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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족의 탄생]‘엄마 모드’ 적응기 1 – 우울감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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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2-26 17:13 조회1,8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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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모드’ 적응기 1 – 우울감과 만나다


이소민(감이당)

이게 바로 조리원 천국?

출산한 지 3시간 정도 지났을까. 아기는 신생아실로 보내졌다. 열 달 동안 내 몸 안에서 함께 지내던 아기가 방을 빼자 살 것 같았다. 치골을 누르는 아픔도 사라졌고, 잘 때도 이리저리 뒹굴뒹굴할 수 있었다. 산부인과에서의 생활은 너무도 편안했다. 고단백 영양식으로 매끼 나오는 밥을 먹고, 시간이 되면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중간중간 신생아실에서 ‘수유 콜’이 오면 잠시 아기에게 젖을 주고 올 뿐이었다. 심했던 훗배앓이(출산 후 자궁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때 생기는 통증)도 잠시뿐이었고, 후유증이라고는 아기가 나오면서 찢어진 약간의 회음부 통증이랄까? 그렇게 2박 3일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퇴원할 짐을 정신없이 챙기다 보니, 그제야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도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산모의 4명 중 3명은 산후조리원을 이용한다고 한다.(2018년 보건복지부 산후조리 실태조사)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처음 조리원에 갔는데 학교의 시간표처럼 A4용지에 하루 일정이 쭉 적혀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선배 엄마들 사이에서는 조리원에 있을 때가 천국이라고 말했다. 가보니 정말 그랬다. 아기는 신생아실에서 따로 돌봐주시고, 밥도 방까지 가져다주시고, 중간중간 끼어 있는 마사지 타임까지! 오전, 오후에는 산모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모빌 만들기, 베이비 마사지, 산후 요가 등등 아기와 친해지는 방법을 배우며 다른 엄마들과 수다를 떨었다. 삼시 세끼 미역국이 나오는 것만 빼면 조리원 생활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조리원에서 지내는 동안, 먹고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출산 후 지친 몸을 회복하느라 바빴다. 아기를 낳으며 온몸의 기와 혈을 전부 써버려 몸의 형태는 그대로이지만, 몸 안을 새로 채워야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한 책에 따르면 산모의 자궁에는 기운이 0.1g도 남아 있지 않아,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방전된 상태와 같다고 한다.(『자연주의 산후조리』, 김성준, 권나영, 김진경 저, 시공사) 또 산모는 출산 시 골반을 잘 벌어지게 만드는 ‘릴렉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뼈 마디마디가 약해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일까? 손가락과 손목의 뼈 마디마디가 저릿저릿했다. 몸이 임신하기 전 상태로 서서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가벼운 운동을 하고, 오로(자궁 안의 노폐물)가 잘 배출되는지 살폈다. 산후에 조심하지 않으면 산후풍이 생기거나 다른 후유증에 평생을 시달린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35도를 오가는 더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고 거의 삼칠일, 21일을 꽉 채운 후 샤워를 했다.

산부인과와 조리원에 있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낳느라 고생했다며, 축하금을 챙겨주시거나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선물해주셨다. 여기저기에서 선물을 받으며 ‘내가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거라곤 단지, 아이를 낳은 것뿐인데 많은 사람들은 마음을 다해 축복해 주셨다. 마치 내가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말이다. 2주간, 조리원에서의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나갈 때가 되자, 이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가 이 작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 앞으로의 생활이 기대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모유 수유 전쟁! 젖소가 된 일상

그렇다고 조리원에서의 생활이 마냥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다. 갓 태어난 조그만 생명체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씻기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모유 수유였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마치 예전에도 해본 것처럼 힘차게 젖을 빨았다. 그 후로 아기는 수시로 배고파했다. 분명, 수유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신생아실 선생님은 자꾸만 아기를 내게 데리고 오셨다.

아기가 쩝쩝거리면서 배고파해요~”

분명 책에는 3시간마다 수유하라고 나와 있었는데… 그러다 책 귀퉁이에 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아기가 배고파하면 수시로 젖을 물려야 한다”는 것. 모유 수유하는 것이 처음이라, 준비하는 것부터 오래 걸렸다. 한 번 수유하려면 아기를 받치는 수유 쿠션과 가제 손수건, 작은 베개 등이 필요하다. 조리원 원장님은 매일 들어오셔서 수유 자세를 확인하고 교정해주셨다. 자세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기도 잘 먹지 못하고, 가슴에 상처가 날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혹독하게 가르치셨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아기는 젖을 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든다. 나는 필사적으로 아기의 어깨를 꼭꼭 누르고 발가락을 꼬집으면서 아기를 깨운다. 한 번에 오래 먹여야 아기가 자는 시간(나의 휴식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젖을 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든(척 하는) 아기

밥을 몇 끼 먹고 수유를 여러 번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정말 산후에는 수유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젖을 먹이는 시간 외에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곧 모유를 생성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출산 후 자신이 마치 젖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젖소가 되어 수유하는 것이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내 몸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이 신기했다. 정확히 아기에게 젖을 먹일 시간이 되면 유방에서 젖이 만들어졌다. 조금이라도 젖먹일 시간을 넘기면 사출(젖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되거나, 유방이 아팠다. 출산하니 알아서 모유가 나오고 또 이 젖으로 작은 생명체를 기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또 젖을 먹고 있는 아이는 귀여움 그 이상이다. 수유하는 게 힘들면서도, 그 순간만은 이대로 지속되기를 바랐다. 아마도 수유할 때 분비되는 행복의 호르몬, 옥시토신의 효과인 듯하다. 나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몸의 상태를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아기는 예쁜데… 왜 우울하지?

