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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가족의 탄생]‘엄마 모드’ 적응기 2 – ‘맘 카페’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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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이당 작성일20-03-31 14:39 조회1,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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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모드’ 적응기 2 – ‘맘 카페’에 빠지다




이소민(감이당)

우울감의 출구를 찾다?

외출하지 못하는 나를 위로해준 건 맘 카페였다. 밖에 나가지 못하니 핸드폰을 붙잡는 날이 많아졌다. 육아에 관련된 정보를 얻어 볼까 싶어 가입한 인터넷 카페였는데, 웬걸 거기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아기를 낳고 가장 답답했던 점이 지금 내 생활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육아 경험이 없었고,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맘 카페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엄마들은 서로의 일상과 어려움에 폭풍 공감하며 댓글을 달았다. 동네 어느 소아과가 좋은지, 아이를 재울 때 어떻게 해야 잘 자는지, 이유식을 시작할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시댁과의 문제 등등 육아의 고민과 꿀팁(!)이 흘러넘쳤다.

내가 자주 가는 맘 카페에서 엄마들이 노는 법은 꽤 신선했다. 예전에 유행했던 ‘아나바다’운동(IMF 때 지출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국민운동.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의 줄임말)처럼 서로 안 쓰는 물건을 택배로 주고받고, 또 물려 썼다. 전문용어로 ‘드림’과 ‘릴드림’의 향연이었다. ‘드림’은 말 그대로 이제 더 안 쓰는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릴드림’은 릴레이 드림을 줄여서 하는 말인데 책이나, 부피가 큰 장난감처럼 아이들이 잠시 사용하는 물건을 기간을 정해 돌려쓰는 것이다. 엄마들은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사이인데도, 자신의 물건을 보내고 또 빌려주었다. ‘드림’ 하며 아이가 몇 개월인지 물어본 후, 작아진 옷들이나 육아용품을 이것저것 더 넣어주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도 이런 훈훈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1. 100일상을 차릴 수 있는 릴드림 소품100일상을 차릴 수 있는 릴드림 소품

나도 천 기저귀와 아기 옷, 장난감, 포대기 등등을 카페를 통해 ‘드림’ 받았다. 또 필요 없어진 물건은 정리해 ‘드림’ 하곤 했다. ‘드림’받을 때는 필요한 물건을 공짜로 받으니 좋았다. 또 ‘드림’ 하면서 집 정리도 하고 남에게 뭔가 도움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카페 활동은 힘든 육아 생활의 단비였다. 사람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것이 좋았고,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 즐거웠다. 밖에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대신, 집에 있을 때 물건을 포장하고 아이가 자고 나면 편의점에서 택배를 부쳤다. 또 배송 중인 물건을 기다리는 설렘까지! 나는 그렇게 카페 놀이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맘 카페, 잠자던 소비욕망을 깨우다

수유하면서도, 아기를 재워놓고 밥을 먹으면서도 카페를 드나들었다. 오늘 엄마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내가 쓴 글에 어떤 댓글이 달릴까, 또 혹시나 좋은 물건이 드림으로 올라오지는 않을까 수시로 살펴보았다. 맘 카페에서 시작한 활동은 점점 ‘핫딜’, ‘지역 중고 거래 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갔다.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핫딜’ 카페가 있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여러 물건 중, 특가 상품만 모아놓은 것이다. ‘핫딜’의 종목은 주로 육아용품이다. 물티슈, 아기 내복, 칫솔 등등. 엄마들은 저렴한 데다가 무료배송인 제품을 어찌나 그리 잘 찾는지! 내가 링크를 따라갔을 때 이미 품절인 경우도 많았다.

내가 받은 ‘드림’ 중 가장 기뻐했던 건, 천 기저귀와 아이 옷을 한 아름 물려받았을 때였다. 직접 사려면 돈이 많이 드는 것들을 ‘공짜’로 얻게 된 것이다. 아이가 마실 배·도라지즙을 반값에 샀을 때도 즐거웠다. 나중에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을 때는 이미 품절된 후였다. 구매에 성공한 나는 ‘승자’가 된 느낌이었다. 돈을 아꼈다는 쾌감!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때마다 ‘살림꾼’이 되었다. 육아용품은 내 물건을 살 때와는 다르게 더 쉽게 지르게 되었다. ‘아이에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금액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꼼꼼하게 상품평을 정독했다. 조금 비싸도 ‘천연 성분’이고 ‘환경호르몬’이 없다면 괜찮았다. 그런데 왜 나는 아기 턱받이를 사는데 돈을 더 주고서라도 예쁜 디자인을 고르고 있는지… 가끔은 아이 용품을 사는 건지 그 핑계로 내 물건을 사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한번 카페에 접속하면, 순식간에 1~2시간이 흘렀다. 설거지가 한가득 쌓여있고 장난감이 바닥에 널려있었지만 나는 쉽게 멈추지 못했다. 카페 활동은 육퇴(육아퇴근) 후, 나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카페를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났을까? 거의 매일같이 택배가 왔다. 그날도 여전히 스마트폰에 홀려있는 내게, 옆에서 보다 못한 남편이 말했다.

