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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클래식]너무 일찍 늙어버린 우리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3-15 15:30
조회 : 340  







너무 일찍 늙어버린 우리



[청년 니체] 청년과 에로스 - 4)

근영(남산강학원)

근대, 노쇠한 문명

  우리에겐 올라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더디지만 쉬지 않고 올라가야 돼. 시야를 가로막는 방해물 없이 우리의 노쇠한 문명을 환히 볼 수 있도록 말이야.

(크렐, 베이츠, 『좋은 유럽인 니체』, 박우정 역, 글항아리, 190쪽 재인용)

1875년 여름, 요양을 위해 여행을 떠난 니체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반시대적 고찰』의 네 번째 글을 준비 중이던 니체는 이 편지에서 향후 자신의 공부 방향을 밝힌다. 그것은 한 마디로 “노쇠한 문명”에 대한 고찰이었다.

노쇠한 문명이라니? 니체가 마주한 것은 이제 막 태어나고 있는 새로운 시대다. 지난한 중세의 어둠이 물러나고 비로소 자유의 빛이 비치기 시작한 시대, 산업혁명과 과학이 추동하는 경제적 풍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대. 부푼 기대와 희망을 말해도 시원치 않은 이 시대를 니체는 지금 노쇠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뭐 때문에?

그렇다. 근대는 태생적으로 노쇠한 문명이다. 사람들을 늙고 병들게 하는 문명, 생명력을 갉아먹는 문명! 근대인들의 생명력은 바닥이다. 자기 존재를, 자기 삶을 낳을 힘이 없다. 자기 창조의 힘은 소진되었고, 힘에의 의지는 병들었다. 요컨대, 약자의 삶이라는 거대한 유령이 시대를 배회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어느 때보다 기운차게 살고 있다고 믿는다. 왜? 어떻게? 근대가 만드는 분주함과 화려함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명력은 가짜다. 사이비(似而非).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근대의 속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낳는 것? 그것은 노동이고 돈이다! 우리의 분주함? 우리의 화려함? 그것은 노동의 분주함이고 돈의 화려함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자기 존재의 탁월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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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경제적 번영은 자본주의의 결과다. ‘자본’은 단순한 돈이 아니다. 우리 집 금고에 수천억 원의 돈을 쟁여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본은 아닌 것이다. 자본이 되려면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그 돈이 돈을 낳아야 한다! 단 몇 십 원이라도 돈이 불어나야 자본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자본이란 돈을 낳는 돈이다. 그런데 어떻게 생명이 없는 돈이 자기 새끼를 낳을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보라. 책상이 스스로 책상을 낳는다면?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헌데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근대가 해냈다. 마법일까?

근대가 부리는 마법을 알려면 바이러스를 봐야한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생명체가 아니다. 즉, 생식력이 없다. 해서 바이러스가 번식을 하려면 다른 생명체가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세포로 침투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세포의 생식력을 훔쳐서 자기 새끼를 낳는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바이러스는 쓸모가 없어진 세포를 파괴하며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생명체를 숙주 삼아 자기를 번식한다.

바로 여기에 돈이 돈을 낳는 메커니즘이 있다. 자본에게는 숙주가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숙주! 자본은 인간의 생식력을 훔쳐서 자기 새끼를 낳는다. 근대는 이렇게 돈을 낳는 인간의 생식력에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삶의 중심 가치로 만들었다. 이제 근대인들은 열심히 노동한다. 그것이 삶을 가치롭게 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허나 그곳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은 하나다. 돈이 돈을 낳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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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인들은 자신을 위해 자신의 생명력을 쓰지 않는다. 그들의 생식력은 자본의 것이고, 그들은 자본 앞에서만 자신의 생식력을 발휘하려 든다. 해서 돈을 낳을 수 없다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며, 돈 앞에서야 왠지 모를 활기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활기는 자신의 생명력을 죽이는 살기(殺氣). 근대인들은, 우리는, 그렇게 생명력을 소진해 간다. 노쇠해 간다.

노쇠한 자의 미덕, 영리함과 보수성

우리에게 마치 활기인 것처럼 다가오는 근대의 분주함과 화려함. 이 때문에 근대 문명은 노쇠함과는 영 거리가 멀어 보인다. 허나 그것은 사이비 활기이며, 오히려 전형적인 노쇠함의 특징이다. 근대는 자신의 노쇠한 힘을 가리기 위해 그런 들썩거림을, 흥청거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명을 소진시키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근대가 불러일으키는 악의적인 오해.

