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비 괘로 이 상황을 한번 설명해보자. 천지비 괘는 ‘정체와 단절’을 상징하는 괘이다. 삶이 갑자기 꽉 막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헤쳐나갈 지혜를 찾아보기에 좋은 괘이다. 천지비 괘는 ‘소통과 안정’을 상징하는 지천태 괘 바로 다음의 괘이다. 천지가 교류하여 ‘소통과 안정’이 이루어진 후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우리가 경험한 인생도 그렇지 않고 주역의 괘 역시 그렇지 않다. ‘승승장구’하는 삶은 곧 ‘정체와 단절’의 상황을 직면한다. ‘소통과 안정’을 상징하는 지천태 괘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상이고, ‘정체와 단절’을 상징하는 천지비 괘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는 상이다. 이처럼 괘 상(象)의 배치에서부터 우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고 안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주역이 가르치는 삶의 이치와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역이 가르치는 삶의 이치는 하늘과 땅이 원래의 위치와 어긋나 있기에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양과 음’, ‘강과 유’, ‘높음과 낮음’, ‘귀함과 천함’ 등이 언제나 소통하려 한다는 것이다. 어긋남이 소통의 조건이고, 이러한 소통으로 인해 천지우주는 늘 생성하고 변화하며, 우리는 그 변화와 생성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웠던 삶의 좋은 조건은 이러한 소통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좀 더 강한’, ‘좀 더 높은’, ‘좀 더 귀한’ 자리를 차지하여 ‘유하고, 낮고, 천한 것들’과는 벽을 쌓고 멀리 떨어지는 것. 이것을 우리는 좋은 삶을 위한 조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역을 배우다 보면 이러한 관점은 너무나 협소한 잘못된 관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면 주역에서는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장애물들을 우리 삶을 해치는 것으로만 여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