새벽 1시 37분. 따끈한 3.1kg 아기는 어느새 내 몸 위에 얹어져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환상

아이를 낳은 후 남편과 나는 우리끼리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에 도취되어 있었다. 마치 전쟁이나 경기에서 승리한 병사처럼, 서로에게 전우애(?)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다고 바로 엄마가 되고 모성애가 생기는 건 아니었나보다. 출산을 하자마자 심한 훗배앓이(아기를 낳은 후 자궁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 때문에 아기가 눈앞에 있어도 내 통증에 더 신경이 쓰였다. 오히려 옆에 있는 남편이 아이를 보고 계속해서 “귀엽다”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몸을 이완시켜주는 노래를 들으며 짐볼을 타고, 욕조에도 들어갔다 나오고 진통하면서 여러 가지 자세를 해보고 싶은 환상이 있었다. 기회가 되면 수중분만까지도 욕심이 났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난 이미 집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고 병원에 도착해 아이만 낳은 것이다. 이미 너무도 자연스러운 출산 과정이었다. 이제껏 ‘자연주의 출산실’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자연 출산이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나 이상했다.

사실 아기를 낳는 과정 자체가 나 또한 하나의 자연임을 알게 된 경험이 아니었을까. 출산할 ‘때’가 되니 그에 맞춰 양수가 터지고 이어서 진통하고 아이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 내가 따로 개입하지 않아도 술술 진행되었고, 또 의도적으로 멈출 수 있는 일 또한 없었다. 어딘가에서 오는지 모르는 엄청난 힘(!), 즉 내 안의 자연이 그저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진행시켰을 뿐이다.

임신하고 출산하기까지의 10개월은 자연이란 어떤 것이었는지 약간은 알 것 같았던 시간이었다. 뱃속의 작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절로 양생(養生)적으로 지내게 되었고, 분만 직전 한 마리 짐승이 되었을 때는 자유로움마저 느꼈다.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상적 행위야말로 자연과 구체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방법”(안도균,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작은길, 290쪽)이라고 한다. 출산하면서 체험했던 것처럼, 아이를 키우면서도 잊고 있었던 생명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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