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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루쉰과 여행, 그리고 ‘전쟁기계’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20-04-07 21:55
조회 : 471  






루쉰과 여행, 그리고 ‘전쟁기계’



고영주(감이당)

  그렇다. 신체의 해부보다 중요한 건 정신의 해부다. 중국인은 지금 정신의 고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국인에게 시급한 것은 이 비참과 비겁에 대한 자각이다. 혁명은 다수를 만족시키는 공리(公利)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절한 자각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 자각을 촉구할 수 있는 무기는 ‘글’ 밖에 없다는 것.

(채운, 「구경꾼으로 머물 것인가, 혁명적으로 살 것인가」, 『루쉰, 길 없는 대지』, 2017, 북드라망, p68)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루쉰은 일본 센다이에서 의학 생활을 하던 중 ‘환등기 사건’을 겪게 된다. 환등기 안에서는 중국인 한 명이 러시아의 정탐 노릇을 하다가 일본군에게 총살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중국인을 빙 둘러서 구경하는 군중은 다름 아닌 ‘중국인’들이었다. 이때 루쉰은 의학으로 ‘병’을 고치는 것보다, ‘글’로 ‘정신’을 바꾸는 일이 당시 중국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의학 공부를 접고 베이징으로 귀국 후 그는 『광인일기』를 시작으로 죽는 날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루쉰에게 ‘글’은 구경꾼이 아닌 혁명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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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쇼핑의 국가장치

어느덧 3월이다. 장기간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회사에서는 연중 휴가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가 집중 휴가 기간이다.(이때 휴가를 가야지만 회사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다) 회사 동료들은 원하는 휴가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며 여행 준비에 분주하다. 그런데 나는 참~ 난감하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생(?)이 게으른 데다 여행하며 느끼는 짜릿함이 뭔지 잘 모르겠다. 이런 내가 ‘루쉰’이라는 인물을 탐구하기 위해 베이징과 샤오싱 그리고 상항이로 두 번의 중국 여행을 했다. 그동안 루쉰의 몇몇 작품을 읽었고, 그에 대한 강의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가 머물렀던 곳을 직접 가볼 기회가 온 것이다.

  밝음과 어두움, 격렬함과 평온함, 신속함과 장중함, 공포와 규율, “묶는 것”과 “계약” 등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다. (…) 국가는 직접적이고, 마법적으로 포획하는 방식을 택하며, 모든 전투를 방지하면서 “장악하고” “속박하면” 되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2003, 새물결, p672)

여행이 끝난 후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루쉰!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를 빌려 말하자면 나는 나 자신에게 ‘적막’을 느꼈다. 내 손과 캐리어 안에는 쇼핑백과 명품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포획하고, 속박하는 장치를 ‘국가장치’라고 한다. 루쉰의 삶을 탐구하고자 떠난 여행의 길에서 내 욕망은 소비와 쇼핑의 국가장치에 장악되어 버렸다.

국가장치는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마법을 부려 욕망을 끌어당긴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입국장에 들어가니 휘황찬란한 면세점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평소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중보다 싸게 판매하고 있는 시계와 가방, 지갑 등, 삐까뻔쩍한 명품들이 강렬하게 내 욕망을 사로잡았다. 나는 마치 ‘마법’에 홀린 듯 면세점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비행기 시간도 잊은 채 구경에 구경을 거듭했고, 결국 신용카드를 꺼내 형편에 맞지도 않는 명품들을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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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가방을 풀어 놓고 보니 마음이 허탈했다. 나는 마치 루쉰이 환등기로 본 구경꾼들 같았다. 그동안 회사 동료들이 해외여행을 다니며 사 온 명품들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왜 저러나?’ 싶었는데, 나 또한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면세점이 무슨 죄랴. 소비와 쇼핑에 포획된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욕망이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나는 마치 이것들이 없으면 삶이 불행해지기라도 할 듯 쇼핑을 했다. “왜 사람들은 분명히 원치 않은 불행한 전쟁의 결과로 생겨난 것도 아닌데 복종을 원하거나 욕망하는 것일까?”(「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p687) 지갑을 열어보니 면세점에서 싸인(계약)한 영수증이 수북했다. 한 달 후에 갚아야 할 카드빚에 막막했고, 더 이상 여행이 하기 싫어졌다.

네네츠족과 제자리에서 ‘유목하기’

국가장치에 포획되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유목민’의 삶에 그 해답이 있다. ‘유목’이란 출발점도 목적지도 없이 오직 ‘중계점(이동)’만을 갖고 유동하며, 흘러 다니는 것을 말한다. 시베리아 추운 지방에서 생활하는 네네츠족은 일 년에 50번을 이동한다. 이들에게 이동은 ‘숙명’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다. 생계에 필요한 순록을 먹이기 위해서다. 겨울이 오면 순록을 먹일 이끼가 사라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북쪽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봄이 오면 다시 남쪽으로 내려온다. 네네츠족은 순록을 기르고, 이동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를 갖지 않는다.

내 여행의 목적은 루쉰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고 중국의 넓은 대륙을 몸소 느껴보고 오는 것이었다. 이 단순하고 소박한 원칙을 망각한 채 내 발걸음은 맛집과 관광지로 향했다. 뿐만 아니라 루쉰 박물관에 가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선물뿐이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어떤 선물을 사가지?’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내 발도 자연스럽게 백화점으로 향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루쉰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멈춰 있었다. 유목과 여행의 핵심은 일단 ‘걷기’다. 발이 멈추는 순간 유목도, 여행도 끝이다.

