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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 선물강좌] 도반이란 무엇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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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2-24 12:46 조회1,6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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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이란 무엇인가 (2)



정화스님 10월 선물강좌 중

원하는 것이 많으면 번뇌의 숫자가 많아진다

자 그래서 이제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는 반려자들한테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잘 살펴야 됩니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원이 많으면 번뇌의 숫자도 많아집니다. 원하는 것이 많으면.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저한테는 ‘강의나 좀 마음에 들게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것 외에는 거의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를 보고는 마음이 번거로울 일이 별로 없어요. 두 번째는 별로 내 마음에 안 들면 다음에 안 보면 돼요. 구태여 봐야 할 필요가 없어요. 저한테 거의 원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저를 보고는 번뇌가 발생하지 않는 거예요. 자 그런데 이제 자기한테도 자기를 나처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나는 이러이러한 존재이고 싶다 라고 하는 것 속에는 이러이러한 존재로 다른 사람한테 비춰지고 싶다고 원을 해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어떤 식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해서 별 질문이 나올 일이 없어요. 나는 누구한테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가 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그 사람한테 비춰진다, 바꿔 말하면 실제 이것은 거울을 보는 것에서 파생됐습니다. 바꿔 말하면 내가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니까 거울에 비친 나를 나로 파악하게 되는 거예요. 그 거울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들이에요.

사실 저는 여러분들이 저 중이 굉장히 중이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시선이 그렇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거예요. 그 다음에 저는 뭐 SNS나 그런 걸 전혀 안 하니까 댓글을 볼 일도 별로 없고, 누가 뭔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없는 거하고 똑같아요. 혹시 누가 써놓았을지는 몰라도 없는 거하고 똑같아요. 저에 대해서 뭐 올라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의도적으로 안 보기도 하고 볼 수 있는 컴퓨터도 없고, 그래서 안 봅니다. 그래서 거기에 내가 어떤 존재로 비춰지기를 원하는 거울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굉장히 편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보니까 나 살고 싶은 대로 산다 라는 건 아니지만은.

그런데 우리는 자기를 볼 때 거울을 보는 횟수만큼 반대로 번뇌의 횟수를 만들어가는 거하고 똑같아요. 그냥 거울을 보는 것이 거울을 보는 게 아니고 거울에 비춰진 자기가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거울에 비친 자기하고 그것을 보고 있는 자기가 온전히 일치된 삶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라고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져요. 더군다나 거기다가 ‘이렇게 하면 좋죠’하고 화장품을 만들어주고, 더 나아가면 ‘아예 뼈를 깎으세요’라고 말하면서 ‘거울에 비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당신의 존재 가치를 높여주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라고 계속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건 거의 헛소리예요. 그래서 자기 자신한테 어떤 원을 가지고 있나를 잘 봐서 원을 내려놓는 것만큼 자기 자신이 편해져요.

가족, 자주 보는 타인

두 번째, 가족, 마찬가지입니다. 거울을 본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는데 이제 드디어 자기가 타인을 보는 것이죠. 자기도 그렇게 온전히 다 마음에 안 드는 게 불쑥 많은데 다른 분들을 봤을 때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그 분이 어떻게 마음에 들겠습니까. 안 드는 부분이 많아요. 그 분하고 같이 안 살면 별 문제가 안 되는데, 같이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 제가 가족에 대해서 한 시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가족을 한 말로 정의를 좀 해주세요 했을 때 그 말을 했어요. 자주 보는 타인이다. 가족을 타인처럼 보는 훈련을 하면 번뇌가 줄어들어요. 가족을 자기의 목숨처럼 알면 번뇌가 많아져요. 언뜻 보면 부모가 자식을 볼 때 자식이 내 목숨보다 귀하다고 해야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밤에 이렇게 돌아다니시는 분들 계시죠. 잠결에. 몽유병에 걸리신 분들. 그 분들 의식 가운데 부모의 뜻을 너무 잘 따르려고 해서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의 억압 강도가 높은 것이 몽유병의 원인 중에 하나라고 제가 30년 전에 어떤 텔레비를 보니까 나오더군요. 너무나 착실한 자식이에요, 부모가 봤을 때는. 마음에 엄청 들어요. 그런데 자식은 지금 어떱니까? 억압된 자아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어떤 원함을 가질 것인가를 아주 최소한으로 해놓고 그 나머지 것들은 전부 다 버려가야 해요. 그래야 가족으로서 인생길을 손잡고 갈 수가 있어요. 그 버려진 양이 적지 않으면 왜 같이 사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요. 주로 괴로운 일들은 저처럼 멀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지 않습니다. 전부 다 자신 스스로의 심리 상태나 가까운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다 발생해요. ‘도’가 거창한 것이지는 않아도 옆 사람하고 같이 손을 어떻게 잡을까를 잘 정해놓지 않으면 그 사람 인생이 괴로워요. 그래서 밖에 보면 굉장히 존중받고 그 사람 같이 살았으면 원할 것이 없을 것 같다 하는 사람도 집에만 들어가면 별로 가고 싶지 않을 때가 많을 거예요.