네가 카페를 하면서 즐겁고 그런 건 좋은데그것 때문에 집안일이 밀리고,

일상이 틀어지면 나까지 힘들어져ㅜㅜ

사실 나도 심각성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늦은 밤, 혼자만 즐기던 카페 활동이 낮에 아이를 보면서도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보지 않더라도 신경이 쓰였다. 내 앞에 있는 아이와 놀고는 있지만 정신은 딴 곳에 가 있는, 몸과 마음이 분리된 상태였다. 집은 엉망이고, 남편과의 관계도 안 좋아지고,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된 뒤에야 카페 앱을 지웠다. 며칠 뒤, 카페 앱을 다시 깔았다. 왜냐고? 마침 물티슈가 필요했는데 어차피 살 것이면 ‘핫딜’로 사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분명 물티슈만 사려고 들어갔는데… 990원에 무료배송인 치실과 며칠 뒤 사라지는 이벤트 적립금 2,000원을 쓰기 위해 아기 양말까지 사고 말았다. 아아, 다시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맘 카페에 또 홀려버린 나 자신을 자책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남편에게 카페 앱을 안하겠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컴퓨터로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맘 카페에 접속했다. 빈도는 줄었지만 완전히 끊지 못했다.

인쇼(인터넷 쇼핑)는 무배(무료배송), 타임 특가, 20,000원 이상 구매 시 20% 할인 등등으로 끈질기게 유혹했다. 3,000원인 배송비를 아끼느라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장바구니에 담았다. 무서운 사실은 보면 사게 된다는 거다. 누군가는 말한다. “안보는 게 핫딜”이라고. 보는 순간, 필요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몇천 원 더 할인받기 위해 앱을 깔고, 로그인하고(아이디를 잊어버리면 또 다시 찾고) 결제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발 늦으면 곧 품절되기 때문에 엄마들은 ‘선 결제 후 고민’한다. 휴지와 기저귀, 주방세제 등등 좁은 집에 생필품이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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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좋다’는 것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이 있다. 육아용품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5분이 편안해진다. 아이는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새 장난감을 탐색하는 동안 엄마·아빠의 자유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났다. 그렇게 5분의 자유 시간을 얻기 위해 매일 밤 쇼핑몰을 찾아 헤맸다. 게다가 아이템이 ‘아이의 오감발달’에도 좋고, ‘친환경’이고, 거기에 가격까지 괜찮다면 대박이었다. 안 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천 기저귀를 드림 받아쓰고, 친환경 채소로 이유식을 만들고, 원목으로 된 장난감을 사주면서 뭔가 남다른 엄마가 된 것 같은 자부심이 있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괜찮은 엄마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맘 카페를 통해 고민을 나누고, 육아 동지도 만들며 힘을 많이 얻었다.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그런데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이 모든 걸 압도했다. 나중에는 물건만 남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사라지는 듯했다. ‘드림’, ‘핫딜’, ‘지역 중고 거래 앱’의 공통점은 앞서 말했듯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이다. 대부분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터라 하루 종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나는 늘 항진된 상태로 지냈고, 내가 왜 우울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뭔가를 계속 클릭하고 결제하고 있지만, 몸은 점점 피곤해지고 마음은 헛헛했다. 당연히 통장 잔고도 야금야금 줄어갔다.

광고는 끊임없이 이걸 사면 육아 생활이 좀 더 편해지며 아이에게도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쌓여가는 장난감을 정리하느라 더 바빴고, 그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드림 받고, 핫딜로 사느라 내 체력이 더 소모되었다. 밀린 집안일에 남편과도 사이가 안 좋아지고 스마트폰을 하느라 아이와는 정작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다. 또 화학 흡수체가 없는 천 기저귀를 쓰고 자연의 순리대로 키운 채소로 이유식을 만들면 분명 아이의 건강에 좋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천 기저귀를 써야 한다고 고집했더니 문제가 생겼다. 밤마다 기저귀를 개고, 빨래하느라 늦게 자는 날이 늘어났다. 다음날까지 피곤했고 아이의 작은 투정에도 화가 났다. 우울감이 올라오는 것도 여전했다. 오히려 상황이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엄마인 내게도 그렇지만 이게 진정 아이에게 좋은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아이와 엄마 모두를 위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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