  유목민이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단순한 필요에 따른 결과로서 이들에게 많은 지점은 원칙적으로 하나의 궤적 위에 있는 중계점이기 때문이다.

(「유목론 또는 전쟁 기계」, p730)

네네츠족이 순록 한 마리를 잡았을 때, 고기는 식량으로, 지방은 겨울을 나기 위한 연료로 사용한다. 뿔은 썰매를 끌기 위한 장비로, 가죽은 옷과 지붕을 만드는데 쓰인다. 네네츠족은 결코 순록을 낭비하거나 버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내가 여행하며 사 온 물건은 대부분 쓸데없었다. 정말 필요했다면 저가의 제품들을 구매하면 된다. 루쉰에 대해 아무런 탐구도 하지 못했고 불필요한 소비만 잔뜩 했으니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해 버렸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물건들이 다음 여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목민에게 영토 하나 하나가 중계점인 이유는 이동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네네츠족은 썰매가 없으면 이동할 수가 없다. 그래서 썰매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되었을 썰매 만드는 방법부터 가르친다. 유목의 핵심은 ‘비축’과 ‘낭비’가 없고,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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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유목과 여행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떠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재 내 삶의 배치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들뢰즈와 가타리는 어디론가 이동하지 않고도 ‘제자리에서 유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배치는 정념적이며, 욕망의 편성이다. 욕망은 자연적이고 자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배치하고 배치되는 것이자 기계적인 것이다. (…) 정념이란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욕망의 현실이다.

(「유목론 또는 전쟁 기계」, p767)

제자리에서 유목하기란 ‘배치’를 전환하는 것이다. 배치란 내가 욕망하는 현실이다. 배치가 전환되면 욕망도 바뀌고 현실도 바뀐다. 유목민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와 ‘방향’이다. 결코 아무 곳으로 아무렇게나 이동하지 않는다. 여행의 배치를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욕망의 속도와 방향을 바꿔야만 소비와 쇼핑에 포획되지 않는다. 이것을 위한 가장 좋은 이동수단이자 무기가 나에게는 ‘글쓰기’다.

48인의 대중지성과 ‘전쟁기계’

루쉰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절한 자각을 촉구할 수 있는 ‘무기’는 ‘글’뿐이라고 말했다. 도구가 아니라 왜 무기라고 했을까. 도구는 현실에 저항밖에 못 하지만 무기는 현실에 반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네네츠족이 순록을 생계 도구로만 생각했다면 한 영토에 정주하여 추운 겨울을 견디는 데만 그쳤을 것이다. 네네츠족이 천 년 이상 유목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록을 무기삼아 계속해서 어디론가 이동했기 때문이다. 루쉰에게 글이 있다면, 네네츠족에게는 순록이 있다. 이처럼 내가 머무는 현실을 자각하고 그 곳을 뚫고 가기 위해 만든 무기를 들뢰즈와 가타리는 ‘전쟁기계’라고 한다.

나는 지난 열 달 동안 『천개의 고원』과 내 삶을 연결하여 글을 썼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과거의 사건들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억압과 결핍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무기가 현실에 반격을 가한다는 것은 과거를 유쾌하고 재미있게 재구성함으로써 현재 내 욕망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목민이 멈추지 않고 이동하듯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실천’이다. 멈추는 순간 내 욕망은 또 다시 도처에서 작동하는 국가장치에 포획될 테고 또 다른 억압과 결핍에 머물게 될 테니 말이다.

  도구는 극복 또는 이용해야 할 저항에 직면하는 반면 무기는 반격에 직면해 이를 피하거나 새로운 것을 발명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반격은 양적인 증대나 방어전에 그치지 않는 경우에는 전쟁 기계를 발견하거나 촉진시키는 발견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p760)

여기 ‘48인’의 대중지성이 있다. 이들도 글쓰기를 무기 삼아 자신들을 둘러싼 배치를 여행하고 있다. 48인 각자는 삶의 속도도, 방향도 다르다. 그러나 ‘대중’이라는 ‘무리’의 역량과 ‘지성(진솔함)’이라는 소박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목민의 삶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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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인을 포획하는 국가장치는 불안과 탐욕, 질주와 고립이다. 이들은 어느 날 자신들을 포획하는 국가장치로부터 떠나고자 했다. 그러다 고전을 만나게 되었고 ‘읽고’, ‘쓰기’ 시작했다. 48인의 대중지성은 부처, 장자, 니체, 연암, 루쉰, 왕양명 등, 고전 속 인물들과 일상을 함께한다. 이들과 함께 자신들의 삶을 어떤 ‘속도’로 나아갈지, 어느 ‘방향’으로 떠날지를 고민하며 글쓰기로 실험 중이다, 이 실험의 결과로 탄생한 전쟁기계가 바로 『나는 왜 이 고전을-고미숙과 48인의 대중지성』이라는 책이다. 이 텍스트는 네네츠족의 썰매처럼 또 다른 배치로 떠날 수 있는 이동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루쉰에게도 그러했듯이, 구경꾼이 아닌 혁명적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무기로 사용될 것이다. 나도 이 경이로운 실험에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이 기쁨이 『천개의 고원』에서 말하는 진정한 여행의 짜릿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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