그렇다면 친구는 말할 것도 없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악법 중에 하나가, 전 세계에는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보증 서주는 법이에요, 보증 서주는 법. 가족도 해체시키고 친구도 떠나고 모든 것을 망가뜨리게 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보증법이에요. 보증 서주는 것으로 친구를 증명하게 하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실제 친구가 되려면 자기가 친구한테 보증을 서주려 하는 상태가 되어서도 보증 서준다는 말을 죽어도 안하는 것이 친구에 가까운 거예요. 보증 서주라고 말하는 것은 그 순간부터 상대한테 괴로움의 사건들을 떠넘기는 거예요. 계속해서. 근데 우리나라는 법으로써 사실상 은행들이 돈을 빌려줄 때 갚을지 안 갚을지 신용도를 자기가 해가지고 자기가 빌려줄 때 결정을 해야 해요. 그런데 국가에서 보증 다섯 명 세워놓고 ‘야 네가 봐도 돼.’ 라고 하는 법을 만들어준 거예요. 누구를 위해서? 은행을 위해서예요. 은행을 거래한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준 게 아니고.

설정값을 바꾸는 훈련, 정사유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손을 잡고 갈 수 있을 때 첫 번째, 자기와 가족과 친구들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할 때 원하는 것이 별로 없어야 해요. 아까 보증 이야기 잠깐 했습니다만 친구가 보증을 서달라고 말하면 그 친구랑 친구 안 하기를 원하면 돼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 사람이 하고 있잖아요. 보증을 서주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친구가 굉장한 괴로움 속으로 들어갈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잖아요. 근데 이것은 해도 괜찮은 일인 것 같고 거기에 돈 5천만 원을 안 주면 나는 엄청나게 잘못한 것처럼 착각을 하는 거예요. 이것은 전도된 생각이라고 그러는데, 너무나 착한 사람이 정말 안 해줘도 괜찮은 것을 안 해줘가지고 마음이 막 아픈 거예요. 이런 일들이 많은 거예요. 물론 잘 하는 사람도 계시겠죠.

그래서 도를 볼 때 첫 번째, 내가 어떻게 세상과 나를 보는 것인가 라는 것을 잘 살펴서 이것에 전환이 발생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괴로워요. 괴롭습니다.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가족을 어떻게 볼 것인가. 친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설정을 해야 돼요. 초기 값을 잘 설정해야하는데 어렸을 때는 이 값이 자기가 생각한 대로 설정할 수가 없어요. 환경이나 등등에 의해서 그렇게 설정이 돼버려요.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서 생각을 깊이 해가지고 저 설정값을 계속해서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해요. 이 바꾸는 훈련은 머릿속에서 발명되는 거예요.

정사유는 바로 그런 일을 끊임없이 해야 됩니다. 내가 입으로 뭔 말을 하려고 하다가 이 말이 나와 같이 손을 잡고 인생길을 걸어가는, 도반이라는 말이 인생길의 반려자라는 말이에요.

걸어가는데 괴롭게 걸어갈 것인가, 괴롭지 않게 걸어갈 것인가를 빨리 알아차려가지고 괴로운 일이 발생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빨리 생각 회로를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게 사유예요, 사유. 우리 그냥 생각하면 ‘야 너는 의리 있어.’ 근데 잘 살펴보면 그건 의리 있는 일이 아니고 바보 같은 일을 하면서 의리 있는 사람처럼 착각을 하는 게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한테 이미 익혀진 행동양상이 어떻게 가는지, 바보처럼 가는지 그걸 불교용어로 무지라고 합니다. 아니면 번뇌가 안 생기는 쪽으로 가는지를 빨리 살피는 생각의 훈련을 자주 해야 됩니다,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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