그러니 노쇠하다는 말에 비실비실 대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근대의 노쇠함은 자기 나름의 운동 법칙을 가지고 있다. 어디서 움직이고, 어디서 가만히 있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자신만의 공식이 있는 것이다. 근대의 삶의 길은 이 공식을 따라 그려진다. 돈이라는 것이 유일한 변수로 작용하는 이 함수를 따라서.

근대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 함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게 되는 것이다. 가성비를 따지고, 이해득실을 계산하기. 요컨대, 영리해지기. 그는 참으로 약빠르다. 돈을 낳는 일에서만큼은 펄펄 날아다닌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가령 자기 존재를 고귀하게 만드는 일 앞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아마 그는 영리해지지만 결코 지혜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는 말귀를 빨리 알아듣고 계산하고 사실적인 것과 타협하며, 흥분하지 않고 눈짓을 보내고 자신이나 자기편의 이익을 남의 이익과 불이익 속에서 찾을 방법을 안다. 그는 쓸데없는 수치심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점진적으로 …… “장년”과 “노인”이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이진우 역, 책세상, 376쪽)

노쇠한 자는 돈을 뺀 나머지 것들 모두를 고정된 상수(常數)로 만들려 한다. 삶에 새로운 변수가 더해지는 것은 그를 번거롭게 한다. 그는 삶의 새로운 양식을 배울 마음도, 그것을 창조해 나갈 마음도 없다. 그런 것들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해서 노쇠한 자는 말하곤 한다. 그런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은 사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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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그에게는 그런 변화를 감당할 힘도, 만들어나갈 힘도 없을 뿐이다. 그는 익숙한 그 삶 말고는 다르게 살 수가 없다. 하여 변화가 두렵다. 변화라면 질색팔색한다. 그는 원한다. 모든 것이 있어왔던 그대로 계속 되기를. 노쇠함의 보수성.

  그는 살아온 대로 계속 살아오고, 이제까지 좋아했던 것을 좋아하고, 미워했던 것을 미워하며, 읽어왔던 신문을 계속 읽는 일밖에 없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죄밖에 없다─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사는 죄.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이진우 역, 책세상, 367쪽)

근대 교육은, 학문은 이런 노쇠함을 가르친다. 물론 대놓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이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이 시대를 이끄는 사람이 되라고. 그러나 이 시대란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근대, 그 노쇠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노쇠해져간다. 영리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노인이,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 바쁘게 머리를 굴리면서도 정작 자기 존재의 문제와 마주할 때면 멍해져 버리는 노인이, 하여 결국에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삶에 한 발 내딛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그런 노인이 되어간다. 시대적으로는 성숙했으나 인간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들! 청춘을 맞이하기도 전에 늙어버린 아이들. “젊은이들의 조로현상”. 우리는 그렇게 너무 일찍 늙어버린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반시대적 고찰』은 니체가 이 노쇠한 문명에 던지는 선전포고다. 이후 니체는 자신의 남은 생을 모두 이 싸움에 걸었다. 그것은 가치의 전도를 통해 우리의 생명력을 소진시키는 시대와의 싸움이자, 이미 시대적 인간이 되어버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어떻게 노쇠해진 삶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젊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니체는 건강을 되찾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쇠함의 정체를 제대로 봐야 했다. 근대가 내세우는 가치들과 약자가 살아가는 방식들, 자신 안의 약자적 욕망과 자기기만이 일어나는 지점들, 그리고 이것들을 떠받히고 있는 학문의 방법들을 낱낱이 살펴봐야 했다. 그렇게 시대와, 자신과 직면하지 않고는 건강의 회복은 요원할 터였다.

니체는 “더디지만 쉬지 않고 올라”간다. 근대의 그 기만적 위장술이 눈을 멀게 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시야를 가로막는 방해물 없이 우리의 노쇠한 문명을 환히 볼 수 있”는 그 지점까지. 그곳, 그 높은 곳의 맑고 투명한 공기야말로 소진된 생명의 치료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니체와 함께 그 길을 오르고자 한다. 건강을 회복하도록, 소진된 생명이 다시금 활기로 웃을 수 있도록. 우리는 그곳에서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자기 존재를 창조하는 에로스의 힘을 되찾을 것이다. 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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