조리원에서 의젓하다고 소문난 아기는 집에 오자마자 돌변했다. 집에 온 지 4일 정도 지났을까. 수유해도 기저귀를 갈아 주어도 잠을 자지 않았다. 아기는 계속 울었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인지 찾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밤에 잠을 푹 잘 수 없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아직 아기에게는 밤낮이란 없었다. 모든 건 아기의 패턴에 맞춰야 했다. 언제라도 아기가 칭얼거리면 수유를 했다. 앞서 말했듯, 매번 수유 자세를 취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 수유하면, 곧 똥을 싸기 일쑤. 그 당시에는 이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아 두려웠다. 푹 잘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지, 육아에는 끝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제 나에겐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이란 ‘요일’ 개념이 사라졌다. 단지, 아기가 태어난 지 며칠이나 되었는지를 세어볼 뿐! 초보 엄마, 아빠는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그저 아기가 얼른 자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신생아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자고, 일어나면 먹고, 싸고 끝이다. 아무 생각 없이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재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육아는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절대 매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의 패턴은 늘 들쑥날쑥하며, 예상치 못한 일(장염으로 하루에 똥을 7번 정도 싼다든지, 보통 3시간을 간격으로 수유하는데 계속 배고파한다든지… 등)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생긴다. 신생아 육아는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잠을 자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포기해야 할 때가 많았다. 책을 읽고, TV를 보는 것과 같이 잠깐의 여유 시간은 사치였다. 마치 당직을 서는 대학병원의 긴장한 인턴처럼, 나는 아기가 자는 틈을 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쪽잠을 잤다.

마치 당직을 서는 대학병원의 긴장한 인턴처럼, 나는 아기가 자는 틈을 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쪽잠을 잤다.

육아하면서 유독 힘든 날이 있다. 아기가 태어난 지 160일쯤 되던 날도 그랬다. 남편이 늦게 오기도 했고, 요 며칠 미세먼지 수치가 너무 좋지 않아 밖에 나가질 못했다. 낮 동안, 아기와 단둘이 4일 내내 집에만 있었다. 다행히 퇴근한 남편이 아기를 잠시 봐주어, 나는 나흘 만에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왔는데도 아기는 자지 않았다. 보통 아기가 잠이 들 것이라 예상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훨씬 넘겨 11시가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놀아달란다. 곧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매번 젖을 물려 재우면 안 된다”는 육아서적의 말대로 수유를 하지 않고 버텼다. 아기는 아기대로 지치고, 옆에 있던 우리도 지쳐 결국 젖을 먹이고 말았다. 아기는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다 잠이 들었다. 잠든 아기 옆에 누웠는데,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말했다.

도망가고 싶어

다음 날, 짐을 싸 들고 친정으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기차역에서 엄마를 만나자마자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친정에 가니 엄마가 밥을 해주시고, 아기를 잠깐이라도 봐주셨다. 모든 것을 혼자 안 해도 되니 훨씬 여유로웠다. 무엇보다 이야기할 상대가 있다는 것! 나는 그제야 숨통이 좀 트였다. 그날의 일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대화가 그리웠고, 찬바람이 그리웠고, 엄마 밥이 그리웠다.”

그렇다. 핵가족화가 되고 마을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아빠는 일하러 가고 집에는 오직 아기와 엄마, 단둘만 남겨지게 되었다. 나는 이 상황이 참 힘들게 느껴졌다. 나 또한 엄마가 처음인지라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며 서서히 엄마 모드에 적응해가는 중이었다. 여전히 출산하기 전의 생각과 습관이 남아 있었다. 또 아기를 키우면서 궁금한 점이 있어도 물어볼 곳은 스마트폰뿐이었다. 집에 온종일 있으니 답답했고, 힘든 일상을 이야기할 사람은 없고, 그 와중에 내 밥도 챙겨 먹어야 하고… 어느 순간 여러 감정이 쌓여, 곧 눈물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3박 4일 동안의 친정 힐링 캠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정도 지났을까? 남편과 함께 주말을 보낸 뒤, 다시 아기와 둘만 있게 되자 우울한 감정이 또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친정에 갈 수는 없는 노릇.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분명 아기를 키우며 얻는 행복함이 있다. 아기의 웃음, 냄새, 존재 자체가 귀엽고 예쁘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불쑥 우울함이 찾아올 때마다 무기력해진다. 이게 말로만 듣던 산후 우울증이라는 건가?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이 우울감에 나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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